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초여름 병원 출근길이었다. 버스에서 급히 내리다 우측 발목을 접질렸다. 와그작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면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 주저앉았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동이 아닌 응급실로 출근을 했다. 검사 결과 발목이 골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통제를 먹고 반깁스를 한 채로 응급실 휠체어를 빌려 타고 15층으로 향했다. 휠체어 바퀴를 어색하게 굴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병동 유리문을 향해 다가갔다. 40대 초반인 긴 생머리의 그녀가 머리가 새하얀 다른 여성분과 함께 눈을 크게 뜨고 다가왔다. 대장암 4기인 그녀는 항암치료를 위해 종종 입원하는 환자였다.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병의 진행으로 인해 항암제를 세 번이나 바꿔서 벌써 네 번째 항암제를 쓰고 있는 상태였다. 좌측 아랫배에는 장루를 갖고 있었다.
"교수님,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출근하다가 발목이 부러졌어요."
그녀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병동 앞까지 휠체어를 밀어주겠다고 했다. 의사가 탄 휠체어를 환자가 밀어주는 상황이라니 세상에 이렇게 민망한 경우가 있을까.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영양제 맞으러 입원한 나이롱 환자들이에요."
그녀의 밝은 웃음에 타들어가는 그녀의 얼굴빛이 가려졌다.
몇 주가 지나 태양빛은 점점 뜨거워지고 나무 이파리들은 초록색 물을 한껏 머금었다. 나는 다리 깁스를 풀었고 이제는 천천히 벽을 짚으며 걸을 수 있었다. 그녀는 복통과 장폐색으로 며칠 전 입원을 했다. 병은 또 진행해서 이제는 다섯 번째 항암제를 선택해야 했다. X-ray와 CT를 봐서는 장폐색으로 인해 뱃속 음식물이 전혀 내려갈 것 같지도 않았고 병의 진행 때문에 배가 많이 아플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얼굴은 비교적 태연했다. 그녀는 본인의 상태를 최대한 덜 나쁘게 표현하려 노력하는 편이었다. ‘배가 아프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진통제로 버틸 만하다. 그래도 몇 숟가락이라도 먹기는 했다.’ 이런 식이었다. 흐린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유난히 더 안쓰러웠다.
오늘은 배가 얼마나 아팠는지 구토는 없었는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평소처럼 병실에 들렀다. 병실 침대에 그녀가 없었다. 휴게실에 가보니 그녀는 푸르른 잎이 가득한 병원 뒷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녀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회진을 할 때는 우리의 눈높이가 달랐는데 이렇게 앉으니 그녀와 나의 눈높이가 같았다. 문득 그녀와 같은 눈높이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녀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자녀가 둘이었다. 입원을 할 때마다 집에 가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며 항상 서둘러 퇴원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퇴원이 점점 미뤄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일곱 살이 안 된 아이가 둘이었다. 아이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초등학생이면 꽤 컸는데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주로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하고 싶어?’라고 아이의 의견을 먼저 물어본다고 했다. 그러면 무조건 지시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깨닫는 부분도 있고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는 느낌도 받아서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이 너무 힘든 상태임에도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움과 존경스러움, 부끄러움이 뒤섞여 올라왔다.
나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집 바닥에 레고 블록을 다 쏟아 놓고 놀아서 집이 매일 너무 지저분한데 그녀의 아이들은 안 그러는지. 그녀는 자그마한 어린이용 책상 똑같은 것을 두 개 사서 아이들이 그 위에서만 레고를 갖고 놀게 하니 바닥에 레고 블록을 어지르지 않더라는 팁을 주었다. 그리고 책상은 꼭 두 개가 똑같아야 둘이 싸우지 않고 책상 색깔은 제일 기본인 흰색으로 사야 아무 가구에나 어울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병동 간호사로부터 다른 환자 노티를 받으면서 우리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앞으로는 내 생각을 강요하기 이전에 아이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겠다고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꼭 가구점에 가서 레고 전용 책상을 사주겠다고 그녀에게 다짐을 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가 대화하던 그 순간만큼은 그녀는 4기 암환자가 아닌 그냥 한 명의 엄마였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나란히 앉아 바라보던 푸르른 잎은 울긋불긋한 잎으로 변해갔다. 나는 이제 비교적 자연스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구토와 복통이 점점 심해지면서 3일 동안 응급실을 두 차례 다녀간 후 다시 입원하였다. 대장암 덩어리가 더 커지면서 장루는 거의 막혀가고 있었고 선홍색 출혈이 동반되었다. 복통도 점점 심해져서 모르핀 수액 용량을 증량해야 했다. 신장 기능은 감소하였고 의식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몇 주의 시간을 보낸 뒤 그녀는 결국 눈을 감았다.
푸르른 여름날 그녀와 눈을 맞추고 수다를 떨던 장면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다잡으려 애썼다. 가슴의 정중앙이 아파왔다. 목이 따가워졌다.
2주일쯤 지났다. 옷걸이에 걸린 새 가운들 중 하나를 꺼내어 입는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바스락 하고 뭔가 잡힌다. 꺼내어보니 그녀가 주었던 레몬맛 사탕 두 개다. 그녀가 눈을 감기 며칠 전 이따가 먹으라며 내 주머니에 직접 넣어 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눈 주위가 뜨거워진다. 그녀의 유품 같아서 차마 사탕을 입에 넣을 수가 없다. 책상 서랍을 열고 구석 깊이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