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광교 신도시 호수 공원의 옛 이름은 원천 유원지였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수원의 초·중·고교생들이 자주 소풍 가던 장소였다. 호수를 둘러싼 낮은 구릉의 솔밭에서 보물찾기와 장기자랑을 했다. 선생님들은 멀리 가지 말라고 엄명했지만 말 안 듣는 애들은 자유시간에 산등성이를 넘어 신대 저수지까지 가기도 했다. 오솔길을 따라 야산을 몰래 넘어가는데 새로 부임한 청춘남녀 선생님 두 분이 길목에 자리를 펴고 앉아 지키며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세를 낮추고 엿들었다.
“큰 호수가 두 개나 있네. 이 동네 살면 낚시하기 좋겠네요.”
“이렇게 답답한 깡촌 난 싫어요.”
그 ‘깡촌’ 호숫가 언덕에 1984년 드넓은 ‘신갈컨트리클럽’ 골프장이 생겼다. 선생님들이 앉았던 오솔길 자리에 지금은 광교 신도시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두 개의 큰 호수와 드넓은 정원 같은 골프장을 둘러싸고 광교, 흥덕, 영통, 수지 지구의 수십만 가구 아파트와 서울, 수원, 용인 등 세계적 규모의 광역 수도권이 펼쳐져 있다.
‘신갈컨트리클럽’은 옛 한보그룹이 개발하여 문 열었으나, 1988년 태광그룹이 인수하여 ‘태광컨트리클럽’으로 이름 바꿨다.
처음 문 열 때는 남,동 코스 18홀 회원제 골프장이었는데, 1991년 회원제 서코스 9홀을 증설하고 1997년에 대중제 북코스 9홀을 새로 열었다. 이후 2006년 동코스를 대중제, 북코스를 회원제로 맞바꾸었다. 지금은 27홀의 회원제(북, 서, 남)코스와 9홀의 퍼블릭 (동)코스를 운영한다.
대도심의 센트럴파크 같은 골프장
이 골프장이 있는 용인 일대를 시쳇말로 ‘골프8학군’이라 불렀다. 고속도로 신갈IC에서 이 골프장이 가장 가깝고, 이곳 지척에 한성CC, 수원CC, 레이크사이CC 88CC 등이 있으며, 범위를 조금 넓히면 수십여 개의 골프장들이 용인, 여주, 안성, 발안 등에 이르러 퍼져있기 때문이다(2021년 현재, 용인 행정구역에만 골프장이 37개에 이른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골프장으로는 남서울CC를 들지만 광역 수도권으로 보면 태광컨트리클럽이 골프장 군집지의 핵심에 있다. 고속도로 신갈 인터체인지 인근, 수원과 맞붙은 용인시 기흥구의 완만한 구릉에 있는 이 골프장은, 이천년 대 중반 광교 신도시가 생기면서 고층 빌딩 숲과 생태호수 시민공원에 에워싸였다. 대도심의 중심 공원(Central Park)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해발 120미터 낮은 구릉 위의 클럽하우스에서 내려다보이는 코스는 울창한 소나무와 잣나무 숲 속에 홀마다 독립적이며 광활하다.
수도권 골프 핫 플레이스
태광컨트리클럽(이하 '태광CC')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라운드하기 매우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대중제 9홀 예약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27홀 회원제의 벽은 높고, 무엇보다 국내에서 그린피가 가장 비싼 곳으로 유명했다. ‘8학군’ 중에서도 핵심 위치에 있어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코로나 전염병 창궐 기간의 골프 붐으로 전국 골프장의 그린피가 대폭 오를 때 이곳 요금은 변하지 않아 오히려 ‘가성비 높은’ 곳이 되었다.)
차림새가 화려한 골퍼들이 많이 오는 골프장이기도 하다. 퍼블릭코스까지 함께 있기에 스타일 좋고 젊은 손님들과 연만한 회원들이 같은 장소에 어울리며 독특한 분위기가 흐른다. 오래 전에 만든 골프장이지만 몇 년 전 레드티를 ‘여성 대우를 잘 해주는 위치’에 신설하였으니 알록달록한 차림의 여자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비즈니스 골프 또는 골프 행사를 치르기 좋은 위치여서 기업인, 인기 연예인 등 얼굴 알려진 이들이 흔히 보인다. 태광 회원들은 ‘손님 수준이 높다’고 말한다.
설계의 ‘족보’와 코스 특성
연덕춘의 남·동코스, 임상하의 서·북코스
1984년 문 연 태광CC 남동코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골프 선수이자 일본 골프투어에서 활약했던 고 연덕춘(1916~2004) 선생이 설계했다.(연덕춘 선생 설계 골프코스에 대해서는 앞의 ‘수원CC’ 편에서 적었다.) 그가 설계한 한양CC 구코스, 수원CC 구코스 등과 함께 일본의 전통적 골프장들에 영향 받은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1991년 문 연 서코스와 1997년에 조성된 북 코스는 고 임상하(1930-2002) 선생이 설계했다. 임상하는 한국골프코스 역사에서 의미 있는 변곡점을 찍은 인물이다. 그는 동시대에 활동한 장정원(1941~), 김명길(1938~)과 함께 ‘한국골프코스 설계 1세대 3인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문 설계가’로는 첫 세대라는 뜻으로 이해하는데, 이들보다 앞서 연덕춘이 설계한 코스가 10여 곳에 이르니, 1세대 코스 디자이너라 하기 보다는 ‘이십세기 후반 다작 설계가 3인’으로 적으려 한다.)
80~90년대의 골프코스 설계와 설계가들
장정원은 1966년 육군사관학교 경내에 태릉CC가 조성될 때 현역 대위로 측량을 맡아 연덕춘의 설계를 돕다가 골프코스 설계와 인연을 맺었다. 김명길은 공군 장교로 공군 비행장 부속 골프장들의 조성에 참여하였고 1984년 일본 설계가 미야자와 조헤이를 도와 통도(현 통도 파이인이스트)CC 설계 실무를 맡으며 골프코스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임상하는 도시계획 전문가로 일하다가 1987년 뉴서울CC 북코스(현 문화코스)를 설계하며 각광받기 시작했다.
세 사람 모두 토목학을 전공했고 ‘자연 친화’를 설계의 기본 덕목으로 앞세웠음은 비슷하다. 좀 더 살펴보면 장정원은 “많은 이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코스”를 추구한 듯 보이고, 김명길은 “관리하기 좋고 플레이 진행이 원활한 코스”를 우선했다. 골프코스 설계는 골프에 대한 당대의 인식과 골프장 조성 및 관리 기술 환경에 영향 받는 것이므로 이러한 생각은 다소 소극적인 듯하지만 실질적이고 유효했다.(두 분의 설계 스타일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라데나CC’, ‘남부CC' 편 등에서 살펴본다.)
북코스 2번 홀 그린
임상하 - 한국 지형 코스 미학
임상하는 “골프의 전략적인 묘미를 한국 특유의 지형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코스”를 추구했다. 당시는 일본 골프장들을 본뜬 정원 조형 스타일의 코스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이 밀려오던 때였다. 뒤에 나올 ‘용평GC’ 편에서 살펴보겠지만, 1983년 로널드 프림이 설계한 ‘용평9’ 퍼블릭코스와 1988년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가 설계한 용평GC는 산중 지형을 원형대로 살리면서 전략적 판단과 도전적 모험을 부르는 설계로, 한국 골프코스 스타일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임상하는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더 나아가 ‘한국 산중 코스 미학’을 세워 나갔다.(지금은 바닷가 골프장도 있지만, 당시 골프장들은 거의 모두 산기슭 또는 구릉에 지었다.) 토목 기술 중심의 설계에서 벗어나 한국의 산중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코스에 표현하려 노력했다.(임상하의 코스 설계 스타일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신라CC'편 등에서 상세히 적는다.)
투그린, 한국 잔디 코스
임상하는 ‘원그린의 전도사’를 자처한 설계가로 알려진다. 지산CC, 신라CC, 화산CC를 비롯하여 1990년대 중반 이후 그가 설계한 코스들은 대개 원그린으로 조성되었다. 그런데 태광CC 북·서 코스를 설계하면서 그는 투그린을 택했다. 이미 운영되던 남·동코스가 투그린 코스여서 플레이의 연결성 등 현실적 여건을 감안했던 듯하다.
코스의 페어웨이와 러프 잔디는 남·동코스는 전통 들잔디(야지), 북·서 코스에는 중지를 심었는데 남·동 코스도 점차 중지로 교체되고 있다.
야지와 중지 모두 흔히 ‘한국 잔디’라 부르는 품종으로 DNA는 같으나 야지는 잎이 넓고 옆으로 퍼져 자란다. 그와는 달리 중지는 잎 넓이가 (야지와 양잔디 또는 일본 ‘고라이’ 품종의) 중간 폭이고 직립성이 강하며 촘촘하다(야지와 중지에 대해서는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1권 ‘안양CC'편에서 적었다.)
북·서·남·동 - 각 코스의 특징
태광CC 회원들에게 물으니 핸디캡이 낮은 고수일수록 임상하 설계의 북·서 코스를 ‘메인 코스’라 부르며 좋아하는 편이었다. 장타자들은 동코스도 좋아하는데 퍼블릭으로 운영되기에 회원들이 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남코스의 평화로움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았다.
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남·동 코스에서 연덕춘이 영향 받은 일본 스타일 코스의 안온함이 느껴진다면, 임상하 설계로 90년대에 완성한 북·서 코스는 골퍼의 전략적 사고와 도전적 플레이를 부르는 특성이 있다. 남·동 코스는 여성, 북·서 코스를 남성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각 코스의 특성과 인상적인 홀들을 살펴본다.
북코스 - 도심과 대자연들 종횡하는 오디세이
북코스 1번 - 대체불가한 ‘미장센’ 홀
북코스 1번 파4 홀
북코스 1번 홀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 홀 호수 너머 광교 신도시의 고층 빌딩 숲을 향해 티샷 하는 장면이 언젠가 영화에서 나오리라 상상한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는 장쾌한 자연미로 수도권에서 손꼽는 홀의 하나였다. 지금은 자연의 부드러운 곡선과 고층빌딩 직선이 대비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홀이 되었다. 인천 송도나 두바이 등의 계획도시에 이보다 더 높은 빌딩들 스카이라인의 도시 배경 홀들이 있긴 하지만, 이 홀에는 무르익은 자연과 생생한 도회적 삶의 모습이 진득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마치 북촌이나 홍대 거리처럼 대체 불가한 모습이랄까.
이 홀에 라일락 향기가 흘러넘칠 때도 있다. 그린 뒤 숲 너머가 광교 호수공원이다.
북코스 - 임상하 스타일의 흐름,
2번 홀부터는 대자연의 들판을 모험한다. 완만한 구릉을 넘어 넓은 호수를 지나치고 미묘하게 위협적인 벙커들과 싸우며 페어웨이를 질주하다보면 9번 홀에서 다시 (석양이 물드는) 신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마주하게 된다.
북코스는 가장 늦게 조성되었으며 전략적인 골프를 유도하는 임상하 설계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그가 설계 감리한 레이크사이드 서코스와 비슷한 장려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미묘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공간도 은근히 제공한다.
3번 홀까지는 비거리 컨트롤, 중반 홀에서는 전략과 정확한 기술샷, 후반에는 게임 승부를 내려는 도전을 유도한다. 5번과 6번 파4 홀은 비교적 짧고 일직선으로 그린이 빤히 보여 쉬우면서도 변수가 다양하게 나올 수 있게 하는 설계 역량을 보여준다.
전략, 도전, 힘, 기술을 시험하는 7번 홀
7번 파5 홀은 임상하 설계 특징을 잘 드러낸다. 페어웨이 오른쪽을 길게 따라가며 그린 앞까지 이어지는 호수가 플레이어의 전략과 도전, 힘과 기술 능력을 골고루 테스트한다. 장타자가 티샷을 잘 치면 투온에 도전할 수도 있겠다. 특히 오른 쪽 그린을 공략할 때 변별력이 높아진다. 이곳 지형을 활용하여 조화롭게 만든, 화려하지 않지만 참 유려한 홀이다.
북코스 1번 홀 페어웨이에서 라일락 향기를, 4번 파3 홀에서 산딸나무 풍치를 느끼는 이도 있겠다.
서코스 - 전략과 도전, 익사이팅 게임
서코스는 게임의 재미가 흥미진진한 코스다. 용인의 흥덕 신도시 아파트 단지를 향해 시작해서 광교 신도시 호수공원방향을 돌아들어온다. 골프장에서는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남성적인 코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코스 1번 파4 홀 그린
좁은 페어웨이와 넓은 페어웨이, 오르막과 내리막, 한 홀에서도 다양한 굴곡 등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교차한다. 지형을 그대로 살린 숲과 구릉은 미묘한 각도로 몸을 비틀며 자연 장해물로 작용한다. 연못과 벙커들도 적극적인 방어 위치에 놓였다.
(블루티와 화이트티에서) 전체 길이가 북·동·남 코스들보다 다소 짧은데, 짧은 홀은 분명히 짧되 긴 홀은 더 길어서, 오히려 더 길다고 느끼는 골퍼들도 있다.
서코스 4번 - 자연에서 찾아낸 홀
4번 파5 홀은 인공 장해물을 최소화하고 자연 지형을 살리면서 높낮이와 방향 변화만으로 난도 높게 조성했다. 숲을 피하고 벙커를 넘기면서 티샷과 세컨드샷 써드샷 하나하나마다 거리와 각도를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홀이다. 코스 설계가들은 “코스의 홀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찾아내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 좋아하는데, 한국 지형에서 ‘찾아낸 홀’이란 이런 모습이겠다.
서코스 5번 - 멋부리지 않은 야성
서코스 5번 파4 홀
5번 파4 홀은 넓고 똑바르며 길다(412미터). 마음껏 티샷 할 수 있지만 화이트티에서도 395미터나 되어 가장 어려운 홀이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직선의 긴 홀을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 모습으로 배치하여 장쾌함을 느끼게 했다. 멋 부리지 않은 야성의 멋이 진하다. 건너편의 아파트 때문에 거리가 짧게 보이기도 한다.
서코스 7번 - 전략과 게임의 재미
서코스 7번 세컨샷 지점에서 본 그린
7번 파4 홀은 게임의 재미를 끌어올린다. 그린은 페어웨이 지평선 너머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린 앞에는 직경 오십여 미터의 연못이 있다. 페어웨이 랜딩존부터 연못까지 경사가 심하므로 내리막에 볼이 놓이면 그린 공략이 어렵다. 세컨샷 할 지점을 정확히 설정하여 티샷해야 하며, 전략 선택에 따라 쉬울 수도 실점할 수도 있으니 게임 승부를 가르기도 하는 홀이다.
3번 174미터(화이트티 160미터) 내리막 파3 홀 그린을 감싸고 있던 연못이 메워져 러프 지역이 되었다. 좋아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데 게임의 재미와 변별력은 다소 무뎌졌다.
그래도 이 코스는 홀마다 흥미진진한 게임의 재미를 담고 있다.
서코스 3번 파3 홀에 있던 연못
남코스 - 잣나무 숲의 평화로운 ‘런웨이’
남코스의 모든 홀은 앞을 향해 똑바로 진행하는 모양이다. 다만 높낮이의 리듬이 있어서 구릉의 선율을 타듯 플레이하게 된다. 오르막 내리막이 있지만 공이 놓이는 플레이 구간에서는 평탄한 느낌이 든다. 잣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넓고 편안한 페어웨이를 펼쳐놓았으니, 생각을 내려놓고 즐기는 비즈니스 골프에 알맞은 코스다.
남코스 1번 - 런웨이 홀
1번 파4 홀은 비즈니스 골프할 때 편안하게 티샷하고 평지를 걸어가며 대화하라고 만든 것 같다. 이 홀 페어웨이 옆에 사열하듯 늘어선 왕벚나무가 이른 봄에 일제히 꽃을 피우는 모습은 이 골프장이 자랑하는 장관이다. 지난여름 갔을 때는 앞 팀에서 젊고 스타일 좋은 남녀들이 좋은 스윙을 하고 이 홀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페어웨이가 패션쇼 런웨이처럼 곧고 빛나 보였다. 이 홀 벚나무 잎은 가을 단풍도 나무마다 다른 색으로 물들어 꽃필 때 못지않게 알록달록하다. 평이하고 밋밋해 보이지만 태광의 상징 같은 ‘런웨이 홀’이라 생각한다.
남코스 5번 - 투온 도전, 버디 홀
남코스 5번 파5 홀 세컨샷 지점
5번 파5 홀에서 웬만한 장타자라면 투온(On in two) 도전해 보고파 한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내리막(블루티 470m, 화이트xl 460m, 레드티 401m) 홀이며 세컨샷 지점부터 더 내리막이라 체감 거리가 짧다. 투온 공략을 방어하기 위한 그린 주변 벙커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그린도 평이하므로 무리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낼 수 있다. 평화로운 비즈니스 코스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홀이다. 이른 봄 백목련이 고운 홀이기도 하다.
남코스 8번 - ‘선녀교’ 정원 조경
8번 파3 홀(블루티 196m, 화이트티 164m, 레드티 114m)은 ‘선녀교 홀’로도 불린다. 그린 앞 커다란 연못이 큰 핸디캡으로 작용하는데 연못 가운데 섬이 있고 목조 구름다리 두 개를 놓아 건너갈 수 있게 했다. 분재 스타일의 관상용 소나무들도 심었다. 우리나라 골프장들 가운데 ‘일본 스타일’이라는 평을 듣는 전통적 코스들에서 자주 보이는 조형이다. 일본에는 골프장이 2,500여 개나 되고, 개성이 다양한 코스들이 많으니 ‘일본식’이 어떤 스타일인지 규정할 수 없다. 다만 이 코스 설계자 연덕춘 선생이 활동하고 영향 받은 시대의 일본 골프장들은 골프코스를 정원이라는 관점에서 보았거나 골프코스에 정원 조경의 기법과 요소들을 많이 사용했다고 이해한다.
관념화한 우주를 축소해 예술적 기호 양식으로 담아 관조하려는 일본식 정원의 세계관과 기법은 안양CC 등 우리나라 초기 명문 골프장들에서 도입되어 남아있으며 오랫동안 한국 골프장들 조경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안양CC 13번 파3 홀의 조경이 대표적인데) 이 홀 역시 그에 영향 받은 모습을 보인다. 처음 조성되었을 때는 ‘감상하는 정원’ 조경이었는데 나중에 나무 구름다리를 설치하여 ‘인간이 자연에 들어가 안기는’ 한국 정서를 보탠 듯하다. 골퍼들이 사진 찍어 남길 수 있도록 한 서비스이기도 하겠다.
연못이 심리적으로는 부담되지만 플레이에 큰 어려움을 주지는 않는다.
동코스 - 정직하고 역동적인 구릉 코스
동코스는 구릉을 넘어 오르내린다. 이 코스를 좋아하는 골퍼들은 전장이 가장 길고 다이내믹하며 정직한 스코어가 나온다고 말한다. 본디 회원제 코스였는데 (드라이빙 레인지 바로 옆에서 1번 홀을 시작하기 때문인지) 지금은 퍼블릭 코스로 운영된다. 동쪽의 신갈, 기흥, 구성, 방향에서 서쪽의 광교 신도시 방향을 동서로 오가는 구성이다.
도그렉형 홀, 페어웨이 한가운데가 높은 구릉이라 그린이 보이지 않는 파4 홀, 연못 장해물 등을 다양하게 모험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동코스 3번 - 언덕 너머 도전
동코스 3번 홀 티샷 지점(왼쪽), 세컨샷 지점(오른쪽)
3번 파4 홀은 길고(블루티 392m. 화이트티 372m, 레드티 267m) 페어웨이 중간이 약간 솟아오른 구릉이라 티잉 구역에서 그린을 짐작하기 어렵다. 티샷으로 구릉을 넘겨야 하고 세컨샷 어드레스를 왼발 낮은 내리막에서 하게 되기에 세컨드샷이 쉽지 않다. 이 코스 파4 홀은 이렇듯 페어웨이가 솟아오른 ‘깜깜이 그린’ 모양이 대부분이다. 그 중 이 홀이 가장 길어서 어렵다. 90년대 이전에 조성한 코스들에 이런 홀들이 많다. 그 까닭을 "옛날에는 앞 팀 뒤 팀에서 누가 플레이 하는지 모르도록 일부러 안보이게 만들었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만, 실제로는 땅 밑에 암반이 있었거나 하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동코스는 언덕 너머 보이지 않는 미래로 도전하는 느낌이다.
동코스 4번 - 락가든(Rock Garden) 홀
4번 파3 홀(블루티 194m. 화이트티 181m, 레드티 126m)에는 이 코스가 자랑하는 길이 100미터 연못의 바위 정원(Rock Garden)이 있다. 앞의 남코스 8번 홀 글에서 적은 ‘일본식 정원’ 홀이다. 길이가 주요 핸디캡이며 이 홀 연못도 심리적으로는 부담되지만 플레이에 큰 어려움을 주지는 않는다. 연못과 바위, 분재 형 반송으로 정성껏 조경된 연못에 비단잉어들이 노닌다.
동코스 7번 - 동코스의 ‘눈’
7번 파4 홀은 연못 위에 뜬 반도 형 그린의 아름다움과 변별력이 압도적으로 돋보인다. 길이가 짧지만(블루티 332m. 화이트티 311m, 레드티 231m)연못에 수직으로 세운 침목 위에 그린이 있기에 공략이 까다롭다. 특히 오른 쪽 그린 앞 쪽에 핀이 꽂힐 때 짜릿하다. 판소리에서 가장 핵심 대목을 ‘눈’이라고 하는데, 동코스의 품격과 매력을 높여주는 ‘눈’ 격으로 인상적인 홀이다.
지원 시설
클럽하우스와 스타트하우스
클럽하우스 야경
2015년 클럽하우스를 리모델링했다. 스타트하우스는 네델란드 출신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 프랜신 후벤(Francine Houben)이 새로 설계해 지었다. 후벤은 태광그룹에서 운영하는 ‘세계 100대 플래티넘 클럽’ 휘슬링락CC의 클럽하우스와 티하우스를 설계했으며, 이곳에도 휘슬링락의 건축 컨셉과 품질을 적용했다.
과거에는 클럽하우스 등 건축물이 마치 학교 건물처럼 보수적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대한민국 수도권 중심 클럽으로서의 전위적 비주얼 감각과 36홀 골프장으로서의 기능성을 함께 갖추었다.
스타트하우스 내외부
비거리 무한대 드라이빙 레인지, 어프로치 연습장
이 골프장에 딸린 드라이빙레인지는 ‘비거리 무한대’라고 자랑하는 규모가 압도적이다. 타구의 방향과 구질, 착지점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전형 연습장으로, 3개 층 108타석 규모이며 3층에 입주한 골프아카데미서 수많은 골프 스타들이 양성되었다. 수원, 용인, 분당 등지에 골프 선수들이 자신의 구질과 낙하지점을 확인하는 실전 연습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
퍼팅, 벙커샷, 어프로치 등을 실제 코스 환경에서 익힐 수 있는 야외 연습장도 있다. 이곳 부설 골프아카데미에서 연습하는 선수들이 퍼블릭(동)코스와 클럽하우스 앞 연습 그린에서 상시 실전 수련한다.
덧붙임 - 한국 골프문화 쇼케이스, 런웨이
이 골프장을 소유한 태광그룹이 강원도 춘천에 운영하는 휘슬링락CC는 ‘골프매거진’ 한국판이 선정한 ‘2017 한국 10대 코스’ 평가에서 1위에 올랐다. ‘클럽 리더스 포럼(Club Leaders Forum)'으로부터 ’5 Star Private Club' 등급의 ‘세계 100대 플래티넘 클럽’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룹의 자존심을 표현하는 골프장으로 휘슬링락CC를 가꾸어오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휘슬링락CC 같은 클럽은 또 만들 수 있을지라도, 태광CC 같은 골프장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의 골프는 세상 어디와도 다르다.
한국 남녀 선수들의 기량은 세계 프로 토너먼트에서 입증되었고 일반 골퍼들의 기량 또한 으뜸 수준임이 분명하다. 전국의 마을마다 성업 중인 스크린골프를 통해 여성과 청년들이 속속 골프에 입문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대담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 골퍼들에게 골프코스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연출하는 패션 런웨이가 되어 SNS를 통해 세상에 실시간 방영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일찍이 없던 문화 트렌드가 하루가 다르게 격동하는 곳이 한국의 골프장이다.
그런 한편 한국 대중문화는 세상에 없던 컨텐츠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등은 한국인들이 빚어낸 문화가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이 책이 발간될 즈음에는 또 다른 콘텐츠가 세계를 사로잡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흐름의 한가운데서 생각하건대······ 분당, 용인 수원 일대가 골프 8학군이라면, 태광CC 는 청담동 격이거나, 세계 골프 문화의 한 갈래 흐름을 주도하는 ‘쇼케이스’, ‘런웨이’ 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동·남코스에서 옛날 코스 느낌이 나고 서·북 코스가 임상하 설계의 한국적 스타일이라는 점은 더 매력적이라고 본다. 최신 스타일로 변별력 있게 만들어진 골프코스는 세상에 흔하지만 이천만 인구 메가시티의 핵심에서 전통적 모습을 간직한 코스는 홍대 앞거리나 북촌, 이태원처럼 고유하거니와 오히려 스타일리시 하게 가꾸어 나갈 수 있지 않은가.
스콧 피츠제랄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의 소설 '위대한 갯츠비'는 소설로도 영화로도 세계 문화 흐름에 영향을 주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가 주연한 1976년 작 영화 ‘위대한 갯츠비’에서 랠프 로렌(Ralph Lauren)이 디자인한 의상들과 영화 속 파티 모습은 세계의 상류 지향 문화를 이끌고 패션의 변방에 불과했던 뉴욕을 세계 유행과 문화의 중심지로 띄워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소설 속에 나오는 롱아일랜드의 갯츠비 대저택과 그곳에서 밤마다 열리는 파티 라이프를 선명한 영상으로 떠올리며 동경하고 이루고 싶은 마음 속 모델로 삼았다.
지난여름 어느 밤, 나는 광교 신도시로 이사한 친구와 광교 호수공원을 산책했다. 야간 라운드 라이트가 환하게 비추는 태광CC 쪽 밤하늘을 보며 그가 말했다.
“저 불빛을 보면 파티가 매일 열리는 갯츠비네 저택 강 건너 동네 뉴요커가 된 거 같아.”
----------------
위 글 뒷부분 '덧붙임'은 저 혼자의 거친 생각입니다. 태광CC가 그 생각처럼 가꾸어가기를 기대합니다. 이 생각 부분을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책에 기록할지는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스타일 지향으로 적었습니다만 트렌드를 뛰어넘는 골프코스의 본질가치를 중히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