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석무 Jan 09. 2022

신라컨트리클럽 - [한국의골프장이야기] 탐사기록

이 포스팅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3권 집필을 위한 탐사 기록입니다.



신라 골프장엔 언제나 꽃이 피고 있을 것 같다.

봄물 오른 벚나무가 천지간에 흰 꽃을 뿜어내던 코스를 기억한다.

내 몸에 분홍 피 물들 듯하던 홍매화 진달래 언덕도 눈에 분분하다.

풍만함에 겨운 살구 열매가 홀마다 노랗게 떨어지는 유월과

산골 소녀들처럼 재잘거리던 보랏빛 들꽃 비탈도 삼삼하다.

금잔디 들판 너머 온 산이 붉은 꽃으로 피어오른 가을도 꿈에 선하다,        


남한강 건너 신륵사를 지나 여주의 신라컨트리클럽에 많이 갔다. 봄여름가을겨울, 비올 때와 눈 올 때도 라운드 했건만, 기억을 지배하는 모습은 ‘울긋불긋 꽃 대궐’ 같은 언덕이다. 나만 그렇게 추억하는가 싶었는데 이 글을 쓰며 물으니 주변에 동감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신라이름과 코스의 유래

‘신라’라는 이름 때문에 역사가 아득한 클럽인 것 같지만, 이 골프장은 1995년에 문을 열었다. 경주에 있는 ‘경주신라CC’와도 관계가 없다. 처음 주인은 재일동포가 운영하던 ‘삼공개발’이었는데, 이 회사 소유주가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과 친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그룹의 신라호텔에서 운영하던 제과업을 인수하여 ‘신라명과’로 사업했으며, 이 골프장 이름도 같은 브랜드의 ‘신라컨트리클럽’으로 지었다고 알려진다.

회원을 적게 모집해서 번거롭지 않게 운영하던 클럽이라 골퍼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나, 모기업의 사정으로 2013년 법정관리를 받게 된 뒤에, 2015년 대중제로 전환하고 현재의 주인(KMH 그룹)이 인수하여 성업 중이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안양컨트리클럽을 처음 만들 때(1968년) 일본 명문 골프장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안양 CC에 대해서는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1권에서 이미 적었다) 이병철 회장의 지인이자 재일동포이던 신라컨트리클럽(이하 '신라CC') 소유주는 안양컨트리클럽을 많이 본받고자 했던 것 같다.

신라CC 개발 당시 골프코스 설계가 선정과정에서 한국 설계회사들과 일본의 유명 설계회사가 경쟁했다. 경합 결과 한국 설계가 임상하(임골프)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는데, 설계 진행 초기에는 ‘임골프’ 디자인을 제출받은 소유주가 일본 설계회사에 보여주고 의견을 묻는 일도 잦았다. 당시 임골프 설계팀은 일본 전문가들도 고개 숙일 설계안을 내기 위해서 전투하듯이 이곳 지형을 연구했다고 한다.       


동코스 1번 파4 홀

임상하가 설계를 맡다

골프장 소유주는 이 터에 안양CC처럼 고운 코스를 짓고 싶었고, 설계자는 한국 산중 지형에서의 전략적 골프 코스 모델을 만들고 싶었던 듯하다. 이 골프코스를 설계한 고 임상하(1930~2002) 선생은 1990년대 한국 골프코스의 중요한 한 갈래 흐름을 만든 설계가다.     


(앞의 ‘용평GC’ 편 등에서 적은 것처럼) 1980년대 중후반 용평리조트에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와 로널드 프림이 설계한 골프장이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서구 전문가들이 한국 골프장 조성에 참여하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 골프장에는 일본식 정원형 코스 스타일을 따르던 그 즈음까지의 경향에서 벗어나 서구적 도전성과 전략적 코스 개념을 받아들이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1993년에 나란히 개장한 우정힐스CC(페리 오 다이 설계), 아시아나CC(로널드 프림 설계), 태영CC(현 블루원용인 / 더글러스 니켈스 조형설계) 등이 그 대표적인 골프장들이다. (이때의 과정은 앞의 ‘블루원용인’ 편에서 적었기에 생략한다.)      

이 흐름 속에, 골프코스의 서구적 본질 개념을 도입하면서 우리나라 산중 지형의 고유한 특성을 코스에 담아내려한 설계자가 임상하였다.

그는 한양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도시계획 전문가로 일하다가 장년기에 골프코스 디자인을 시작했다. 과천 신도시계획, 제주 중문단지 계획, 경주 보문단지 계획 등에 참여했는데, 특히 중문과 경주의 관광단지를 조성할 때 골프코스를 계획·감리하면서 코스 설계와 인연을 맺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설계 작품은 1984년 문 연 뉴서울CC 북코스였다. 1987년 ‘임골프’를 설립한 뒤 그는 이 신라CC를 비롯하여, 화산CC, 지산CC, 레이이크사이드CC, 파인크리크CC 등 약 60여개의 골프코스 작업에 참여한다.        



임상하의 설계 세계 - 한국 산중 코스 미학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1권 ‘화산CC’ 편에 기록했던 임상하의 말을 다시 적는다, 그는 임골프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부득이 자연에 손대어 개발하려고 할 때, 그 자연에는 스스로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그 모습을 치열하게 찾아내는 게 설계자와 개발자의 작업이고 의무다.”     


그와 함께 일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된 자료들을 살피는 한편, 그가 설계한 코스들을라운드 하면서 본 그의 생각과 설계 특징, 그리고 남긴 영향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 적어둔다.     


첫째,

그는 코스 설계가로서의 기술 전문성을 넘어 총괄적 기획자로서의 통찰을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었다. 도시계획을 오래 했기 때문인지, 그는 ‘국토의 소중함과 개발자의 사명감’을 자주 강조했다고 한다. 골프장을 만들려면 산을 파헤쳐야 하는 우리나라 지형에서, 자연의 일부를 변형할 때는 반드시 본디 자연을 보완한다는 소명을 가져야 하고, 지속 가능한 자연을 재창조해야 한다고 여겼다.      


둘째,

임상하는 골프코스의 전략성과 도전성 등 서구적인 본질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한국 산중 지형에서의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1990년대에 많은 작업을 했다. 국내에 많은 골프장이 개발되고 상당수 서양 설계가들이 코스 설계를 맡으면서, 일본의 비즈니스 골프장들을 본뜬 정원형 골프장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흐름이 일던 때였다. 그는 그 흐름을 적극 수용하는 한편 우리나라 골프장들에 이미 정착된 일본풍 정원형 조경 요소들을 한국 전통 조경 개념으로 끌어안으려는 노력도 보여주었다.

신라CC는 그러한 시도의 초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셋째,

그는 시대적 변화를 주도한 기획자였다. 한국 골프장들이 투그린에서 원그린 코스로 변화하는데 적극적인 전도사 역할을 했으며,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서구 유명설계가와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협업하기도 했다. 평창 휘닉스CC를 조성할 때 코디네이터로서 잭 니클라우스를 설계자로 초빙하고 자신은 실시설계를 맡아 협업한 것을 비롯하여, 가평베네스트CC(잭 니클라우스 설계), 오크밸리CC(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 설계), 제이드팰리스GC(그렉 노먼 설계) 등의 작업에서 실시설계를 맡아 골프코스의 세계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서양 기술진과 한국 실무 전문가들 사이에 우리나라 지형 특성에 대한 활발한 협의와 공동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배려하여, 한국 골프장 조성 안목과 노하우가 크게 발전하는 물꼬를 트기도 했다.      


넷째,

그는 실험적인 설계를 좋아하고 시도했다. 공을 띄워서 계곡이나 호수를 넘기도록 하는 홀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는데 그 이전에는 (골프장 소유주들이 싫어하여) 꺼리던 방식이었다. 파3, 파4, 파5 홀이 각각 3개씩인 3-3-3 구성의 코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후기로 갈수록)한국 산중지형의 역동성을 이용해서 ‘영웅형(Heroic) 홀’ 과, ‘전략형(Strategic) 홀’, ‘벌칙형(Penal) 홀’을 고루 배치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다섯째,  

임상하는 토목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이자 예술성을 추구한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그는 서양화가의 길을 걷던 권동영 등을 코스 설계에 입문시켜 골프코스에 회화적 미감을 입히려 했다. 골프장을 화폭으로 이해하고 벙커, 호수 언듈레이션 등의 조형을 우리나라 지형과 어울리게 그려내게 한 시도는 이후 한국 골프코스 디자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화산CC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신라CC도 그의 제자 권동영의 회화적 터치를 적용한 작품이다. 1990년대 이후 임상하는, 한국의 역동적 지형을 이용하여 코스의 기능적 변별력을 빚어내면서, 땅의 고유한 흐름 속을 모험하는 코스의 아름다움을 찾는 노력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임상하의 한국 산중 코스 미학’이라 할만하다.      


여섯째,

인재를 많이 키워낸 스승이었다. 권동영(힐드로사이CC, 청평마이다스CC, 라싸GC 등 설계)을 비롯하여 임상신(안성H, 힐데스하임CC, 대영베이스CC 등 설계), 김병국(마에스트로CC, 루트52GC 등 설계) 등 많은 전문인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어 한국 골프코스 설계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임골프는 그가 별세한 뒤 2005년 오렌지엔지니어링에 인수·합병되었다.)          

  

남코스 9번 홀 호수


코스에 대하여     


남한강은 여주를 서남쪽의 평야지대와 동북쪽의 배산임수 지대로 가르며 흐른다. 신라CC는 남한강 서북쪽 여주의 낮은 산기슭에 있다.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내려온 산악의 기운이 문막 오크밸리 부근에서 숨을 고르며 낮아지다가 남한강 유역의 평야를 만나며 낮은 구릉으로 잦아드는 자리다.      


넓은 산기슭에 낸 평활한 코스

도두물재산 기슭 해발 200미터 지점의 클럽하우스에서 보면, 서코스가 해발 100미터까지 마을을 향해 내려가고, 동코스는 해발 300미터까지 구릉을 타고 올라간다.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고도 차이가 큰 편이지만 오르막 내리막을 느끼는 홀은 많지 않다. 53만여 평의 넓은 땅에 27홀을 넉넉히 배치하여 각 홀이 독립적이고 평활하다.     



코스 조성 당시에는 우리나라 골프장들이 전동카트를 쓰지 않았으며, 캐디가 백을 메고 걸으며 플레이를 도왔다. 평탄하고 걷기 좋은 홀들을 만들기 위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을 분리해서 코스를 앉히고, 한가운데 경사 급한 곳은 자연 녹지로 보존했다. 높은 지대와 낮은 지대를 잇는 경사지에 이동용 컨베이어 벨트 리프트(Conveyor Belt Lift)를 설치해 이동하도록 했다(전동카트를 쓰게 된 뒤로 이 컨베이어벨트는 흔적만 남아 있다.) 코스 시공을 삼성건설에서 맡았는데, 당시에는 이렇게 공들인 시도가 흔치 않아서, 소유주가 일본에서 파견한 기술진(TODA)이 현장에 상근하며 진행을 감리했다고 한다.        

  


조화롭고 온화한 난이도

신라CC는 이른바 ‘코스랭킹’ 평가에서 높은 등위에 오를 만큼 샷밸류와 난도를 끌어올린 골프코스는 아니지만, 한국 골퍼들이 매우 좋아하는 골프장이다. 언론사와 골프예약 대행업체들이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물어 선정한 ‘소비자 만족 10대 골프장’ 등의 평가에서 줄곧 상위에 오르고 있다.      


그 까닭은 우선 ‘조화로움’에서 찾을 수 있겠다. 골프코스가 골퍼의 공격에 격렬하게 저항한다기보다는 길을 안내하며 은근히 막아서고 피한다. 심장이 덜덜 떨리도록 변별력 높은 홀들은 드물지만 미스샷에는 가혹하지 않은 정도의 불이익을 줌으로써, 골프의 재미를 조화롭게 느끼도록 한 코스랄 수 있겠다.

페어웨이는 넓고 벙커와 호수 등 장해물은 그린 등 목표지점에 바싹 붙어있거나 하는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그런 한편 오르막과 내리막, 구릉을 끼고 도는 휘어짐과 뒤틀림, 커다란 그린의 굵직한 언듈레이션 등으로 미묘하게 빗겨나간다. 티샷과 어프로치샷, 그린 플레이에서 적당한 모험과 은근한 전략적 판단을 주문하는 코스이니, 비즈니스를 위한 친목 골프에서 승부를 보는 골프까지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정감 넘치는 한국 산중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골프코스는 많지만, 한국 산중의 친근한 아름다움으로 보면 신라CC를 높이 칠만하다. ‘한국 산중 코스 미학’을 지향한 임상하 설계의 자연스런 코스에, 재일동포 (첫)소유주 취향의 조경수 식재가 어우러져 홀마다 진귀한 수목 정원이 되었다.

설계자는 주변의 산과 숲 등 경관을 코스 안에 끌어들인 차경(借景) 기법을 주로 구사했고, 소유주는 진귀한 모양의 소나무와 벚나무, 살구나무, 꽃피는 관목들을 심어 각 홀들을 치장한 것으로 보인다. 소유주는 아마도 안양CC 조경 수목들의 영향을 받았던 듯한데, 어쨌든 이런 조화 속에서 플레이어는 홀마다 다르고 철마다 변화하는 경관을 지나며 눈이 즐겁다.           




서, 남, 동 각 코스와 인상적인 홀들     


클럽하우스가 해발 200미터의 중간지점이고, 서코스가 해발 100미터의 가장 낮은 지점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동코스는 해발 300미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며, 남코스는 대략 중간 지점에 있다.

대한골프협회(KPGA)가 USGA(미국골프협회)와 R&A(영국왕립골프협회)의 월드 핸드캡 시스템(World Handicap System)으로 측정한 ‘코스레이팅’을 보면, 신라CC는 전반적으로 평균 수준의 난이도를 보이며 세 코스의 난이도는 비슷하다. (난도는 남코스-동코스-서코스 순이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 서코스 - 장려한 드라마 ]  

3,533야드(화이트티 3,271, 레드티 2,604)


서코스에서는 호쾌하게 치고 나갈 수 있다. 넓은 들판을 조망하며 거침없이 내려가는 홀과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는 듯한 홀 등이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피해야 할 장해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어 적극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다. 전망이 수려해서 여성들이 좋아하는 코스라고 한다. 여성 골퍼들의 스코어가 다소 잘 나오기도 한다.     


서코스 1번 파5 ,

(블루티 533야드, 화이트티 505야드, 레드티 408야드)


서코스 1번 파5 홀

1번 홀 티잉 구역에서 이렇게 장쾌한 기분이 일어나는 홀은 드물다. 시야는 멀리 흐르는 남한강 너머까지 트여 일망무제로 끝없고, 내리막 페어웨이는 우아한 곡선을 이루며 드넓다. 호쾌하게 티샷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픈 마음이 저절로 드는 파5 홀이다. 페어웨이 양쪽 비탈에 동양화처럼 무리지어 선 소나무들 사이로 황새가 날아갈 듯하다.

골프코스가 “여주 땅의 매력을 즐겨보세요.”라고 초대하는 서정적 풍광이다. 어려움 없이 편안한 스코어를 내며 시작하라고 배려한 첫 홀이기도 하고.    

 

서코스 7번 파4 ,

(블루티 371야드, 화이트티 320야드, 레드티 285야드)

서코스 7번 파4 홀

7번 홀은 하늘로 향하는 오르막이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지만 페어웨이에서 어프로치샷 할 때 그린 뒤에 탁 트인 하늘이 시원하다. 설계자는 여주의 드넓은 들판을 1번 홀에 펼쳐 보여주고, 7번 홀에서는 장엄하게 열린 하늘을 향하는 경험을 주려 했던 것 같다.


서코스 7번 파4 홀 그린 너머 나무들

그런데 조금 아쉽게도 그린 뒤 하늘을 소나무들이 늘어서 가리고 있다. 아마도 처음 소유주가 심은 듯하다. 제법 값나가는 모양의 조경수이긴 하지만 그린 뒤는 비워두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티잉 구역에서 페어웨이 왼쪽의 벙커를 티샷으로 넘길지 우회할 지를 선택해야 하는 전략적 홀이다.    

   

서코스 9번 파5 ,  

(블루티 597야드, 화이트티 530야드, 레드티 448야드)

서코스 9번 파5 홀

클럽하우스를 향해 귀환하는 파5 홀이다. 끝까지 오르막인 긴 홀이므로 모든 샷을 정확하고 멀리 쳐야한다. 클럽하우스에서 보면 이 홀과 남코스 9번 홀이 보이는데 이 두 홀 그린이 가로로 길게 이어져 있다. 그린 앞의 커다란 호수는 신라CC의 상징 정원답게 유려하다. 다만, 이 홀에서 세컨샷을 할 때 오르막 페어웨이가 호수를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일반 골퍼들은 세컨샷을 호수에 빠뜨리지 않겠지만, 투어프로급 장타자들은 미리 알고 조심해야 한다(단타자들도 세 번째 샷에서 이 호수를 의식해야 할 수 있다.) 긴 거리와 가로형의 굴곡진 그린이 어려움을 주는 홀이다.



[ 남코스 - 전략과 도전의 묘미 ]

3,473야드(화이트티 3,290, 레드티 2,603)


남코스에는 전략형 홀과 영웅적 홀, 벌칙형 홀들이 아기자기하게 교차 배치되었다. ‘생각하고 도전하는’ 골프의 묘미를 적절하게 맛볼 수 있다. 심장이 떨리도록 모험적인 홀들은 아니더라도 도전과 보상(Risk & Reward), 전략적 선택을 생각하며 플레이하도록 만든 코스다.      


남코스 2번 파5

(블루티 506야드 화이트티 481야드, 레드티 402야드)

남코스 2번 파5 홀

티샷은 오르막, 어프로치샷은 내리막으로 하는 도그렉 블라인드 형 파5 홀이다. 장타자는 왼쪽 산비탈을 넘겨 페어웨이에 공을 보내면 쉽게 투온(On in Two)할 수 있다. 비교적 짧은 파5 홀이면서도 그린 앞 장해물은 작은 벙커뿐이므로, 장타자를 유혹하는 홀이다. 티잉 구역에서 장타자의 랜딩지점을 조망할 수 없으므로, 미리 홀 모양을 충분히 숙지하고 플레이해야 유리하다.


남코스 4번 홀 전망대

남코스 4번 홀 전망대 조망

남코스 4번 홀 티잉 구역 뒤편에는 클럽하우스와 주변 경관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신라CC의 포토존이기도 하다. 멀리 양평 쪽의 고래산(541m)과 우두산(450m), 가까운 금당천 주변의 너른 들판이 장려하게 펼쳐지는 조망이다.     


남코스 5번 파3

(블루티 180야드, 화이트티 174야드, 레드티 152야드)

남코스 5번 파3 홀

커다란 연못 너머에 넓은 2단 그린이 있다. 내리막이라 실제 플레이 거리는 20야드 정도 짧지만, 연못을 반드시 넘겨야만 하는 벌칙형 홀이다. 맞바람의 영향을 감안하여 충분한 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바람의 영향이 있는 홀은 길이가 짧을수록 어렵다. 짧은 클럽으로 칠수록 공이 높이 뜨니 바람의 영향을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핀이 앞에 꽂혀 있을 때 가장 어렵다.

이 홀에서는 티샷할 때 멀리 남한강 쪽 산봉우리들을 감상하고, 그린에서는 티잉 구역 언덕을 뒤돌아보아야 한다. 철쭉 언덕과 연못이 어우러진 경관이 볼만 하다.          


남코스 7번 파5

(블루티 603야드, 화이트티 576야드, 레드티 457야드)

남코스 7번 파5 홀

오르막을 감안하면 화이트티에서도 600야드가 넘는 파5 홀이다. 왼쪽으로 굽은 홀이므로 조금이라도 짧게 질러가려면 티샷에서 페어웨이의 왼쪽을 겨냥해야 하는데 오비와 벙커가 있어서 부담이 크다. 일반 골퍼는 쓰리온 하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린도 쉽지 않다. 세 번의 샷 모두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쳐야 한다.   

이 홀도 그린 뒤편에 하늘이 열린 스카이 홀인데, 나무가 너무 우거져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린 뒤편이 오비구역이라 나무를 길러놓은 듯한데, 부분적으로라도 틔워놓으면 더 인상적인 홀이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남코스 9번 파4

(블루티 451야드, 화이트티 394야드, 레드티 291야드)

남코스 9번 파4 홀

신라CC에 인상적인 홀들이 많으나 그 가운데서 이 파4 홀이 시그니처 홀이라 하겠다. 티잉 구역에서 광활한 페어웨이와 연못과 벙커, 그리고 그 너머의 그린과 클럽하우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직선형이지만 이렇게 많은 시각 정보가 있는 홀은 어렵기 마련이다. 티샷을 잘 쳐도 미들아이언 이상의 클럽을 잡게 되기 쉬우니 티샷이 잘 맞지 않았다면 쓰리온(On in Three)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벙커와 연못이 그린을 가로막고 있으니 깃대가 어디 꽂혀있는지에 따라 어프로치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 자신 있는 어프로치샷 거리를 남겨야 유리하다. 괴물 같지만 매력 있는 홀이다.        



[ 동코스 - 역동적 자연과의 대결 ]

3,467야드(화이트티 3,293, 레드티 2,573)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동코스에서는 구릉을 돌아가고 오르내리면서 자연과 대결하는 재미가 두드러진다. 인내하며 오르는 홀, 미지의 세계로 모험하는 듯한 홀, 장쾌하게 내리지르는 홀 등이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동코스 3번 파5

(블루티 515야드, 화이트티 451야드, 레드티 375야드)

동코스 3번 파5 홀

직선형이며 티잉구역에서 그린 끝까지 오르막인 파5 홀이다. 이런 모양을 프리웨이(free way)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코스를 만드는 이들은 직선형 홀을 잘 만들기 가장 어렵다고 한다. 똑바로 멀리 쳐보라는 홀을 일부러 하나 넣은 듯하다. 당연히 샷에 힘이 들어가 왼쪽으로 말리거나 오른쪽 숲에 공을 집어넣은 이들이 많다.  

신라CC의 모든 홀에는 네 글자의 한자 조어로 홀 이름이 적혀있다. 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인데 현재 소유 회사에서 정한 이름인 듯하다. 이 홀의 이름은 ‘보보근천(步步近天) 거꾸리 홀’이었다. 세컨샷 지점에서 티잉 구역 쪽을 거꾸로 보면 아름답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따라 해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오르막을 걸어 오르기 힘드니 재미를 준 듯하다.

끝까지 오르막을 걷는 것도 골프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동코스 9번 파4

(블루티 433야드, 화이트티 374야드, 레드티 299야드)

동코스 9번 파4 홀

오후에 라운드를 했다면 이 홀에서 서쪽 하늘의 노을을 마주보며 플레이할 수도 있다. 여주의 너른 품을 온전히 내려다보는 풍광이다. 맑은 날에는 이천까지 보인다고 한다. 마지막 홀이니 마음껏 쳐보라는 듯이 길이가 길고 페어웨이도 넓다. 티샷에 힘이 들어가면 페어웨이 왼쪽 벙커에 들어가기 쉽고 티샷 랜딩존에는 2단 내리막 경사가 있다.

호연지기가 피어나는 장쾌함이 인상적인 홀이다. 게임이 잘 안 풀렸다 해도 이 홀이 떠올라 다시 오고 싶을 수 있겠다.          



시설과 서비스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에서는 서코스 9번 홀과 남코스 9번 홀이 만나 이루는 연못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비슷한 클럽하우스 조망을 갖춘 곳이 많아졌지만 개장 당시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무르익은 풍광은 계절마다 다른 빛을 내며 여전히 근사하다.

클럽하우스는 퍼블릭코스로 많은 손님을 받기에도 넉넉한 규모여서 붐비지 않는다. 로비에는 '사과작가' 윤병락의 회화작품을 비롯하여 밝은 느낌의 조형물과 판화, 디지털 프린팅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건축물의 무게감에 예술품들의 경쾌한 감성이 어울리며 퍼블릭코스의 젊은 분위기를 돋운다. 클럽하우스 내 식당은 직영하며 경륜 있는 셰프가 맛을 책임진다고 한다.       



서비스, 관리

이곳에서 인상적인 캐디를 만났다. 6월 맑은 날이었다. ‘코스 매니저’ 정수민 씨는 라운드 내내 우리를 유쾌하게 이끌어주었다. 플레이를 능수능란하게 도울 뿐 아니라 농익은 살구를 따서 담아주기도 하고 숲에서 분실구를 한보따리 주워 오기도 하며 플레이 속도와 라운드 분위기를 조절했다. 오래 기억날 만큼 즐거운 라운드여서 ‘신라 캐디는 다 이런가요?’하고 물으니 골프장에서 캐디에게 잘해준다고 했다. 캐디 기숙사가 시설을 잘 갖추었고 처우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인지 (그날 플레이어들은 산만했어도) ‘캐디는 최고’였다.     


코스 관리 품질은 적절하고 일정하다. 잔디 사정은 날씨에 따라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기에 단정하여 장담키 어렵지만, 처음 문 열 때의 코스 관리자가 지금까지 근속하며 관리 품질을 책임지고 있다. 안양중지 페어웨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 (전국 골프장 Top 3에 들만큼 높은 밀도와 일정한 예고를 유지한다고 관리 책임자는 장담했다) 그린스피드는 스팀프미터 측정 기준 2.7~2.8미터로 유지한다.       


  


한국 산중에 빚은 드라마     


신라CC에서 설계가 권동영 씨와 라운드 했었다. 신라CC를 조성할 때 그는 임상하 문하에서 이 코스 설계 담당자였다.      


“당시에 밤새워가며 도면을 그렸어요. 골프코스 설계에서 등고선 도면을 그린 건 우리나라 처음이었는데 그린 도면은 10센티 간격 정밀 등고선으로 그렸으니 다들 놀랐었죠.”     


- 한국 골프장 전문가들에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었겠네요. 신라CC가.   


“임상하 사장님이 밀어주셨던 거죠. 지금 보면 장해물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배치해서 변별력을 높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스승께서 당시에는 이정도가 알맞다고 하셨어요.”  


- 그때는 샷밸류에 대한 개념을 세우고 난도를 높여가던 시절이었지요?    


“그렇기도 하고, 신라CC는 조화로움에 콘셉트를 두었어요.”


신라컨트리클럽처럼 조화로운 매력을 간직한 골프장은 드물다.

한국 산중의 완만한 구릉을 살린 코스 루트에 서구 골프코스의 도전성을 온화하게 새겨 넣고, 그 위에 일본 정원 감성의 수목 조경을 입혔다.

일본 풍 정원 식 골프장 일색이던 당시 풍토에서, 서구적 코스의 도전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과도기적 스타일인데, 임상하라는 설계자가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하여 ‘한국 산중 코스 미학’으로 빚어낸 작품코스라 할 수 있겠다.      



이 골프장의 모든 홀에는 네 글자 한문 이름과 뜻풀이가 붙어있다.


화영만폭(花影萬幅) - 철쭉꽃 그림자가 겹겹이 연못에 비치는 듯한 홀

투온투혼(投溫鬪魂) - 온기를 쏟아 투온에 도전하는 투혼의 홀

삼삼기운(衫衫起運) - 삼나무숲 사이에서 행운이 솟아오르네......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코스에 이야기를 주어 재미를 높이려는 뜻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골프장을 만든 이가 안배한 코스 자체의 멜로디와 드라마를 느껴가며 라운드하면 골프가 더 풍성해 질 것이다. 골프코스 설계가들은 한 번의 라운드를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경험하도록 만든다.  



---------------------------

이 포스팅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3권 수록을 위한 소통용 초안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보완한 뒤 책에 싣고자 합니다.

글로 적힌 생각과 표현들은, 인용 표시된 것 말고는, 지은이의 고유한 저작입니다.

---------------------------


>> [한국의골프장이야기] 구매링크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세트(양장본 HardCover)(전2권) | 류석무 | 구름서재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작가의 이전글 용평 골프장 - 한국 골프장 역사의 ‘레전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