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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May 14. 2020

파인힐스CC 순례 단상

이 골프장은 순천의 조계산 자락에 있다.
조계산 서쪽에는 송광사, 동쪽에는 선암사가 있으며 남쪽으로 내려가면 낙안읍성이다.
골프장과 송광사 사이의 주암호는 남으로는 보성 차밭의 젖줄이 되고 북으로는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이 주변은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골프만 하고 오기에는 너무 아깝도록 이야기가 많은 곳이지만 골프 코스만 돌더라도 이야기가 넘치는 곳이다.
미국 설계가 로널드 프림이 설계한 코스인데 그는 제주의 <클럽나인브릿지>와 용인 <아시아나CC>, 용평의 <버치힐GC>를 설계한 이다.

파인, 레이크, 힐 세 코스로 이루어진 27홀 가운데 어느 하나 모난 자리를 보기 어렵다.
서양 설계가들이 자연의 땅 모양을 그대로 살리는 것을 신앙처럼 여기는 까닭에서인지, 한국 산중에 서양 디자이너가 설계한 코스에는 블라인드 홀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 코스에는 블라인드 홀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나는 그 까닭이 궁금했다.


알고 보니 국내 1세대 설계가인 장정원 선생이 초기 설계 했던 것을 로널드 프림이 이어받아 마무리했다 한다. 장정원의 루트 플랜 바탕에 로널드 프림이 일부 개조 라우팅하고 조형을 마무리한 것이라고 봐야겠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티잉 구역에서 그린을 보며 전략을 세워 공략할 수 있어서 골퍼들이 좋아할 만하다. 산기슭의 코스임에도 페어웨이가 넓어서 티샷은 마음껏 할 수 있는 반면에 페어웨이의 언듈레이션이 다양하고 그린 주변의 변수가 많아서 난도가 높은 편이다.
남도 지역에서 공 좀 친다는 분들이 이곳에서 실력을 겨룬다 한다.

2004년 개장한 코스이니 세월이 꽤 흘렀는데 코스 관리는 물론 클럽하우스 등 부대시설과 그 운영이 엄정하다. 2012년에 퍼블릭골프장으로 전환했는데도 품질을 잃지 않는 것을 높이 쳐줄만 하다. 모회사가 보성건설인데 한양건설을 인수하여 지금은 ‘한양’ 브랜드를 주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 골프 역사에 시사이드 코스의 역사를 처음 연 <파인비치골프링크스>가 같은 회사의 것이다. 이 코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 파인비치를 열었다.

파인힐스는 한동안 국내 기관들이 선정하는 골프코스 랭킹에서 상위에 오르더니 요즘에는 그런 홍보 영업에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상위에 오를만한 자격은 여러 면에서 충분하다고 여긴다.

이 글은 탐사기를 쓰기 전의 단상이므로 홀마다의 이야기는 책에 실리는 본격 탐사기에서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블라인드 홀 유형의 굽어 치는 홀이 몇 개 더 있으면 더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레이크코스 9번 홀은 경관이나 승부의 드라마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엔딩 홀이다. 파인코스 마지막 홀 또한 아름다운 승부처이다.


힐 코스 파5홀 중간 오른편 대나무 숲 속에 집 한 채가 있어서 ‘세컨드 온’을 막는데, 이는 본래 집 주인이 땅의 매각을 거부한 까닭이라 한다. 이 또한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지며 이 홀을 비롯하여 힐코스는 다소 짧으면서 아기자기하다.

한 가지 말하자면, 코스 내에 인상적인 요소들을 좀 더 마련하면 기억성과 심미성을 훨씬 높일 수 있을 듯하다. 블루원상주처럼 이야기를 담은 나무들을 코스 안에 들인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클럽하우스 음식은 입맛 까다로운 남도 골퍼들도 인정하는 수준이다. 경험해 보니 모양과 맛이며 인심의 푸근함에서 ‘역시 남도로구나!’ 할만하다.


이곳에 가시는 분들은 송광사와 선암사에 들러보시기 권한다. 송광사는 조계종의 발상지로 알려진 승보(僧寶)사찰로서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송광사 불일암은 법정스님이 정진하셨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이자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로 꼽힌다. 대처승을 허락하는 곳이기 때문인지 절 곳곳에 섬세한 아름다움이 살아있다. 들어가는 길 계류를 건너는 승선교(昇仙橋)는 내가 갈 때마다 일부러 오래 밟아보는 다리다.

또한 선암사는 우리나라 야생 차(茶)를 20세기 말에 되살려 보급한 지허스님이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절 주변에 야생 차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흔히들 ‘녹차’라 하는데 이는 일본식 이름이며 ‘다도’라는 격식도 일본 일부 층의 유난한 풍습이다.
그냥 ‘차’ 또는 ‘잎차’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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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골프장이야기] 둘째권 집필을 위한 골프장 탐사 중의 단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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