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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원 Jul 17. 2023

반짝이며  항암치료를 하러 입원합니다.

블링블링한 그녀

 그녀는 100m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링블링하다. 갈색 커트머리에 반짝이 아이섀도, 바짝 올린 속눈썹에 붉은 립스틱까지 풀메이크업 상태이다. 주로 검은색 마스크를 쓰는데 마스크에 금색 반짝이가 여러 개 붙어있다. 손톱 하나하나마다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고 신발은 항상 보석장식이 여러 개 붙어있다.

 '화장이 참 곱다, 신발이 공주 같다'라고 말하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한다.

 "반짝이고 예쁜 게 좋아요. 이렇게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져."


 그녀는 직장암 4기였다. 처음 만난 지 반년이 지나서야 갈색 머리가 가발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아침 평소보다 10분쯤 일찍 회진을 갔는데 그녀가 아직 단장을 다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듬성듬성 비어있는 진짜 머리를 보았다.

 "어머 교수님이 벌써 오실 줄 몰랐네."

 그녀는 민망해하며 침대 옆 선반 위에 놓인 가발을 후다닥 챙겨서 머리에 썼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꼼꼼히 화장하고 가발을 쓰는 것이 입원 중 루틴인 것 같았다. 항암치료를 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기력이 없거나 어디가 불편해서 또는 아파서 침대에 주로 누워있다. 그런데 그녀는 가만히 누워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병실에 그녀를 보러 가면 거울을 보고 있거나 꼿꼿하게 앉아있거나 또는 산책을 나가서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입원할 때마다 인형을 꼭 하나 가져왔다. 본인의 친구라며 노란색 공룡인형을 데려오기도 하고 토실토실한 토끼인형을 데려오기도 했다. 차가운 병원 침대 머리맡에 인형을 놓으면 그녀만의 안온한 침대가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에 입원했을 때는 입원 다음날 아침에 보니 탁자에 얼굴을 박은 채 미동을 안 했다. 오늘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날인데 컨디션이 안 좋은가 걱정이 되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손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댄 채 새로 산 인조 속눈썹을 붙이고 있었다. 아주 신중하게. 어제 처음 붙여봤는데 마음에 든다며 나한테도 하나 붙여보라고 권했다.  

  입원 2일째가 되었다. 전날 항암치료를 시작했으니 항상 그렇듯 다음날 아침에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젯밤에 잘 주무셨는지, 메슥거렸는지, 식사는 얼마나 했는지, 대변보는 건 괜찮은지, 붓지는 않았는지, 어디가 아프지는 않았는지, 그 외에 다른 힘든 게 있었는지.

 그날도 풀메이컵을 한 그녀는 나긋나긋한 봄바람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젯밤에 한 번 토했는데 그 이후로는 괜찮았어요. 집에서 먹을 것도 좀 챙겨 왔어요. 오늘은 기분도 좋고 컨디션도 최고예요. 다 교수님, 선생님들 덕분이에요. 너무 감사해요."

 전날 한 번 토하고도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나야말로 잘 버텨주는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녀를 보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떠올랐다. 이 책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인 작가가 히틀러 나치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겪은 일을 쓴 책이다. 작가는 나치가 자신에게 가하는 폭압은 피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해 본인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루에 한 컵의 물이 배당되면 반만 마시고 아껴뒀다가 나머지는 세수를 하는 데 썼다. 깨진 유리조각을 주워 매일 면도를 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아무런 소용없는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품위를 유지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끝내 살아남았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
 

 

 그녀는 계속되는 항암치료로 힘들어하고 절망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화려하게 꾸미고 주위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는 그녀 나름대로 본인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주위까지도 밝게 만들고 있었다.  


 이번 항암치료가 끝났다. 이제 퇴원하면 그녀는 3주 뒤에 다음 차수 항암치료를 위해 다시 입원한다. 환자복을 벗고 본인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를 보 암환자라는 상상은 할 수 조차 없었다. 오히려 길에서 만나는 어떤 60대 여성보다도 화려했다.

 블링블링한 그녀의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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