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아동학대 가해자다. 피해 생존자는 '나'다. 나는 6-7세부터 20대 초반까지 학대를 당했다. 한편 우리 부모님은 무척 자애롭다. 당시 소녀였던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시장을 배회하기도 했으며, 잠들기 전엔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고 소리 내어 읽어주기도 했다. 계절마다 색색의 과일을 준비해 입 속에 넣어주는 건 기본이었다. 어려운 형편임에도 정신과 진료비와 심리 상담 비용을 지출하고, 학원비도 부담하며 사랑에 가까운 무엇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니, 어쩌면 그건 사랑이 분명했다. 사랑이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으니까. 이런 사람들이 플라스틱 빗자루로 몸에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안경이 날아갈 정도로 뺨을 수십 대나 쳤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발로 밟고, 동생들 앞에서 머리채를 잡아 정육점의 고깃덩이처럼 끌고 다녔다고 한다면? 아마 그 누구도 쉽게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는 표면적으로 좋은 부모처럼 보였다. 아버지 본가든 어머니 본가든 가기만 하면 "부모님께 잘해라"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고, '희생정신의 아이콘'으로 연민을 점유했다. 덕분에 나는 양가감정과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부모를 끊어내지 못했다. 때로는 사랑받고, 사과받고 싶은 이 마음이 정당한 것인지 의구심도 들었다. 그럼에도 본질적인 마음은 사랑과 사과를 원했다. 가끔은 이것도 저것도 다 됐고 끊어내고 싶었는데, 결국 완벽한 악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그럴 때는 내게 주었던 마음들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었다. 하지만 마치 손에, 머리에 껌이 달라붙은 것처럼 그것들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양가감정은 기묘한 방식으로 나를 파괴했다. 어느 날은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 안달 난 아이 같았으며,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포악한 군주가 되었다. 내가 입은 상처들을 어떻게든 보상해 내라며 악을 썼다. 자괴감은 막을 도리 없이 점점 커져만 갔다. 죽음의 그림자가 내 세상을 뒤덮었다. 이후 검은 장막을 걷어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나름 성장했다고 여기는 지금도 부모와의 분리가 완벽히 이루어지진 않았다. 여전히 죽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회색 정도는 된 거 같다. 치유는 어쩌면 평생의 과업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이제는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하는 빈도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다시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때가 오게 될 수도 있지만, 상황은 늘 변한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나는 다짐한다. 악착 같이 살아남아 자연사하기로. 이게 내 유일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