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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나에게

10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

by 달팽이

* 10년 뒤 제 모습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어떤 동물에 가장 가까울지 상상해서 써본 편지입니다.




잘 살고 있니?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고 어느덧 지금에 이르렀구나. 지금도 천국은 아니겠지만 여기까지 살아보니 어때? 원했던 대로 초원을 자유롭게 뛰놀며 살고 있나. 발에 밟히는 돌멩이는 요즘 없는지 궁금하네. 꽤 오랜 시간 망아지였는데, 완연한 말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게 신기하다. 마생(馬生)은 역시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건가 봐. 앞으로 또 쪼그라드는 날이 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마. 주변의 초원이 다 타버리더라도, 풀 한 포기 마음에 남지 않더라도 네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놓치지 말고 함께 걸어 나가렴.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마생(馬生)에 있어 힘든 일은 겪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긴 한 거 같아. 하지만 덕분에 고유한 존재가 될 수 있었지. 그건 네 오랜 꿈인 너 자신이 되는 일이었어. 있잖아. 돌멩이가 발에 차이고, 성가신 벌레가 몸통에 자꾸 달라붙어 귀찮게 하고 꼬리로도 도저히 떼어지지 않는 순간 정도는 어차피 또 올 거거든. 근데 그런 때에도 초원의 잎사귀에는 이슬이 맺혀 있고, 작게 핀 꽃들은 바람에 나부끼고 있어.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빈 소라 껍데기를 귓가에 댄 것처럼 솨아아-하는 소리도 들려. 사이사이에 숨어있어 자주 잊고 마는 기쁨들이지. 네가 자주 잊혀지는 것들을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앞으로 내딛는 걸음마다 사랑이 어려있길, 그래서 끝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건 잘한 일이었다고 느끼게 되길 바라. 사랑해.


2025. 06. 11. 수

- 네 1호 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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