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May 02. 2022

새로운 출발선 앞에서 여지없이 긴장하는 ‘나’.

  새로운 시작. 새로운 일. 그 새로운 출발선 앞에서 나는 여지없이 긴장한다. 설렘 따윈 없다. 매 순간 도망가고 싶다.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엄청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설사 그게 좋은 기회일지라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보다는 현재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모험을 즐기는 타입은 아닌가 보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거 같은데 점점 더 변화가 싫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내가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앞두고 있어서 그렇다. 수년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이런 아르바이트는 처음이라 걱정이 된다. 길게 하는 건 아니다. 고작 5일 동안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다. 그래도 어쨌든 이건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오롯이 혼자서 책임지고 끝까지 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원래는 안 하려고 했는데 에이전시 담당자의 꼬드김과 돈의 유혹에 넘어갔다. 에이전시 담당자는 이 일이 다른 일보다 훨씬 쉬울 거라고 했는데 교육 자료를 보니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자마자 후회했다. 나를 이렇게 긴장케 한 그 무시무시한 아르바이트(?)의 정체는 바로 과일 시식 행사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과일을 깎아본 적이 별로 없다. 혼자 살게 된 이후로는 깎아먹지 않아도 되는 과일만 사 왔던지라 더더욱 깎을 일이 없었다. 그런 내가 깎아먹는 과일 시식 행사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서있는 것도 쉽지 않은데 서툰 솜씨로 과일을 빠르게 깎아서 고객들에게 계속 제공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혹시라도 고객이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면 손이 벌벌 떨릴 거 같다. 호흡곤란이나 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게다가 매일 시식 과일의 품질 상태도 매일 체크해야 한다. 교육 자료를 통해 좋은 과일 감별법 같은 걸 알려줬는데 솔직히 감이 잘 안 온다. 이 과일 자체가 너무 까다로운 것 같다. 이럴 때는 코로나 규제가 풀린 게 원망스럽다. 물론 시식이나 시음을 하면 판매는 더 많이 되어서 회사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먹어보고 구매할 수 있어서 좋고 말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게는 근무 환경이 굉장히 안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비단 시식 관리하는 일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대게 이런 일은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꼬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소위 진상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 그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너무 미리 걱정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판매를 잘하는 편이다. 시식 같은 거 안 해도 판매를 잘할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과일 깎느라 판촉에는 신경 쓰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그리고 시식이 추가됐다고 해서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급여는 이전이랑 똑같다. 하기 싫은 게 솔직히 돈 때문도 있다. 일이 추가가 됐으면 거기에 맞는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 근데 싼값에 부려먹으려고 하는 게 너무 눈에 보이니까 좀 그렇다. 하지만 결정타는 새로운 일에 대한 부담감이다. 처음으로 잠수를 탈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무책임한 거 정말 싫어하는 나인데 말이다. 정말이지, 새로운 걸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도 새로운 걸 마주할 때마다 이런 불쾌한 긴장감에 휩싸일 걸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진 않다.      


 면역이 생겼으면 좋겠다. 새로운 것도 익숙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생겼으면 좋겠다. 아직은 새로운 것에 잘 적응하고 해낼 거라는 믿음이 부족하다. 사람의 고민에는 끝이 없는 거라지만, 언젠가는 이런 고민으로부터 가벼워질 수 있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숨 고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