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난 기본적으로 성격이 급한 편이다. 이전 직장에서도 일은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노력했었다.
심지어 매장에서 점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바쁘면 내가 주방에 들어가거나 밀린 설거지를 보면 직접 가서 하기도 했다. 원래 점장이라면 매장 전체를 관리하며 손님 응대를 해야 하는데 답답하면 직접 나서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랄 맞은 성격이다. 이런 성격의 내가 달팽이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한 느림의 미학을 배워보자. 어차피 급하게 마음먹는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달팽이는 최소 5~6개월 이상은 키워야만 식용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6개월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다. 잘 키우며 기다려야만 한다. 처음 시작하기로 마음먹을 때부터 최소 3년은 해봐야 한다고 결심을 했었다. 그 정도는 해봐야 내가 달팽이농장을 계속할지 말지 판가름이 날 거 같았다. 훗날 2년 만에 최대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처음 분양받은 달팽이는 총 6천 마리. 양식 통에 담아봐야 3백 통이다. 농장 안은 휑하고 할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부업으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고도 없는 곳에 자리 잡은 나로서는 주변에 아는 지인도 없었다.
서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비록 내 땅은 아니지만 600여 평에 가까운 꽤 넓은 자리에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일단 기존에 버리고 간 쓰레기가 엄청났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쓰레기를 치웠다. 그래도 처리 못 한 쓰레기는 여전히 숨겨두고 있다. 봄이 되자 한편에는 텃밭을 일구기도 했다. 텃밭 치고는 80여 평에 가까운 꽤 큰 크기였지만 손 수 괭이질을 해가며 텃밭을 가꾸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돌아보면 풀과의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예초기도 돌려 보았지만, 머리 깎듯 예쁘게 깎아 놓으면 보기에 당장은 좋아 보인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풀은 금세 또 자라나 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제초제를 뿌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기존에 살던 컨테이너 하우스도 리모델링할 곳이 많았다. 내부는 난방 등을 고려해 단열 벽지를 직접 시공했다. 외부는 더 가관이었다. 옛날 빈민촌에서나 볼 법한 판자 지붕에다 뒤편에는 나무 한 그루가 집을 집어삼킬 듯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멀지 않은 친정집에서 찾아오신 장모님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고~ 여기 무슨 귀신 나올 거 같냐!”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보다 못한 장인어른과 동네 지인분의 도움으로 일단 판자 지붕을 걷어냈다. 새로 지붕틀을 만들고 패널로 지붕을 만들었다. 그리고 집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나무도 전기톱으로 베어 버렸다. 쓸모없을 것 같은 그 나무는 버섯 키우는데 요긴하게 사용하셨다. 그다음 창고 같은 회색빛 컨테이너 외벽은 직접 유럽식으로 알록달록 깔끔하게 페인트칠해 놓으니 나름 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컨테이너 하우스지만 기존 원룸 같은 작은 아파트보단 훨씬 좋았다. 무엇보다 가격은 아파트 전셋값과 비교하면 5/1 수준으로 장만한 완전 내 집이었다. 데신 무주택자 신세가 되어 전세자금 대출 조건이 박탈되어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다. 여름이 되면 풀과의 전쟁은 절정에 달한다. 만약 새롭게 시작한다면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농장 외 주변을 확실하게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농장 옆 배수로부터 시공을 잘해야 한다. 다음 농장 주변은 공터는 잔디를 심든 자갈을 깔든 하는 것이 좋다. 아예 시멘트 시공을 할 수도 있으나 그건 가능 여부를 먼저 따져야만 한다. 애매한 가장자리 부분은 영구적이진 못하지만, 잡초 매트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외부 조경을 깔끔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땅부터 경사지고 반듯하지 못하고 임대한 땅을 비용을 소모해가며 정리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 땅이 없는 설움이다. 오히려 임대료를 주고 땅을 내가 관리해주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금방 가을이 찾아오면 봄에 준비해 놓은 텃밭에서 여름부터 상추 고추 오이 호박 토마토 옥수수 등 수확해서 먹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한다. 거기에 농장 한편 손수 지은 천막 아래에서 바비큐 파티는 정말 빼놓을 수 없는 낙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면 수확해야 할 것도 많아지기도 하고 금세 다가올 겨울도 준비해야 한다. 비닐하우스는 차광망을 걷어 햇빛을 받아 따뜻해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여전히 사용하는 연탄난로와 보일러를 위해 연탄도 들인다. 연탄값도 이젠 해마다 상승하여 2021년 기준 장당 750원이다. 초기 500원 했던 연탄값도 이제 무시할 수가 없어져 간다. 하우스 내부는 특별한 냉난방 시스템이라기보단 냉난방기를 설치하였다. 요즘 스마트팜이다 뭐다 많이 기사에서 접하지만, 일반적인 농부에겐 전혀 비현실적인 시설일 뿐이다. 알아본 바로는 온습도 자동조절 가능한 장치를 설치하는데 기본 천만 원가량 이상의 비용이 소모된다. 2천만 원대 비닐하우스에 천만 원짜리 스마트팜 설치가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이렇게 달팽이 돌보는 일보다 주변 일에 더 정신없이 지냈을 즈음 어느덧 한 해가 훌쩍 넘어가 버렸다. 한마디로 귀농·귀촌 생활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어떻게 한 해를 보냈는지조차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간다. 시작하며 달팽이처럼 느리고 꾸준히 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작심삼일에 불과했다. 느림의 미학은 개뿔. 주위를 둘러보면 사방팔방이 일거리다. 도저히 느긋하고 여유 있게 있을 시간이 없다. 물론 보이면 해야 하는 급한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귀농·귀촌을 계획하거나 하신 분들이라면 많이 공감하실 거다. 정말 많이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말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아주 덜하지만 그만큼 몸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농장 한편에는 이런 구절을 붙여 놓았다. 「달팽이는 느리지만, 천천히 천천히 자기 길을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