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상위 골프장의 본질 가치 ③
한국 최상위 골프장의 본질 가치 ③
사우스케이프는 몇 가지 불가능한 선택이 겹쳐 조성된 골프장이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자본과 조직 없이는 시도할 수 없을 사업 모델이었으나, 한 개인의 판단으로 밀어붙여졌다.
남해 바닷가 언덕 자리도 천운이 없다면 인허가에서 배제될 자리였다. 그 위에 코스와 리조트, 시설 전반을 일관된 예술적 미감으로 엮어냈다.
이만큼의 조건을 동시에 감당한 사례는 한국 골프에서 찾기 어렵다.
그 결과 사우스케이프는 한국 골프장이 도달할 수 있는 한 지점에 올라서 있다.
다만 이 위치는 안정된 결과라기보다, 고비용과 여러 제약을 감수하고 유지되는 자리로 보인다.
이 분석 글은 사우스케이프가 이룬 바를 존중하되, 그 성취가 어떤 선택 위에 놓여 있는지
한국 골프장의 흐름 속에서 어떤 좌표와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1. 세상에 유일한 자리의 가치
2. 대체 불가한 창안자(Originator)의 존재
3. 일출과 일몰 사이 - ‘TIME’
4. 16번 홀, 장엄한 선택과 영원한 포기
5. 세계적 신규 코스들과의 구조적 차이
6. 동시대 예술 감각의 완성과 거리감
7. 지역적 조건에 따른 구조적 제약
8. 어떻게 영원히 남을 것인가.
結 : 이 배가 향하는 곳
1) 다시 나오기 어려운, 절대 가치 지형
시사이드 코스는 많지만, 바다에 바로 붙은 절벽 위 골프코스는 드물다.
곶(串, Cape)과 만(灣, Bay)이 굽이치는 바닷가 언덕에 만든 코스는 세계에서 희귀하다.
사우스케이프는 한 코스에서 일몰과 일출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독보적 시공간을 제공한다.
이 자리의 가장 큰 축복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버드 아이 뷰(Bird’s-eye View)’다.
해외 유명 바닷가 코스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여주는 장관은, 드론 카메라가 잡은 ‘체험 불가 장면’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우스케이프에서는 그 시점이 실제 플레이의 일부가 된다.
골퍼는 벼랑 위에서 새처럼 바다를 내려다보며 샷한다.
단순히 경치가 좋다는 차원을 넘어, 자연의 무한 질서 안에 빠져드는 경외감을 경험하게 된다.
수억 년 융기와 침식으로 형성된 이 리아스식 해안 언덕은, 그 자체로 ‘자연이 빚어낸(Forged by Nature)’ 이곳만의 작품이다.
2) 재벌 기업만 가능한, 그러나 실제론 불가능한 선택.
사우스케이프의 탄생은 한국 골프장 역사에서 예외적 실험에 가깝다.
머나먼 남해 절벽이라는 입지 자체가, 인허가와 수지타산 어느 쪽에서도 고난도의 조건이다.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고, 오히려 조직의 리스크 관리 검토 단계에서 배제되기 쉬운 자리다. 실제로 이 자리를 탐낸 대기업이 있었으나, 결국 밀어붙인 사람은 현 소유주였다고 한다.
그가 감당한 것은 막대한 자본만이 아니었다.
코스와 건축, 세세한 부분까지 일관되게 관철한 섬세한 감성과 일관된 미감은,
대기업 조직을 통해서는 도달하기 어려웠을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사우스케이프는 그 점에서 한국 골프 산업에서 초유의,
혹은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운 사례로 남는다.
3) 12번에서 16번까지, ‘바다의 볼레로’ 구간
사우스케이프 11번 홀부터 16번 홀까지 구간은 코스의 존재 이유를 웅변하는 클라이맥스다. 높은 곳에서 수평선 위로 공을 쳐보내며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데, 감각의 파동은 홀마다 점진적으로 상승한다. 마치 모리스 라벨의 음악 ‘볼레로’처럼 끝없이 고조되는 구성이다. 그 감각은 14번 홀과 16번 홀에서 바다를 향해 비상하는 듯한 절정에 이른다.
14번 홀은 페블비치 7번 홀을, 16번 홀은 사이프러스 포인트 16번 홀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도 있다. 여기에 남해 특유의 ‘버드 아이 뷰’가 더해진다. 이 구간만으로도 사우스케이프는 한국 골프장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미학적 각인을 남긴다.
1) 한 사람의 꿈과 지휘가 절대적 동력
사우스케이프는 여러 유명 전문가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코스 설계, 건축, 집기 퍼니처 등 각 부문을 맡은 이들의 전문성은 높은 완성도로 저마다 독특한 미감을 발산한다. 그러면서도 이 다양한 것들은 마치 예술 영화에 연출된 미장센(Mise-en-Scène)처럼 조화를 이룬다.
이 모든 요소에는 한 사람의 상상력과 감각이 관통하고 있다.
사우스케이프 조성에 참여한 설계자(Architect)와 디자이너, 아티스트(Artist)들의 작업은 그의 지휘와 조율 속에 하나로 이어진다. 그 한 사람을 오리지네이터(Originator, 창안자)라고 부를 만하다. 이 공간을 만들어낸 동력의 대체 불가한 원천이다.
2) 강력한 미적 독재, 특별한 미학적 우주
공간 하나, 집기 하나마다 동시대 예술 감각(Contemporary Art)이 또렷이 스며 있다.
리조트와 코스의 자리 잡음에서부터 클럽하우스 곡선 마감, 객실 인테리어 퍼니처, 테이블 집기, 조명과 음향, 레스토랑 메뉴와 직원의 유니폼 등에 이르기까지 오리지네이터(Originator, 정재봉 회장)의 미학적 선택과 검수를 거쳐 나온 것들이다.
이렇듯 강력한 미적 독재는 여타 골프장들이 갖지 못한 일관성 속의 입체감을 연출해 낸다. 방문객은 특별한 미학적 우주 안에 들어온 감각 속을 여행하게 된다.
골프 코스 역시 이 장소가 지향하는 미학적 흐름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1) 일출과 일몰 사이에 무엇이 있나.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코스의 동쪽(15번 홀)에 ‘선라이즈(Sunrise) 포인트’가, 서쪽(5번 홀) 그린 옆에는 ‘선셋(Sunset) 포인트’가 티하우스 건축물로 자리한다.
이 일출과 일몰 사이 공간에 흐르는 것은 ‘시간(TIME)’이다.
‘TIME’은 이 공간 창안자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 고리다. 과거 그가 일궈냈던 패션 회사 한섬의 대표 브랜드가 ‘TIME’이었고, 현재 사우스케이프의 슬로건인 “Ultimate Healing(궁극의 힐링)”은 시간의 유한함을 넘어서려는 영원성(Eternity)에 대한 갈망이다.
정재봉 회장이 평생에 걸쳐 패션의 유행을 선점하는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을 다뤄왔다면, 이곳에서 붙잡으려 한 것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Eternity)’이다.
2) 패션의 시간 VS 골프장의 시간
사우스케이프는 그 열망과 현실의 조화와 어긋남 사이에 빚어진 결정체다.
한섬의 TIME 브랜드도 ‘Timeless(시간을 초월한 클래식)’ 미학을 제안했다. 명품을 지향하는 브랜드일수록 영원성을 말한다.
그러나 패션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유행을 선점하고 교체하는 동시대 스타일의 리듬을 따른다.
반면에 골프장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견디는 자연 공간이다.
패션의 ‘Timeless’와 자연의 영속성은 다른 호흡을 갖는다.
사우스케이프의 미학은 이러한 두 가지 시간 감각이 겹친 위에 놓여 있다. 그 어긋남은 이곳만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골프장이라는 장소의 본질과 긴장을 형성한다. 이 예민한 어울림이 한 시대에 머무를지, 혹은 지속 가능한 구조로 남을지는 창안자의 존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 물음이 사우스케이프의 좌표를 가늠하게 한다.
1) 위대한 홀의 탄생과 바다를 등지는 어드레스
설계자(카일 필립스)는 애초에,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코스로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나 16번 파3 홀의 장엄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코스의 진행을 시계 방향으로 뒤집어 재설계했다.
이 결정은 사우스케이프를 16번 홀이라는 세계적 아이콘을 가진 코스로 만들었다. 그만큼 이 홀은 압도적이다.
한편으로 이 선택은, 다른 중요한 가능성들을 닫아버렸다.
시계 방향 진행의 결과로, 대부분의 홀에서 골퍼는 바다를 등지고 어드레스 하게 된다. 바다 풍경은 플레이어 뒤의 배경으로 있기에 사진으로 담으면 멋지게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골프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인 어드레스와 임팩트 순간에, 바다와 맞서거나 일체감을 느끼는 자연 체감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이 아쉬움에 대한 일부 보상이 11번 홀부터 16번 홀까지 바다를 향해 이어지는 ‘볼레로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취향 판단은 저마다의 몫이다. 다만 이 선택이 사우스케이프의 성격을 규정했음은 분명하다.
2) 노을은 ‘액자 관람’처럼 따로 보는 장면이 되다.
골퍼는 아침 해를 등지고 티오프하거나, 저녁노을을 느끼지 못하고 후반 코스를 라운드한다. 시계 방향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골퍼는 ‘TIME’이 흐르는 공간을 지나면서도, 그 시간의 극점인 일출과 일몰을 플레이의 일부로 온전히 경험하기 어렵다.
선라이스 포인트는 뱃머리 모양, 선셋 포인트의 티하우스는 선미(船尾, 뱃고물) 형태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사우스케이프 전체가 ‘TIME’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한다는 은유로 보인다.
그러나 이 드라마틱한 장소는 라운드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들지 않고, 때를 맞춰 제공되는 리조트 서비스의 하나로, ‘액자’처럼 놓여 있다.
3) 골프코스와 리조트, 메인과 서브의 서열 관계
16번 홀을 살리면서도, 자연의 순환을 따르는 시계 반대 방향 진행 코스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의 배치는 사우스케이프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곳은 ‘리조트를 갖춘 골프장’이라기 보다는 ‘코스를 품은 리조트’에 가까운 구조로 보인다.
부지 안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 지점을 차지한 것은 클리프하우스(Cliff house) 별장들이고, 코스는 그 영역을 비켜 돌며 배치되었다. 만약 코스가 경관의 중심을 점유했다면 코스는 사뭇 다른 결과의 완성도를 얻었을 것이다. 이는, 코스가 메인이고 리조트가 지원 시설인 여타 세계적 골프장들과는 다른 선택으로 보인다.
1) 뉴질랜드 트로피 코스들 — 부동산 개발이 지탱하는 완성
다른 세계적 골프장들은 어떨까? 세계 골프의 변방에서 바닷가 절벽이라는 극단적 입지를 극복해낸 사례로, 뉴질랜드 북섬의 몇몇 신규 코스들이 주목을 받는다. 타라 이티(Tara Iti), 테 아라이(Te Arai), 카우리 클리프스(Kauri Cliffs), 케이프 키드내퍼스(Cape Kidnappers)는 변방의 입지와 바닷가 위치, 미학적 완성도 면에서 사우스케이프와 비교될 수 있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이 코스들이 조성된 조건은 사우스케이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모두 미국의 헤지펀드 억만장자들이 무한에 가까운 자본을 바탕으로 조성한 ‘트로피 코스(Trophy Course)’ 성격을 띤다. 코스 자체의 경제적 논리를 초월하여, 광대한 해안 부지를 부동산 개발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로 조성되었다.
먼저 현존 세계 최고의 설계가(톰 도크, 데이비드 하먼, 빌쿠어&벤크렌쇼)를 불러 ‘데스티네이션 코스’의 완성도로 만들어 신화성을 부여하고, 그 주변 땅을 초고가 별장 부지로 분양함으로써 투자비를 회수하는 구조다. 케이프키드내퍼스와 카우리 클리프스는 럭셔리 숙박 시설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사우스케이프와 비슷하되, 시설의 프라이빗한 경험을 강화함과 아울러 땅의 자산 가치를 천문학적으로 높였다.
이들 골프장은 수익의 직접적 원천이라기보다, 자산 가치를 견인하는 앵커 시설에 가깝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하루에 몇 팀이 오느냐가 문제 되지 않는다. 극소수 멤버만 받는 폐쇄적 운영도 가능하고, 골프장은 ‘손님이 와도 되고 안 와도 되는’ 구조로 유지된다.
거대한 자산 위에 놓인 트로피 같은 골프장들이다.
2) 사우스케이프의 선택 — 운영으로 감당하는 미학
사우스케이프도 역시 외형상으로는 ‘트로피 코스’에 가까운 완성도를 지향한다. 그러나 이를 움직이는 엔진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땅 사정과 규제 환경은 뉴질랜드 같은 광역 부지 개발 모델을 허락하지 않았고, 사우스케이프는 제한된 별장 분양과 이용권, 그린피, 숙박, 식음료 운영 수익에 주로 의존하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이 선택은 운영 방식에 직접적인 제약을 준다. 하루 50여 팀 이상의 상업적 가동이 필요하고 골프장은 자산 보존을 위한 상징물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요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설로 작동한다.
사우스케이프 브랜드의 패션 사업 병행 역시 이 선택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다. 다만 이러한 브랜드 확장은, 패션의 동시대적 유행 감각과 골프장이 요구하는 영속적 가치 사이에 또 다른 긴장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다.
1) 정교하게 큐레이션 된 컨템포러리 라이프 아트
사우스케이프에 놓인 물건 하나하나는 용품(用品)과 작품(作品)의 경계를 오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탁자와 조명, 소파와 침구 하나도 예술성을 띤다. 이들은 영원성을 지닌 작품은 아닐지라도, 탁월한 동시대 아트 디렉터의 감각으로 섬세하게 선별한 컬렉션이다.
조민석과 조병수가 설계한 건축 작품들은 수억 년의 바닷가 절벽 위에서 영원성에 닿아 있고, 그 안의 퍼니처와 집기, 용품들은 저마다 독특한 현재 감각을 발산하고 있어서, 정교하게 큐레이션 된 ‘컨템포러리 아트 뮤지엄’ 같은 분위기를 낸다.
특히 클럽하우스의 중정(中庭)은 이곳을 지나는 모든 흐름을 담아낸 판테온(만신전) 같다. 이곳에서 젊은 남녀들은 연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의 사람이 그 자리에서 소멸한대도 자연스러울 광경이다.
골프장이라기보다 거대한 생활 예술 공간 같은 리조트를 만들어, 그 이미지를 상품화한 의지가 보인다.
2) 예술적 컬렉션의 고비용과 ‘노터치’의 거리감
이렇듯 정교한 연출에는 필연적으로 높은 유지 비용이 따른다. 집기 하나하나의 교체와 관리, 노출 콘크리트 곡면의 지속적 보수,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에 상시 노출된 험준한 지형의 코스 관리까지 모두가 일반적인 골프장 운영의 수준을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 단순한 유지비라기보다, 동시대 예술적 미감을 현재형으로 붙잡아두기 위한 투자에 가깝다.
그리고 이 예술적 컬렉션은 창안자의 감각이 직접 지배할 때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다. 관리 기준은 당연히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공간 전체에는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거리감이 관리 규율과 함께 감돌게 되기 쉽다.
이 ‘노터치(No-touch)’의 느낌은 공간의 격을 높이는 한편, 골프장이 지닐 친밀함과 반복적 체류 욕구를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우스케이프의 미학적 완성은 이처럼 미묘한 긴장 위에 균형 잡고 있는 셈이다.
1) 골프 문화 발신지가 아닌 소비 중심 시장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골프 소비 시장이지만, 고급 골프 문화를 창안하고 발신하는 곳은 아니다. 대중 골퍼의 다수는 여전히 가격과 접근성에 따라 움직이고, 최고 수준의 경험을 찾는 골퍼들은 해외로 시선을 돌린다.
사우스케이프는 세계적으로 알려지고자 하고, 그만한 완성도 또한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해외 하이엔드 골프 여행객이 찾는 목적지가 아니다. 언어와 이동의 장벽, 제한적인 항공 접근성, 그리고 무엇보다 사우스케이프와 연계하여 트레일(Trail, 연계된 골프여행 루트)을 형성할만한 코스들의 군집이 근처에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제약이다. 가까운 일본에 양호한 대체 골프 여행 루트가 많은 것도 적잖은 영향을 준다.
이러한 고립은 국제적 골프 여행 시장에 편입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사우스케이프만의 과제가 아니라 한국 골프장 전반이 공유하는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2) 예술적 공간에 견주어 아쉬운 휴먼웨어
공간의 완성도가 아무리 높아도, 그것을 실제 경험에서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한반도 남쪽 끝이라는 위치는 공간의 수준에 걸맞는 인력의 장기적 유지에 불리한 조건이다. 계열사가 많은 대기업 조직이라면 순환 근무나 근속 구조를 통해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중견 기업 창안자의 의지와 판단으로 출발한 구조에서, 이처럼 거대한 예술적 공간을 고품질로 관리하고, 특히 서비스 인력의 품격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시설은 압도적인데, 사람의 응대는 그 기대치를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들이 발생하기 쉽다. 이는 개별 직원의 역량 문제라기보다, 장소가 요구하는 수준과 지역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사우스케이프가 안고 있는 긴장은, 이 ‘하드웨어와 휴먼웨어의 비대칭’에서 눈 드러난다.
3) 남해의 풍요로운 식재료와 미식 감각의 시간차
남해는 한국에서 가장 풍성한 식재료가 나는 지역 중 하나다. 해산물과 농축산물의 질과 신선도는 다른 곳이 따라오기 어렵다. 여기에 창안자(정재봉 회장)의 미식 지향이 더해지며, 사우스케이프가 제공하는 음식은 공간 시설에 근접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미식에 대한 기대치 또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미식 콘텐츠의 폭발적 증가로, 대중의 미각 수요는 비약적으로 진화했다. 셰프의 개성, 식재료의 서사, 조리 방식과 서빙의 맥락까지 견주며 향유되는 시대다.
사우스케이프의 음식은 공간과 철학에 충실한 구성이다. 다만 그 완성도가 동시대의 문화적 진화와 자동으로 일치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남해라는 지역성이 갖는 미묘한 시간차 또한 이곳이 안고 있는 구조적 긴장의 일부다.
1) 한 번 쳐보면 되는 코스 vs 다시 가고픈 코스
사우스케이프는 골퍼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며,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골프장이다. 그러나 이 경험이 ‘한 번으로 충분한 감상’에 머무를지, 아니면 다시 가고 싶은 그리움으로 남을지는 다른 문제다.
다시 찾게 되는 코스가 무엇으로 결정되는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공간 시설의 고급감이나 예술성이 주는 아우라는 대개 한 번의 체험으로도 상당 부분 소진된다. 반면 라운드 속의 극적인 선택과 도전이 남긴 여운은 온몸의 기억으로 각인되기 쉽다. 여기에 자연이 주는 이야기와 풍광의 경외감이 겹칠 때, 골프장은 단순한 경기장을 넘어 영혼을 되돌려 부르는 장소가 되곤 한다.
여러 구조적 제약이 있더라도, 사우스케이프는 ‘한 번 와보는 코스’에 머물 수 없는 곳이다. 다시 오고 싶은 데스티네이션으로서의 영원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
2) 데스티네이션 코스가 되어야만 하는 골프장
골프에서 데스티네이션 코스란, 먼 곳에 있더라도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 그 골프장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여행의 주된 목적이 되는 코스를 말한다.
사우스케이프는 데스티네이션 코스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조건 위에 있다. 고립된 입지, 압도적인 자연, 완성도 높은 시설 공간은 애초부터 세계적 데스티네이션을 전제로 한 구성이다.
다만 이 골프장은, 재벌 대기업들의 접근법이나 감성과 전혀 다른 선택을 했음에도, 한국 재벌 대기업들이 주도해 온 프리미엄 클럽의 문법을 공유하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 중심의 전개, 상징적 건축, 시설과 서비스의 하이엔드화 등은 그 전형적 패턴이다.
이는 골프 자체를 목적으로 여행하는 수요가 대부분인 세계 데스티네이션 코스들과는 결이 다를 수도 있는 특성이다.
결국 사우스케이프의 영원성은, 그동안 추구해 온 섬세한 완성과 다양성이 골프장의 본질적 가치에 얼마나 깊게 수렴되어, 자연에 응집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진행형의 질문으로 남는다.
사우스케이프는 한국 골프장이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했다.
창안자(Originator)가 제안한 ‘Ultimate Healing을 담은 Time & Timeless’의 항해는 수평선 너머,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수역에 접어들었다.
이 배가 향할 수 있는 항로는 하나만이 아니다.
하나는, 동시대성의 예술 감각을 끝까지 밀고 가는 길이다.
패션 브랜드의 확장, 예술적 큐레이션의 지속적 쇄신 이미지 중심 프리미엄 리조트로서의 완성.
이 길에서 사우스케이프는, 톰 포드가 구치 하우스를, 칼 라거펠트가 샤넬 브랜드를 동시대적으로 계승했듯이, 다시 탁월한 디렉터를 통해 성가를 높여갈 수도 있다.
또 하나는, 골프 코스 자체의 본질적 가치를 높이는 길이다.
샷의 전략성, 자연과의 교감, 반복해서 오고 싶은 플레이의 깊이. 세계 데스티네이션 코스들이 다듬어온 골프의 오래된 문법 속으로 더 깊이 스스로를 밀어 넣는 선택이다.
세 번째는, 한국 재벌 대기업들이 만들어온 하이엔드 클럽의 프레임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회원제 전환이 법적으로는 쉽지 않기에, 자본의 이동 등의 방법이 따라야 하는 방향이다.
안정적 운영, 시스템화된 서비스, 멤버십 중심의 폐쇄성... 이 경로는 지속 가능성을 높이지만, 창안자가 꿈꾼 고유성은 희석될 우려도 함께 안게 된다.
사우스케이프는 여러 항로의 갈림길 위에 홀로 서 있다.
선택이 겹치며 또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으나, 이 고독한 항해는 한국 골프 문화가 성숙해 가는 과정의 귀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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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 여러 번 머뭇거렸다.
성취를 존중하기에, 그 위에 놓인 긴장을 드러내는 일이 과한 것은 아닌지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가장 멀리 간 이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여야 할 것이다.
사우스케이프는 한국 골프가 도달한 하나의 정점이다.
그 정점에서 보이는 풍경과, 그 자리를 지탱하는 구조를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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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래는, 2023년에 골프산업신문에 게재한 사우스케이프 해석이다.
https://blog.naver.com/smyou21/223171586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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