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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Dec 26. 2021

‘패션으로 찾아온 한국 골프’

모든 골퍼들은 타이거 우즈처럼 치고 싶어 한다.

타이거 우즈는 신화 속에서 걸어 나온 영웅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은 신과 인간의 교합으로 태어난다. 몸은 인간이라 죽을 운명이지만 영혼에는 신성이 깃들어 불멸에 도전한다.

가장 유명한 영웅 아킬레우스는 신과 인간(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 왕) 사이의 아들이다.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려는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테티스는 “전쟁에 나가면 명예롭게 죽지만, 나가지 않으면 행복하게 오래 산다.”는 신탁을 알리며 만류한다, 아킬레우스는 명예롭게 죽어 역사에 남기를 선택한다.      


타이거 우즈에 열광하는 것은 그가 우승을 많이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도전하는 영웅’이다. 스윙 기술에서, 트러블 상황에서, 플레이 전략에서, 육체의 단련에서······ 그는 당대 인간들의 상상을 넘어 도전하고 이겨내 왔다.

인종 차별과 야유를 뛰어넘고, 완벽하다고 칭송받던 스윙을 스스로 바꾸었으며, 부서지는 육신을 꿰어 맞추고, 늙어가는 두려움과도 싸운다.

그 전까지는 있는지도 몰랐던 골프의 한계가 그에 의해서 허물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인간의 몸이라 필멸하지만, 도전하는 불멸의 신성을 지녔기에 신화 같은 영웅이다.

그의 싸움을 보며 동시대인(골퍼)들은, 그가 (우리)자신의 비루함을 대속하여 신화에 도전함을 응원하고 숭배한다.     


그를 ‘골프 황제’라고 부르지만, 그가 위대한 것은 ‘신성한 도전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도전이 골프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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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영웅은 도전이 멈추는 순간에 파멸을 맞는다. 아킬레우스도 헤라클레스도 도전의 정점에서 스러졌다.

현실의 영웅도 그렇다. 타이거 우즈는 한때 (그를 숭앙하던)세계 골프 호사가들에게 조롱과 비관의 필설로 씹혔다. (다른 비유이지만) 한때 시청률 60%를 넘던 <야인시대> 드라마 김두한의 인기는 도전자 ‘김또깡’이 ‘오야붕’에 등극한 순간부터 곤두박질쳤다.


도전 속에 파멸함으로써 신으로 승격되는 영웅도 있다.

제우스의 아들을 자처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신화 속 영웅처럼 (전투마다)불가능에 도전했다. 페르시아와 이집트에 이르는 대영토를 정복하고 전쟁터에서 요절함으로써 역사 속 신격의 생명을 얻었다.


영웅의 신성을 대중 선동에 활용한 천재도 많았다.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가 트로이아의 신화적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자손이며 카이사르와 자신도 그의 ‘핏줄’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죽은 카이사르를 신격화함으로써 신성의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제국의 시대를 연다.

‘영웅 -> 군주 -> 신’ 서사를 대중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다.      


이 수법은 그 후 간단없이 재활용된다.

슬픈 예를 들자면, 히틀러는 게르만족 영웅 신화를 나치 제국의 ‘민족중흥’ 이념에 끌어다 썼다. 영국 왕실은 식민지를 침략하여 수탈하는 대영제국의 야욕을, (신성의)고아한 여왕과 귀족(왕을 지키는 영웅 신화를 내재한 기사계급), 그리고 젠틀맨(기사의 대중 버전)의 이야기로 포장하여 합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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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는 패션 스타일에도 전파되었다.

세기의 멋쟁이로 유명했던 영국 왕 에드워드 8세(윈저공)의 옷차림은 20세기 초반 세계 상류층 남성 드레스코드를 새로 만들다시피 했다. 왕가의 구매품에 선택됨으로써 ‘로열’의 신성을 부여받은 소위 ‘명품’들을, 제국의 신민들은 추종 소비해왔다. 이십세기 후반의 다이아나 왕세자비는 ‘로열’에 열광하는 패션계의 모티프 원천이 되기도 한다. (히틀러는 후고 보스 Hugo Boss에게, 게르만 신화 영웅의 이미지를 담은 나치 군복을 디자인하게 했으며, 지금도 세계의 여러 콘텐츠들이 -스타워즈 등- 이 제국적 디자인을 모방한다.)    

 

20세기의 로마제국이라 할 미국은 신화의 뿌리가 없기에, (영국의 젠틀맨 서사를 이어받는 한편) 현실에서 영웅들을 만들어 온다.

전쟁 영웅, 극복 영웅, 셀럽 히로인, 연예 스타 ...... 무엇보다 돈을 잘 벌고 쓰는 영웅 신화를 지어낸다. 할리우드에서 넷플릭스에 이르는 대중문화 산업 생태계는 희랍 신화의 올림포스 산정을 현대에 투영한 물신(物神)의 제단이다. 스포츠 분야 또한 영웅 신화를 2차 전지 삼아 흥행한다. (그 방식의 껍질을 우리 사회도 본받아온다.)       


타이거 우즈는 미국식 영웅이면서도,

고대 희랍 신화 속에서 바로 걸어 나온 듯한 신성(神性)을 뿜어낸다.     

따져보면 영국 왕실은 바이킹의 (세속화하고 가공된) 후예에 불과하지만, 타이거 우즈는 서양문화 원천의 신화 영웅 원형 같은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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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신화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따온 브랜드 나이키(Nike)가 타이거의 도전적 영웅성을 북돋고 퍼뜨렸다, 미국 골프업계는 그의 신화를 활용하여 PGA 투어를  올림포스 산처럼 신들이 노니는 전장으로 만들었다. 신성의 도전이 감도는 전장은 세상에 잠자던 영웅들을 깨워 불러냈다.

그의 영웅적 도전에 힘입어 (미국)골프 산업은 전성기 로마처럼 제국의 영토를 넓혔다. 제국에 기대어 크고 작은 왕국들이 생겨나 공생하거나 기생하게 되었다.      


골프 패션, 골프 장비, 골프코스들도 타이거가 이끄는 제국에서 진화하고 창안되고 번성했다. 레저복의 경계에 있던 골프웨어는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스포츠웨어로 완성되어 다시 레저 웨어의 영역을 침략하기도 한다. 골프 장비와 골프코스는 더욱 본질적 변화와 분화를 겪어온다.


타이거 우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존재다. 스스로 황제라 칭하지 않았지만 로마의 후대 황제들이 모두 스스로 카이사르라 칭했던 것처럼, 후대의 골프 황제들도 어떤 식으로든 타이거를 따를지 모른다. 그가 사라진 이후 제국의 영화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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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를 칭송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골프 산업의 존재 위치는 제국의 특성을 갖는 문화 시장이다. 스포츠이지만 문화 산업으로 볼 때 새 지평이 열린다.     


한국 골프와 골프 시장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예상을 깨고 성장해왔다. 엘리트 선수들의 기량은 세계 수준에 이르렀고, 젊은이들은 스크린골프 게임방을 통해 점점 더 쉽게 골프를 접한다. 여성 골퍼들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마이카 붐’ 시대에 집집마다 차를 사야 했던 것처럼, 이제 골프는 대중의 게임이 되어 간다.     


한국에서 골프는 패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나라 골퍼들은 세계에서 가장 대담한 스타일의 골프웨어를 입는다. 비싼 옷과 고급 골프 브랜드의 장비들일수록 잘 팔리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좋은) 골프장에 가서 (고급 브랜드의) 멋진 옷을 입고 ‘인증샷’을 찍어 SNS에 공유하여 퍼뜨리고 컨텐츠로 재생산한다. TV에서는 공중파에서도 ‘골프 예능’을 방영한다.

이런 흐름을 (심지어 골프 업계 사람들도) 곱지 않게 보기도 하는데, 골프 업에 관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현상이다. 문화와 경제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추세라고 생각한다. (상업적 대중예술 작품이 100개 팔려야 순수예술 작품이 하나 팔리는 것이 시장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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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소비자들이 골프를 트렌드나 ‘플렉스’로 즐기는 경향은 단기적으로 보면 골프 산업에 보탬이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중물’ 정도로 봐야할 현상이겠다.

트렌드는 지나간다. 한때 붐을 맞았던 스키를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트렌드에 기대다 보면) 골프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다.

내가 열흘 전쯤의 글에서 적었듯이, 스크린골프게임에 익숙한 세대가 더 많아지면서 현실골프의 소비 시장에 어떤 변화가 올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의 트렌드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반면에, ‘명품’과 ‘로열’을 만든 신화 서사는 트렌드를 라이프 스타일로 연결하여 영속성(Eternity)을 얻는 데 성공해왔다.)     


그런 한편, 국내 시장의 골프 패션과 장비 브랜드가 매우 많고, 외국 브랜드들 의존 비율이 높은 시장 취약성은 날이 갈수록 골프 문화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외국 브랜드 사업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으로선 순기능이 더 많다.) 다만, 세계가 온라인 네트워크로 이어질수록 외국 브랜드들에 기댈 수 있는 우리나라 중간 사업자의 영역은 좁아지거나 미미하게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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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영웅 신화와 타이거우즈의 예를 들어 길게 얘기했듯이 패션과 브랜드는 ‘제국’의 속성을 갖고 있다.

샤넬의 제국, 아르마니의 제국...... 세계를 경략하는 브랜드들은 (나름대로 타이거 우즈처럼)영웅적인 도전 속에서, 스스로 신성한 혈통을 쟁취하여 제국을 건설한 것들이다.     


제국이라 하면 침략을 생각하기 쉽지만, 문화의 제국은 부드럽다.

현실의 제국은 제후국들에게 평화를 약속하고 동맹의 조공을 얻지만(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로마나), 문화의 제국은 행복을 주고 재화를 거두면서도 리더로서 존경 받을 수 있다. 이미 현대 골퍼들은 자발적으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타이거 우즈의 제국에 살고 있다.       


패션으로 다가온 한국 골프 시장은 한두 해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그 이상 팽창하기 어렵다. 그것은 이미 세계 10위권에 오른 한국 경제의 형편과도 닮았다. 한국 경제보다 높은 등위에는 이미 제국이거나 제국 수준의 문화 브랜드들을 갖춘 나라들 밖에 없다.

이미 세계 3위권에 오른(게다가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한국 골프 시장은 스스로의 골프 문화를 밖으로 전파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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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같은 영웅을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그런 영웅 모델을 구하는 것은 상상력 없는 영웅 대망이거나 흉내 내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다.      


다른 방법은 있다. 최근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 시장에서 떨치고 있는 도전과 성취가 웅변하듯이, 세계에서 가장 역동성 있는 문화적 가능성을 품은 사회가 한국이다.

한국 골프 또한 그렇다. 타이거 우즈 같은 영웅은 내지 못할지라도 세계인들이 끌려 들어올 만큼 매력적인 골프 문화를 만들어낼 역동성이 있다. 일본이나 중국이 결코 따라오지 못하는 부드러운 신화, 존경받는 문화 제국으로서의 골프를 한국은 가질 수 있다.



한국인은 제국을 꿈꾸지 못해왔다.

삼성도 아직은 제후국 쯤의 ‘왕국’이다.  

그래서 스스로 가두고 머뭇거린다. 도전하지 않음을 현명함이라 자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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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쯤 써올린 ①번 단상

‘메타버스골프와 현실 골프의 미래’에 이은

② 패션으로 찾아온 한국골프 - 편이다.     


다음에는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을 쓰되, 전에 예고했던 아래 주제에 담아보려 한다.

③ 프로골프, 게임, 스포츠 - 변방과 중앙, 본질과 현상의 선후·상호 관계


시간을 내야 하는 짓이라 언제 쓸지는 모르겠다. [한국의골프장이야기]를 쓰기에도 겨를이 없다.     


갖추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니 생각 전개가 거칠고 글은 성글다. 갖춰 쓰려면 내뱉지 못할 말들이라 싶어, 헛되더라도 마구 적어둔다. 송구하게도 기왕 읽으셨다면 본뜻만 헤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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