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극단 <맥베스>
오랜만에 공연예술에 관한 심심한 고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욕망’과 ‘파멸’ 이 두 단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에 주목해 보았다.
지난 6일, 경기아트센터 11월 레퍼토리 시즌 연극 <맥베스>를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알려진 원작을 워낙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경기도극단의 ‘맥베스’는 어떨지 기대되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 그는 자신이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듣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최고의 권력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내 ‘레이디 맥베스’의 달콤한 속삭임과 함께 살인이라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스스럼없이 실행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 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주도적으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욕망에 눈이 먼 인간 군상을 공연예술의 특성인 ‘현장성’에 빗대어 마주하는 즐거움 또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좋아하는 대사가 무대 공간에서 구현될 때의 쾌감이란. 계획적이면서도 충동적인 살인 행위 직후 읊조리는 대사는 악행을 합리화하려는 듯한 화려하고 매혹적인 미사여구가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핏빛 광기'가 바다에 천천히 스며들듯 주변을 점차 붉게 물들일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암시가 잔인하지만 아름답게 표현된다. 이처럼 절대 악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 내면을 무게감 있게 조명한 배우의 입체적인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고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맥베스 내면’이라는 감정적인 캐릭터를 새롭게 등장시킴으로써, 되려 그의 반인륜적 행위를 용인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했던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극한의 상황에 놓였을 때 내비치는 투명성 그리고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달까. 그릇된 행동인 줄 알면서도 ‘대의’라는 가면을 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보다 대담하게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마는 그의 행동은 마치 현대사회 그리고 현대인의 이중적인 내면이 투영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현대적인 해석이 새롭게 가미가 되었으나, 욕망을 경계하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이기심과 고뇌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조금은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욕구 성장과 소멸 과정을 여러 시각적인 효과를 다채롭게 활용하여 풀어낸, 아름다운 작품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무대 공간이 주는 압도감과 더불어 인간 심리를 더욱 신랄하게 드러내는 강렬한 원색 조명의 조화는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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