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석무 Jan 16. 2022

천룡컨트리클럽, ‘유아독존’

[한국의골프장이야기] 탐사기록


이 포스팅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3권 집필을 위한 탐사 기록입니다.     



천룡컨트리클럽은 ‘강호 무림의 은둔세가’ 같은 골프장이다.

일반 골퍼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이 특이하여 구력 짧은 골퍼들은 “중국 어디 있는 골프장이냐” 묻기도 한다. 골프채널 TV방송에 나오는 ‘벤제프배 전국클럽챔피언십’ 개최코스라 하면 본 듯하다 하고, ‘전지현 나왔던 골프웨어 광고 촬영지“라 하면 “거기 예쁜 곳이겠네”라고 한다.

그런 한편 골프를 오래 한 이들에게는 ‘전통 회원제 명문 클럽’으로 명성을 누려왔다. 특별한 골프코스를 찾아다니는 이들의 순례 목록에 빠지지 않는 곳이다.



한국 최초의 진짜 회원제

천룡컨트리클럽(이하 '천룡CC'라 씀)은 1995년 27홀 회원제 코스로 문 연 이후 ‘노 부킹 골프장’으로 이름 높았다. 회원은 언제든 예약 없이 가도, 도착 순서대로 라운드 할 수 있는 골프장은 이곳이 처음이고 유일했다.

아침에 “오늘 칠까?”하면 오후에 라운드 할 수 있었으니, 골프장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 같던 시절에 천룡 회원은 환영받는 귀인이었다. 이곳 회원이던 내 선배는 “천룡CC 유아독존”이라고 하도 자랑하여 별명이 ‘독존’이었다. 그는 천룡CC를 ‘진천룡’이라 부르며 뽐냈다. ‘북일동 남화산’(당대 골프장 중 한강 이북에는 일동레이크가 빼어나고 남쪽에는 화산컨트리클럽이 아름답다고 칭송하던 말)에 견주어, ‘진천에는 천룡이 있다’고 자부했다.  

지금 회원은 하루 전까지 예약할 수 있다는데, 여전히 “한국 최초의 진짜 회원제”라 말한다. ‘회원 제일주의 명문 클럽’이라 자부하는 원칙을 지키는 까닭에 일반 골퍼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천룡(天龍)’의 유래

천룡CC는 재일동포 출신 윤 씨 집안이 운영하던 ‘레이크힐스 골프그룹’의 첫 골프장이다. 창업주인 윤수효(1927~1997) 회장은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켜 재일경남도민회장을 지냈고 1968년부터 고국에 ‘일송개발’을 세워 ‘속리산관광호텔’을 운영했다. 그 아들들이 1995년 천룡CC를 시작으로 1998년 ‘레이크힐스 용인CC’를 열면서 골프장 사업을 크게 펼쳤다. ‘레이크힐스 그룹’은 첫째 아들 윤진섭 회장이, 천룡CC는 둘째 윤진동 사장이 맡았으며 셋째 윤진환 사장은 ‘마에스트로CC’를 지어 운영했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을 보유 운영하는 레저 전문 그룹이기도 했다. 레이크힐스 이름을 단 골프장들과 마에스트로CC는 주인이 바뀌었으나 천룡CC는 그대로다.     


천룡CC는 진천의 무제산(574m)과 무이산(462m) 사이의 43만여 평 분지에 청룡, 흑룡, 황룡 3코스로 조성된 27홀, 파108 골프장이다.

나는 이곳 땅의 모습에서 천룡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것이라 추측했었다. 풍수(風水)의 눈으로 지리(地理)를 보는 이들은 산을 용(龍)으로 여겨왔다. 용은 변화를 뜻하여 그 모습을 종잡기 어려우나, 이곳의 산줄기와 골을 타고 내리며 양지바른 터를 감싸는 용의 형상은 풍수에서 길하게 본다는 지네의 모습을 닮았다. 이러한 지네 모양의 용을 천룡(天龍)이라 하며, 지네형국(蜈蚣形局)의 터를 다산(多産)과 풍요의 길지로 여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창업주가 일본에서 고국을 그리며 운영하던 ‘천룡상사’를 이어받은 이름이라 한다. 우연히 이름의 사연과 땅의 인연이 닿았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이 터에 잘 맞는 이름이라 생각한다.  

      


일본 유명 설계가와 서구적 도전 성향의 조형사(Shaper)

골프코스 설계는 일본 유명 코스 디자이너 가토 후쿠이치(加藤福一)가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수원CC 신코스, 한성CC, 도고CC 등을 설계했으며 일본의 이름난 코스들을 많이 만들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산토리레이디스오픈'이 열리는 고베의 ‘로코고쿠사이 골프클럽’과 ‘리조트트러스트 레이디스’ 대회가 몇 차례 열린 도쿠시마현의 ‘랜디나루토 골프클럽’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천룡CC 코스는 그린 콤플렉스(그린과 그 주변)의 역동하는 언듈레이션(Undulation, 물결 모양 굴곡)으로 명성 높다. 2020년대 기준으로 봐도 도전적인 이 그린 조형을 1990년대 초중반의 일본인이 설계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서, 나는 당시 코스 조성에 관여했던 이들을 수소문하고 자료를 조사해보았다. 알고 보니 이 골프코스의 조형을 맡은 이는 프랭크 오다우드(Frank O'dowd)라는 미국인이었다.       



그는 그 이전 지산CC(임상하 설계)가 조성될 때 한국에 들어와, 더글러스 니켈스(Douglas Nickels)와 한 팀으로 현장 조형 작업을 했던 조형 전문가(Shaper)였다. 천룡CC 조형 작업을 맡은 그는, 대담한 현장 조형으로 가토 후쿠이치의 설계에 서구적 도전성을 입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골프코스 종합 설계·시공회사인 ‘오렌지엔지니어링’ 대표 강상문 씨가 당시 이 작업에서 한국 측 조형 디자이너로 협업했다고 한다. 이후 프랭크 오다우드는 레이크힐스 용인, 레이크힐스 제주, 레이크힐스 경남, 센추리21CC 등의 코스를 조형설계·시공했다.)          


코스의 특성     


앞 편(수원CC, 용평CC, 블루원용인CC)들에서 설명했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골프장은 ‘똑바로 치면 되는 코스’가 대부분이었다. ‘투그린’ 형식에 넓고 평평한 페어웨이, 코스 중간 중간에 소나무를 심어 놓은 조경, 밋밋한 모양의 벙커로 구성된 ‘옛 일본풍 정원형 설계’ 골프장들이었다. (일본에는 골프장이 2,500여 개나 되고, 개성이 다양한 코스들이 많으니 ‘일본식’을 하나의 틀로 싸잡을 수는 없겠다. 다만 골프코스를 정원이라는 관점에서 보았거나 골프코스에 ‘일본 정원’ 조경의 기법과 요소들을 많이 사용한 시대의 것을, 편의상 ‘옛 일본풍’이라 적는다)      



편안한 직진 성향과 선 굵은 언듈레이션

1990년대 중반은 우리나라 골프장들이 이러한 전형에서 벗어나 서구 골프코스 본류의 전략적 설계와 원그린을 채택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천룡CC는 이러한 변화 흐름을 노련한 일본인 설계가의 관점에서 받아들인 작품이랄 수 있다.

또한 조형사의 개성과 역량이 강렬하게 드러난 예라고 하겠다. 일본 설계가 특유의 ‘편안한 직진 성향’은 대체로 유지하는 한편, 코스를 인공 정원처럼 꾸미는 왜색(倭色)은 덜어냈다. 산기슭 일부에 계단식 루트를 적용했지만 본디 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살려냈다. 평평한 페어웨이를 내던 성향에서 벗어나, 선 굵은 언듈레이션 조형을 도입하고 입체적인 그린 콤플렉스 조성으로 변별성을 높였다.     

      

1999년 이곳에서 한국프로골프 투어 ‘제42회 KPGA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강욱순 선수가 4라운드 합계 8언더파로 신용진 선수와 공동 선두를 이룬 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이겨 우승했다. 2000년 ‘골프매거진코리아’는 2000년 이 골프장을 ‘전국 10대 골프 골프장’으로 뽑았으며, 2003년 골프다이제스트코리아도 천룡을 ‘한국 10대 골프장’ 중 하나로 선정했다.       



칠만한 코스의 본질 매력

그즈음부터는 일본 설계자가 우리나라 골프코스를 설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게 되었다. 국내 대기업들은 주로 서양 설계가들에게 의뢰하여 골프코스를 만들었고, 국내 설계가들도 서구 골프코스의 설계 정신과 흐름을 받아들였다. ‘도전과 보상(Risk & Reward)’, ‘샷밸류(Shot Value)’ 등의 개념이 국내 골프장들에도 보편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런 가운데 이른바 ‘골프코스 랭킹’ 선정 기관들이 ‘샷밸류’ ‘난이도’, ‘디자인 다양성’ 등을 주요 기준으로 골프장의 순위를 지속적으로 매겨오면서, 그러한 지표의 점수가 높아야 좋은 골프장인 듯 여기는 인식과 함께, ‘코스 랭킹이 높아야 좋은 골프장’이라는 선입견도 퍼지게 되었다.(평가 항목 중 가장 배점이 높은 ‘샷밸류’에 대해서는 ‘한국의골프장이야기’ 1권과 2권에서 몇 차례 적었지만, 뒤에 나올 ‘롯데스카이힐 제주’ 편에서 좀 더 보완 정리하여 적는다)     


‘코스 평가’의 이러한 주요 항목들은 전문가, 특히 골프코스 설계자의 관점을 주로 반영한다. 샷밸류 높다고 평가된 코스가 정상급 골퍼들에게는 오히려 샷밸류가 낮아지며 맹폭당하거나, 초중급자 골퍼들에게만 지나치게 가혹한 곳들도 있다. 샷밸류를 높이려는 설계 기교를 도입했으나 한국의 고유한 지형과의 섬세한 조율을 놓쳐 난이도 균형 조절이 안 되는 코스도 적지 않다. 수단이 본질을 흔들곤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샷밸류라는 입체적인 개념을 선명히 알고 평가하는 ‘코스 랭킹 평가자’들은 드물어 보인다)  


천룡CC는 코스랭킹 평가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골퍼가 라운드하며 느끼는 ‘플레이어빌리티(Playability)’를 만족시킨다. 라운드 결과의 기복이 적고 자주 쳐도 싫증나지 않으며, 실력만큼 정직한 스코어가 나오기에 다시 도전하면 좀 더 나은 골퍼가 될 것 같은······  골퍼의 입장에서 ‘칠만한 코스’라 느끼는 본질 매력이 강한 곳이다.  


         

청룡, 흑룡, 황룡 코스의 개성과 인상적 홀들     


골프장 홈페이지의 내용에 따르면, 설계자는 황룡코스를 지혜의 코스, 청룡코스를 용기의 코스, 그리고 흑룡코스를 도전의 코스라 하였다, 처음에는 황룡, 청룡 코스를 메인으로 의도하고, 흑룡코스는 좀 더 개성적인 작품으로 여긴 듯하다. 그런데 (골프채널에서 방영한 ‘벤제프클럽챔피언십’) 대회는 청룡-흑룡코스(블랙티와 블루티 혼합)에서 치르고 있다.

세 개 코스에 각각 다른 개성과 재미가 있다. 다만, 남자 대회를 치를 때는 청룡-흑룡으로 진행 하는 것이 경기장으로서 천룡의 특성을 대표하는 조합일 듯하다     


도전, 용기, 지혜라는 말에 따라 내 생각으로 코스 특성을 구분한다면,


청룡코스는 도전을 선택하게 하는(Risk & Reward) 홀들이 많은 편이고,

흑룡코스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공략해야 하는 홀이 많아 용기와 상상력이,

황룡코스는 다소 짧고 아기자기하여 장타보다 기술과 지혜가 더 요구된다고 본다.     



이 골프장은 미국골프협회(USGA)의 코스레이팅 규정(Course Rating System)에 따라 대한골프협회(KGA)로부터 난이도 측정을 받았다. 그 결과인 코스레이팅 수치를 보면, 세 코스의 난도는 흑룡-청룡-황룡 순인데 차이가 크지 않다. 전체로 보면 평균 난이도쯤으로 측정되지만, 처음 가는 이들은 자기 평균 타수보다 꽤 더 치곤 한다. 미묘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레드티가 화이이트티와 거리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 청룡코스 이야기 >     


해발 250미터 클럽하우스 부근에서 출발하여, 청룡코스는 이 골프장에서 가장 낮은 해발 200미터 지대까지 내려갔다 돌아온다. 세 개 코스 중 ‘도전과 보상’의 전략성이 가장 뚜렷하며 조경이 수려한 홀들이 많다. 5,6,7번 구간은 이 골프장의 ‘상징 구간(Signature Zone)’인 듯 아름답다. 길고 짧은 홀, 좌우로 돌아가는 홀들이 조화되어 다양한 클럽의 샷 능력을 시험한다.    

 

청룡코스 4번 파3 - 파노라마 극장 홀

블랙티 193야드, 화이트티 179야드, 레드티 163야드

청룡코스 4번 파3 홀

코스의 서쪽 끝 낮은 곳에서 성채 같은 클럽하우스를 마주하며, 코스를 에워싼 병풍 같은 산세를 한 눈에 감상하는 파3 홀이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중의 파노라마 풍광을 관람하는 ‘극장 같은 홀’이다. (야디지 수치만 보면 긴 편이지만 내리막이라) 중간 정도 길이의 파3 홀인데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자리다. 그린의 언듈레이션과 핀 위치를 세심히 감안해서 플레이해야 한다.

천룡CC의 그린은, 물결치는 듯한 언듈레이션에 의해, 2단 이상 3~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청룡코스 6번 파5 - 아름다운 호수 길

블랙티 560야드, 화이트티 510야드, 레드티 423야드

청룡코스 6번 파5 홀

6번 파5홀과 7번 파3 홀 구간은 이 골프장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며 커다란 호수가 코스 전체의 중심을 잡고 있는 자리다. 천룡이라는 이름을 빗대어 말하자면, 물에 잠겨 때를 기다리는 ‘잠룡(潛龍)을 품은 호수’이겠다.   

5번 파5 홀에는 도전에 따른 보상(Risk & Reward), 전략적인 선택이 안배되어 있다.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티잉 구역에서 그린이 잘 보이지 않는데, 장타자는 오른쪽 카트도로 방향으로 비탈을 넘겨 티샷하여 투온(On in Two)도 가능하다. 일반 골퍼는 우측 오비구역과 벙커러프를 피해 좌측 고목나무 방향으로 티샷 해야 안전하다. 길지 않은 파5 홀이지만 페어웨이 왼쪽 호수와 그린 주위의 깊은 벙커가 방어하고 있다.

청룡코스 6번 홀 페어웨이에서 본 호수

호숫가 페어웨이에서의 풍광이 평화롭다. 배우 전지현 씨가 나오는 골프웨어 광고를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청룡코스 7번 파3 - ‘용의 눈

블랙티 220야드, 화이트티 177야드, 레드티 164야드

청룡코스 7번 파3 홀

천룡CC의 시그니처 홀이다. 커다란 호수에 떠 있는 그린은 이 골프장 전체를 휘감은 ‘용의 눈’ 같다고 할까. 호수와 산기슭, 구불구불한 능선이 어울린 조망은 사철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는 화첩 같다.  

이 연못가에 구불구불한 조경 소나무가 있는데 안양CC 4번 홀 연못가 소나무와 닮았다. 가평베네스트 버치코스 3번 홀의 ‘황진이 나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라운드할 때 앞 팀의 젊은 골퍼들이 이 나무 앞에서 “동양화 한 폭 같다”며 사진을 찍었다.  

아름답기만 한 홀이 아니다. 호수 건너 까마득히 멀어 보이는 그린 위로 티샷하는 짜릿함은 이 골프장 라운드의 백미(白眉)다. 레드티에서 치는 여성골퍼도 백티(블루티, 화이트티)에서 조망해보고 갈 만하다.       


편안한 시작과 까다로운 마무리

청룡코스는 편안한 파5 홀로 시작하고 어려운 파4 홀로 끝난다. 쉽게 시작해서 도전적이고 아름다운 홀들을 지나 점점 까다롭게 마무리되는 코스의 리듬이 게임의 재미를 점증하며 돋운다.      

청룡코스 9번 파4 홀


< 흑룡코스 이야기 >     


흑룡코스는 해발 340미터 높은 곳까지 용의 등을 타고 모험하는 듯 역동적이다. 조망이 장쾌하고 남성적인 느낌의 코스다. 페어웨이는 넓지만 꿈틀대는 모양이라 티샷의 낙하지점을 명확하게 정하여 겨냥하고 쳐야 한다. 어프로치샷 블라인드 홀은 없으나 티샷에서 그린이 보이지 않는 홀이 많으므로 냉정한 전략과 용기가 함께 필요하다.      


흑룡코스 1번과 2번 홀 - ‘정신이 번쩍 드는시작

흑룡코스 1번 파4 홀 그린

흑룡코스 1번 홀은 ‘어디 한번 쳐봐’ 하고 만든 듯이 어렵다. 긴 오르막이며(블랙티 438야드, 화이트티 392야드, 레드티 364야드) 그린 오른쪽 앞에 큰 호수가 있다. ‘파5 홀 같은 파4 홀’이므로 자기 능력에 맞게 공략해야 한다. 장타를 쳐야 유리하지만 좌,우측 모두 오비구역이라 샷에 힘이 들어가면 빠뜨리기 쉽다. 그린도 2단의 부정형 타원으로 굴곡져 있으니 세컨샷을 긴 클럽으로 해서는 핀에 접근시키기 어렵다. 거리와 장해물, 언듈레이션 등 어려운 요소를 두루 배치한 홀이다.

흑룡코스 2번 파4 홀

2번 파4 홀은 왼쪽으로 휘어지는 도그렉 형인데 티샷이 경사면에 떨어지기 쉽고, 높은 언덕 위의 그린이 매우 호전적인 언듈레이션으로 핀을 방어하고 있다. 티샷과 어프로치샷, 그린 플레이까지 정확하고 냉정하게 해야 한다.

정신이 번쩍 나도록 까다로운 1, 2번 홀 구간을 지혜롭게 지나야 한다.     



흑룡코스 6번 파5 - 용의 등을 타고 간다

블랙티 547야드, 화이트티 493야드, 레드티 404야드

흑룡코스 6번 파5 홀
흑룡코스 6번 홀 페어웨이에서 본 코스와 진천읍내

고도가 가장 높은 흑룡코스 6번 홀 페어웨이에서는 골프장 전체와 주변 산들이 한 눈에 보인다. 앞에서 말한 ‘천룡(天龍)의 길지’ 모양을 이 자리에서 볼 수 있겠다.

페어웨이 중간이 가장 높은 도그렉 형 홀이므로 티잉 구역에서는 페어웨이가 하늘과 맞닿은 언덕처럼 보인다. 용의 등을 타고 가듯 장쾌한 풍광이라 호쾌하게 플레이하고픈 마음이 드는 홀이다. 장타자는 투온을 할 수 있으나 그린 뒤에도 오비구역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흑룡코스 7번 파4 - 아름다운 병풍 그린

흑룡코스 7번 파4 홀 그린

7번 홀 세컨샷 지점에서 보면 소나무와 단풍나무들이 병풍 두른 듯 그린을 감싸고 있다. 코스의 스토리로 보면 흑룡코스 5,6,7번은 ‘용을 찾는 모험’ 같은 구간이고, 경관으로 보면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흐르는 곳이다. 특히 단풍드는 가을에 더 곱다.     



흑룡코스 8번 파3 - 물레방아와 노송과 득남 바위와···

블랙티 220야드, 화이트티 161야드, 레드티 137야드

흑룡코스 8번 파3 홀

호수를 건너 치는 이 내리막 파3 홀에는 볼 게 많다. 호수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그린 너머는 탁 트여 넓은 코스의 끝까지 보인다. 티잉 구역 뒤에 있는 바위가 득남의 기운을 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캐디의 말에 따르면, 오랫동안 아이를 얻지 못하던 이들이 이곳에서 근무하다가 출산하게 된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이 홀 주위에는 구불구불한 노송(‘용트림 소나무’라 부름)들도 많으니, 많은 사연과 공덕을 이 한 홀이 품고 있는 셈이다.

흑룡코스 8번 홀 티잉 구역 뒷편의 바위

8번 홀답게, 플레이 하기는 까다롭다. 호수 너머 그린이 티잉 구역에서는 평평해 보이지만 2단 굴곡이 크고 예민하다. 2시 방향 타원형 그린이 페이드(Fade)샷을 받아주는 모양인데, 깃대가 오른쪽 앞에 꽂혀있을 때 변별력이 가장 높아진다.             



< 황룡코스 이야기 >


황룡코스는 클럽하우스 북쪽의 평활한 분지에 안겨있다. 청룡, 흑룡이 주로 남북배열인데 견주어 황룡코스는 동서 축 배열이다. 코스의 길이는 다소 짧아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지만 전략적인 플레이를 주문한다. 페어웨이와 그린의 언듈레이션이 미묘해서, 점수 내기가 은근히 까다로운 코스라고 한다.      


황룡코스 2번 파3 - 홀인원도 가능할 듯한

블랙티 138야드, 화이트티 114야드, 레드티 90야드

황룡코스 2번 파3 홀

코스 전체에서 가장 짧은 파3 홀이기에 홀인원도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코스 설계자들은 짧은 파3 홀일수록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배치한다. 짧은 클럽으로 쳐서 높이 뜨는 공일수록 바람의 영향을 더 받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짧은 홀이 더 어려워지도록 변수를 만드는 것이다. 이 홀도 바람이 도는 길목에 있다. 짧은 홀일수록 그린(과 그 주변)이 어렵다는 원칙도 참고할 만하다.      



황룡코스 9번 파5 -  행복한 마무리 홀

블랙티 520야드, 화이트티 468야드, 레드티 412야드

흑룡코스 9번 파5 홀 페어웨이

평화롭게 산보하며 귀환하는 느낌의 마지막 홀이다. 클럽하우스와 같은 높이에 있어 안정감이 들고 클럽하우스 너머 진천의 하늘이 보이는 풍광이 수려하다. 웬만한 장타자는 투온을 시도할 수 있는 거리이며 티샷 랜딩 지점도 넓다, 라운드를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 파5 홀이다.             



관리, 시설   

   

그린과 잔디 관리

천룡의 그린은 꿈틀거리는 듯한 언듈레이션과 빠른 스피드로 명성 높아왔다. 그린 스피드를 (스팀프미터 측정 기준) 2.8미터 정도로만 세팅해도 다른 골프장 3.0미터 이상만큼으로 느껴진다. 대회를 치를 때는 3.0미터 이상으로 관리하며, 보통 때도 빠르다고 체감하는 스피드로 관리한다. 면의 균질함만으로도 변별력 높고 짜릿한 게임을 보장하는 그린이다.



이 골프장 터는 낮은 산줄기에 둘러싸인 분지인데, 일조량이 많고 포근한 곳이라 한국 잔디(안양중지) 생육에 적합한 환경이라 한다. 잔디 관리 상태는 날씨 등의 변수가 많아 보장할 수 없는 것이지만, 늘 양호하다고 평가받는다.         


클럽하우스, 느티나무 경식당

천룡CC 클럽하우스와 장식물들은 요즘 만든 골프장이나 리모델링한 클럽하우스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개장할 때는 웅장한 현대 시설이었지만 이제 고풍스러운 느낌이고, 용과 사자 형상의 조형물들은 옛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하고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로 보이기도 한다.

옛날 그대로의 느낌을 유지한다는 원칙으로 관리한다고 한다. ‘회원 핸디현황판’, ‘역대 클럽챔피온 현황판’, ‘홀인원(회원) 현황판’ 등이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2층 로비에 게시되어 있다. 라커룸 표식도 ‘남자’, ‘여자’가 아니라 ‘신사락커’, ‘숙녀락커’다. 처음 표기를 그대로 지킨 것이며 신사와 숙녀의 에티켓을 지키는 골퍼만 클럽 회원이라는 뜻이라 한다.   

    


천룡CC는 그늘집 음식이 유명했다. 황룡코스 그늘집에서만 내는 ‘냉김치우동’ 때문에 황룡코스로 가려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클럽하우스 1층의 스타트하우스에 테라스형 ‘경식당’을 운영하여 냉김치우동 등의 메뉴를 내고 있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인기가 높은 명소다.

경식당에서 마주보는 연습 그린 뒤에는 600살 먹은 느티나무가 있다. 이 터를 상서롭게 지키고 있는 듯하다.           



덧붙임 - 전통과 개성     


글 들머리에서 “강호 무림의 은둔세가 같은 골프장”이라고 시작한 때문인지, 동양적 전통의 신비감에 기대는 이야기를 많이 적게 되었다.

‘살아서 진천 죽어서 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으로 유명한 그 진천에 자리한 클럽이니, 골프장 이름과 지역의 성정, 클럽의 고풍스러움까지 전통 일색인 듯 보일 수도 있겠다.      


천룡은 전통을 존중하는 클럽임이 분명하지만, ‘현재를 관통하는 전통’을 품고 있다.

일본 유명 설계가의 평화로운 설계 바탕에 서구 조형사가 도전적 셰이핑으로 완성함으로써, 장려한 루트와 역동적 게임의 재미를 겸비한 코스가 되었다. 그 위에 일관된 코스 관리와 고유한 클럽 문화를 지켜왔으니 이렇듯 개성이 뚜렷한 골프장은 귀하다.       

 

코스를 용에 비유한 이야기를 거듭 쓰게 된다. 골프코스를 산중에 들여야 하는 우리나라 지형에서, 산을 용으로 느끼는 예로부터의 통찰에, 글을 쓸수록 공감하게 되기 때문인 듯하다.

용은 상상의 존재이지만 산을 일컫는 용은 자연의 생명력이 흐르는 유기체의 실존 개념이다.


앞에 나온 용평CC와 이 천룡CC는 이름부터 용이다. 용평CC가 평창군 용산리의 용이 발왕산을 타고 오르는 등룡(登龍)이라면, 천룡CC는 진천의 양명한 산중에 은둔한 장룡(藏龍) 또는 잠룡(潛龍)의 느낌이다. 초심으로 정진하고 변함없이 연단하여 천지간의 조화를 이루기를······               



---------------------------

이 포스팅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3권 수록을 위한 소통용 초안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보완한 뒤 책에 싣고자 합니다.

글로 적힌 생각과 표현들은, 인용 표시된 것 말고는, 지은이의 고유한 저작입니다.

---------------------------


>> [한국의골프장이야기] 구매링크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세트(양장본 HardCover)(전2권) | 류석무 | 구름서재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작가의 이전글 신라컨트리클럽 - [한국의골프장이야기] 탐사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