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유방암 환자가 아침에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병실 옮기고 싶어요"
다인실을 쓰다 보면 이런저런 문제들이 종종 발생한다. 밤새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와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이유를 물었다. 그녀의 답변은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이 병동은 중환들이 많아서 싫어요. 무서워요. 다른 병동으로 가고 싶어요."
그녀의 눈에는 병의 무게보다 더 큰 ‘두려움’이 보였다. 맞은편 환자는 섬망으로 밤마다 헛소리를 했고, 옆 환자는 복막전이로 인한 장마비로 비위관(L-tube)을 꽂은 채 3주째 금식 중이었다. 그녀는 주로 소화기내과 환자들이 많이 입원하는 다른 내과 병동으로 옮기고 싶어 했다.
우리 병동은 종양내과 병동이라서 모든 환자가 '암환자'이다. 종양내과는 암환자 중에서도 특히 4기 환자의 비율이 높다. 즉, 다른 장기에 전이가 있어서 완치가 될 확률이 희박한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감염(폐렴, 패혈증 등)에 취약하고 혈전(뇌경색, 심근경색, 폐색전증 등)이 발생할 확률도 높다. 침범한 장기에 따라 통증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환자가 언제, 어떻게 나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내 마음 한 켠에 깔려있다. 간혹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원할 때면 암환자인지 티가 안 나는 이들도 있지만 나한테는 한 명 한 명이 다 중환이다.
내 앞에서 말하고 있는 그녀 역시 나에게는 중환 중 한 명이었지만 그녀 스스로는 ‘나는 그래도 저분들보다는 상태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았다. 아니면 다른 환자들이 겪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미래가 겹쳐 보였을지도 모른다. 본인의 질병만으로도 벅찼을텐데 주위의 암환자들을 통해 느끼는 두려움이 고통을 더 키웠다.
오늘도 암환자가 겪는 또 다른 하나의 고통을 마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