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씨발.”
버석하게 말라 허옇게 튼 입술에서 참아왔던 욕설이 나도 모르게 일순간 삐져나왔다. 며칠 전부터 참아왔던 무릎 통증이 이제는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로 뒤덮인 무릎에서는 피와 누런 진물들이 흘러내려 이불을 끊임없이 적시고 있었다. 애써 검지 손가락을 물어뜯어봤지만 다른 통증으로 대체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살이 이대로 썩어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피부과는 내게 그 어떤 길보다 멀게만 느껴졌다. 무엇보다 혼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필 이런 때 넘어진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한편으론 왜 넘어졌는지에 대해 골몰했다. 당시 길에는 돌부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힘껏 달리던 중도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걷다가 ‘쾅’하고 넘어졌다.
그날은 아는 동생 준호가 주최한 영화 모임에 가던 길이었다. 한 달 전에 있었던 화이트 데이 모임에 노쇼한 전력이 있어 이번에는 꼭 가야만 했다. 준호가 농담조(?)로 “누나 이번에도 노쇼 하면 죽여버리겠다”라며 엄포를 놓은 것도 부담이 됐다. 두 어깨에 마치 납덩이를 올려둔 것처럼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실망시키는 게 더 두려웠던 것 같다. 결국 시간 맞춰 대문을 나서긴 했는데 몇 발 떼지 못하고 갑자기 고꾸라졌다. 뼈가 부러진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한 커플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으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같이 공동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악을 쓰고 싶었으나 그것조차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다친 무릎 아래를 부여잡고 앉아 있다가 절뚝이며 어렵게 민재가 있을 B동으로 향했다. 들어가자마자 민재에게 구급상자를 받아 응급 처치를 했으나 치료를 할만한 도구 및 약품이 별로 없었다. 제대로 소독도 하지 않은 상처에 대충 후시딘을 뿌리고 붕대를 감는 게 다였다. 통증은 전혀 옅어지지 않았지만, 서둘러 모임 장소로 향했다. 나보다 약속이 먼저였다. 그러고는 도착하기 직전 몸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을 뭉텅이를 게워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단 한 끼도 먹지 않았는데 정말 많은 양의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내장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비워낸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무릎을 심하게 다친 와중에도 불굴의 의지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포기하지 않고 준호와 사람들이 모인 책방 문을 열었다. 당연하게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고 떠들었으며 아픔을 들키지 않으려 무리했다.
그 결과, 이렇게 방에 틀어박혀 이불에 진물이나 적시게 된 것이다. 고장 난 휴대폰처럼 아무리 누워있어도 충전이 되지 않았다. 하우스 매니저인 김이 얼마 전부터 문을 두드리며 무릎이 괜찮은지 안부를 묻고 있었지만, 제대로 대답할 수조차 없었다. 방문에 달아놓은 빗장처럼 마음의 문을 단단히 닫은 채 끝없이 침잠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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