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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Feb 13. 2020

그 가을의 멀리건

[도화도주의 골프남녀]

그는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반 9홀 플레이 내내 우리는 평소보다 좀 더 시끄러웠다. 그는 꽤 밝아 보였다. 첫 홀 티샷을 마치자마자, 이미 늙어가는 여자 캐디에게 예쁘다는 농지거리와 함께 팁을 건네더니, 곧 연달아 두 번 버디를 했다. 단풍이 사람을 미치게 할 듯 노랗고 붉게 타오르는 10월 끝자락의 오후였다.
160미터 길이의 두 번째 파3 홀에서 그는 “여기서 오늘, 내 인생의 마지막 홀인원을 하고 싶어”라고 하며 샷을 했고, 정말로 거의 들어갈 뻔했다. 한 번 튀어 깃대를 맞고 홀 옆 오십 센티 정도 자리에 선 것이다. 나는 탄성을 내지르며 안타깝다고 건성으로 위로했는데, 그는 몇 번이나 땅이 푹푹 꺼져라 발을 구르며 많이 아쉬워했다. 
 
그 전날 저녁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골프 할 수 있나? 대타로 나와다오.” 
마침 시간이 비어 있었고 날씨가 점점 깊이 있게 무르익어 가는 가을이었으며 예약된 골프장은 단풍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명문 클럽이었다. “오케이! 나가마.”
골프장에 나와 보니 세 명이 한 조였다. 다른 한 명은 그의 오래된 애인이었다. 그는 십 몇 년 전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살아왔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후 오 년쯤 뒤부터 소식이 드물어지더니 그예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와는 이미 연락이 끊어졌고, 아이들과의 전화 통화도 거의 끊어져 간다고 했다. 그 애인에 대해서 나는 몇 번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업무 상의 골프모임에서 동반자로 만났다가 서로 위로하며 지내게 되었다며, 집도 괜찮고 속이 깊은 여자라고, 동창 골프 모임에서 한 조가 되어 라운드 할 때 그가 말했었다. 그는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 했던 듯,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 귀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서로 깊이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전반 라운드 내내 그녀는 조용했고 그는 유별나게 말이 많았다. 파5홀 그린에서 세 걸음 거리의버디 퍼트를 하려는 나에게 수십 년 전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때 니들이 배신했던 거, 오래 전에 이미 다 용서했다…...” 
나의 그 버디 퍼트는 홀 바로 앞에 멈춰서 버렸다.                                                   

대학 3학년 때 그는 감옥에 갔었다. 그의 자취 방에서 몇 장의 전단과 함께 ‘불온서적’ 수십 권이   압수되었고 그는 잡혀갔다. 나는 그 책들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의 일원이었다. 열 명 남짓한 청춘 남녀들이 바로 내일 죽기로 결의한 듯이 술을 마시고, 치기와 의기를 섞어 자신의 꿈과 나라의 내일을 노래했었다. 나중에는 관청에서 권장도서로 정하게 된 ‘불온서적’들을 여러 권 돌려가며 읽고 취기와 혈기로 혁명을 토론 했던 아이들은 그의 투옥과 함께 지리멸렬하게 흩어지고 서로 피해 다녔다. 그가 감옥에 갈 정도로 ‘불온한’ 혁명가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의 이름은 학교에서 교수도 학생도 서로 거론하기도 쉬쉬하는 금기어로 남게 되었고,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더럭 잡아갈 지도 모른다는 허깨비 같은 공포가 문득문득 엄습하던 젊은 날은 간단없이 지속되었다.     

 
전반 9홀을 마치고 쉬는 동안 우리는 스타트 하우스의 야외 테라스에서 명태순대 안주에 맥주를 마셨다. 성수기여서 후반 홀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그의 애인은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전화기를 들고 일어나 자리를 피해서 어디론가 기나긴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맥주 한잔을 벌컥 들이킨 후 그가 불쑥 선언하듯 말했다. 
“내일쯤 죽기로 했다. 해볼 짓 안 해 볼 짓 다 해봐서 원도 없다.”
새파란 가을 하늘 한편에 새털구름이 느릿하게 날갯짓하고 있었다. 가까이 보이는 한쪽 산비탈 에는 자작나무가 서늘한 흰색으로 늘어서 있고 반대편 기슭으로 노랗게 물든 활엽수와 핏빛 단풍이 격렬하게 불타고 있었으며, 키 큰 낙엽송이 연노랑 침엽을 물들이고 있는 가운데로 뻗은 페어웨이는 녹색으로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테라스 한쪽 벽에 걸린 디지털 온도계의 글자는 섭씨 22도. 
공기는 너무 향기로워서 골프나 치며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살랑대며 찾아드는 가을 오후였다. 
“농담 아냐. 죽으려고 다 준비했어. 정말 벼랑 끝에 있다.”
 
그때까지 그와 나는 이따금 만나서 골프도 치고 지냈지만, 나는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었다. 그는 그때 부동산 개발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감옥에 다녀와 몇 년 뒤 복학해서 졸업을 한 후 그는 지방 신문 기자, 광고 제작 대행회사를 하다가 고향에서 시의원을 지냈고, 때마침 차렸던 홈페이지 사업이 아이티사업 붐을 타고 정보통신 회사로 둔갑하면서 수백억 돈을 벌었다고 했다. ‘불온한 혁명가’ 시절 만나 맺어진 아내는 돈이 생기자 미국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싶어했고 그간의 고생이 미안했던 그는 호쾌하게 승낙했다. 
“우리 애들이 정말 내 아이들이 맞나 모르겠다. 애 엄마는 물론이고 애들도 오 년 째 도통 소식도 없다.”
그가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내가 아이들 교육에 필요하다며 상당한 재산을 미국으로 가져 갔으며, 수백 억 재산은 그가 몇 가지 사업에 연달아 실패하면서 사라졌다. 경마 차권 대행업,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장, 온오프라인 어린이 테마파크…… 그가 했던 사업들은 법 제도의 빈틈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들이었다. 당시로서는 다 새로운 것이었으나, 그가 처음 창안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미묘한 시기에 ‘막차’를 탔다. 
“정보가 중요한 거거든. 딱 한 달만 빨랐어도 크게 챙겨 나올 수 있는 거였는데……”
그리고 사업 끄트머리엔 늘 배신을 당했다고 했다. 믿었던 사업 파트너와 데리고 있던 임직원이 등을 돌렸다.
“‘테라스’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불편하다.” 
테라스에 앉아 쉬니 공기도 분위기도 좋다는 말에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가 그때 ‘마지막’으로 하던 사업이 ‘테라스 하우스’ 개발 사업이었다. 분양률이 절반쯤에서 멈춰지고 가진 돈은 바닥이 나서 거의 다 지은 주택단지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가운데 동업자가 돈을 먼저 챙기고 빠져나가는 ‘배신을 때렸다’고 했다.
 
후반 플레이가 시작되면서 그는 좀 더 쾌활해졌다. 
‘골프만큼 재미 있는 것도 없는 것 같아. 이만큼 덧없는 것도 또 없고……”
죽으려 한다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선뜻 판단할 수 없었지만, 죽음을 거론한 뒤여서 그런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뻔한 말도 내게는 비장한 명언으로 들렸다. 그는 구력이 십오 년쯤 된 골퍼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골프라고 했다. 
“항상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게 골프야. 그게 제일로 큰 매력인 거 같아.” 
‘마지막 라운드’라 그랬을까. 그의 샷은 거침이 없었다. 퍼팅도 짧은 적 없이 과감하게 굴렸는데 여러 번이나 뒷벽을 때리고 들어가곤 했다. 그날따라 골프장 그린은 빠르고 예민했다. 일생을 풍운 가득한 모험으로 드라마틱하게 살아온 한 남자가 마지막으로 후회 없는 골프를 하기에 손색없는 코스 조건이었다. 
 
마지막 파5 홀에서 그는 ‘운명’과 부딪혔다. 내리막으로 치는 티샷이 220미터 넘게 나오면, 왼 쪽으로 코스를 따라 돌아가며 파 놓은 연못 해저드를 건너 섬처럼 자리잡은 그린으로 투 온 공략을 할 수 있는, 그림 같이 모험적인 홀이었다. 나도 전에 그 홀에서 투 온을 시도하다가 해저드에 공을 빠뜨린 적이 있었다. 그날 그가 티샷 한 공은 그린까지 210미터 정도를 남겨놓은 지점의 페어웨이에 나와 있었다. 워터 해저드를 넘기려면 180미터 이상 날아가서 떨어져야 한다고 캐디가 일러주었다. 
“그때 나 정희 좋아했었다.” 
세컨 샷을 하기 위해 카트에서 내리다가 돌아보며 불쑥 그가 말했다. 
“정희......?” 
정희는 그가 감옥에 가기 전 독서모임에 나오던 후배 여학생이었다. 성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늘씬한 몸과 고운 얼굴에 성격과 미소가 상냥해서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눈이 마주치면 촉촉한 물기가 묻어날 듯한 눈빛으로 살짝 웃었는데, 그 눈빛에 나도 흔들렸었다. 
그의 3번 우드 세컨 샷은 워터 해저드를 거의 건널 듯 하다가 흔들리며 아슬아슬하게 물에 빠져 버렸다.
“맞바람이 부나 봐.” 그가 말했다. 
바람은 가늠하기 어려웠고 내가 느끼기엔 오히려 뒤바람인 듯했다. 
“한 번 더 쳐봐라 세컨 샷 멀리건이다.” 내가 말했다. 
“세컨 샷과 인생엔 멀리건이 없는 건데……” 
그가 말하며 다시 공을 놓고 쳤지만 이번에도 거의 비슷하게 빠져 버렸다. 그는 좀 더 홀 쪽으로 앞으로 나가서 다시 한 번 쳤고 공은 그린 옆 벙커 둔덕을 맞고 튀더니 운 좋게도 홀 쪽으로 굴러갔다.  
그리고 5미터쯤 남은 그 퍼트를 그는 성공시켰다. 
“이글이다!” 
내가 손을 내밀며 말했고 그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의 애인은 골프보다 전화에 더 많은 신경을 쓰며 산만한 기색이다가 라운드가 끝나자 미안하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고, 그와 나는 골프장 근처 고깃집에서 식사를 했다. 
“어떻게 죽으려고?” 밥을 먹으며 내가 물었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라운드 내내 쾌활했던 그는 사라지고 수심 가득한 안색의 중년 남자가 질겅질겅 꽃등심을 씹고 있었다. 
“투온 샷 멋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거 진짜 멀리건 준 거지?” 그가 물었다. 
“물론이지! 이글 퍼팅도 어려운 경사였는데 아주 훌륭했다.”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듬해 가을이 끝나갈 무렵 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전화번호는 바뀌어 있었다. 시내 번화가 특급호텔에서 사업설명회를 하니 참석해달라는 안내였다. 내 정보 지식 수준으로는 문자 내용만 보고 무슨 사업인지 잘 파악하기 힘든 미지의 분야였다. 
 
그날 라운드 중에 그가 “인생은 탐험이야.”라고 한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하지는 않고,
“사람 사는 데도 리셋이나 멀리건이 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은 그날 분명히 들은 것 같다. 
“그래…… 멀리건이 있다면!” 하며 나도 맞장구 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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