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는 전용 양식 통에서 특별히 돌봐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물론 기본적인 온/습도는 적정하게 맞춰줘야 한다. 그리고 양식통 안에 코코피트와 먹이만 잘 주면 된다. 애완동물처럼 산책을 시킬 필요도 없고 놀아줄 필요도 없다. 그래도 뭐가 궁금한지 자꾸 들여 다 보게 되기도 한다. 달팽이들은 잘 있나. 애지중지 달팽이를 보살핀다. 집에서도 애완용 도로 키우는 사람도 많다. 그분들은 달팽이를 귀여워하며 애정을 쏟는다. 나 역시 달팽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크다. 그 애정이 애완용으로 돌보는 애정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수십만 마리가 되는 달팽이를 보면 사실 이게 몇 킬로나 나오려나. 애완용으로 판매하면 몇 마리나 나오려나. 돈으로 보이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달팽이를 키우며 가장 어려운 점 중의 하나가 고정적인 판매처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10년이 되었는데 고정적인 판로가 가장 큰 숙제이다. 물론 단골 거래처는 어느 정도 확보는 하긴 했다. 하지만 그 단골 거래처도 주문이 고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쩔 땐 달팽이가 많아 걱정 반대로 부족해서 걱정하기도 한다. 아 이놈의 달팽이 때문에 걱정이 수시로 오락가락한다. 달팽이가 잘 팔릴 때는 기분 좋게 달팽이들을 바라보다 아닐 땐 애들을 어쩐다. 그냥 다 삶아 버려. 보고 있는 게 힘들어지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달팽이가 꼴도 보기 싫어질 때가 있다.
내가 어쩌다 이놈들을 키우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왜 남들 하지 않는 어려운 길을 택한 건지. 농업 분야 소속에 속하지도 않으니 농업인도 아니고 나의 정체성은 뭔지. 별의별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난 매일 아침 5시에 기상을 하는 편이다. 일이 그 정도로 많아서 일찍 일어나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내가 일정대로 오전 중에 주 업무를 끝내기 위해서다. 그래야 오후 활동을 다소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엔 바로 옆이 농장인데도 나가기 싫어질 때가 있다. 그냥 내버려 두라지. 뭐 하루 이틀 그냥 둔다고 달팽이들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몸은 결국 농장으로 향한다. 그렇게 해온 것이 10년째다. 주위에서 보면 참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해줄지도 모르겠다. 나도 지금껏 그렇게 꾸준히 성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생각에 변화가 많이 생겼다. 돈을 많이 벌어 여유가 생겨 그런 것도 아니다. 10년째 어느 순간 마흔이 넘어 갑자기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10년 가까이 악착같이 버텨 온 게 다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그냥 다 포기하고 놓아 버리고 싶었다. 이 지랄 맞은 성격인 나 자신도 싫어졌다. 내가 이렇게 되니 가족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아내와는 일절 말도 하지 않았고 딸아이와도 놀아주지도 않았다. 집에선 먹고 자기만 할 뿐 말도 없이 묵언 수행이라도 하러 온 템플스테이가 되고 말았다. 좋아하던 술도 먹지 않았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에 비틀거리는 꼴도 끔찍하리만큼 보기 싫어졌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생활하다 답답함에 참지 못한 아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냐고. 나 때문에 집에 있으면 숨이 막히고 눈치가 보이다고. 이런저런 안 좋은 생각만 든다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의 내 상태를 얘기하며 눈물이 흘렀다. 나로 인해 아내와 딸아이까지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웠다. 그래도 혼자 그렇게만 힘들어하지 말고 나에게도 얘기해줘야 한다고 말해주는 아내의 말에 조금 힘을 냈다. 내 상태가 이래서 금방 좋아질 거 같진 않아. 그래도 노력해볼 테니 지켜봐 줘. 그렇게 대답한 뒤로도 한동안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 와중에 1년 넘게 하는 독서 모임에는 매주 최대한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많은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고 스스로 좀 더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젠 코로나로 인해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 나는 데로 난 도서관으로 갔다. 조용하게 책도 보고 글도 썼다. 이 글의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작성한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억지로 가던 도서관이 지금 나에겐 없어선 안 될 곳이 되어 버렸다. 책으로 인해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 나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며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보게 해 줬다. 평소 같으면 순간 욱하고 짜증 내고 이랬다 저랬다 했을 것들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줬다. 사람은 마음먹기 달렸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짜증, 슬픔, 불안, 분노 등 여러 좋지 못한 감정이 생긴다. 지금껏 그렇게 순간순간 감정이 느끼는 데로 살아오던 것을 조금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쉽게 말해 내 마음속을 한 겹 한 겹 벗겨내어 정말 솔직한 내 심정이 어떤 건지를 먼저 생각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농장에서 아내와 일할 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확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었다. 어쩌면 종일 붙어 있으니 그런 일들이 당연히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짜증을 내는 이유의 속마음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결론은 나의 잘못된 기대 때문이었다. 우선은 결혼 10년 차가 되어서야 서서히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같이 사는 부부라도 근본적으로 생각이나 성격이 다르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부부는 닮아 간다느니 서로 맞춰 가며 사는 거라고 하는 건 그냥 좋게 하는 얘기일 뿐이다.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니 문제가 된다. 서로 다르고 틀린 부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같이 살아온 게 몇 년인데 같이 일해온 게 몇 년인데 왜 내 마음을 모르지? 그래서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그런데 모르는 게 당연하다. 서로의 생각이 애초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상대방은 움직여 주지 않는다. 바보같이 당연한 것을 난 억지로 기대하고 스스로 짜증 내고 화를 내고 있었다. 이후론 아내는 그렇게 생각했나 보구나. 그러면 된다. 우리 농장에는 얼마 전 새끼 길고양이가 우연히 농장에 살게 되었다. 강아지에게 물린 고양이를 치료해주고 밥도 챙겨줬다. 그랬더니 나를 강아지처럼 졸졸 쫓아다니며 엄마로 생각하는 고양이다. 생전 처음 키워보는 고양이인데 애는 그냥 알아서 혼자 먹고 싸고 일하는 나를 진득하게 앉아서 쳐다보기도 한다. 가끔 강아지처럼 놀아달라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새벽녘부터 혼자 농장에서 일하는 나에겐 항상 옆에 있어 주는 꽤 힘이 되는 고양이다. 이런 사랑스러운 고양이에겐 그저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기만 하면 된다. 다른 기대가 애당초 없기 때문이다. 대신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이쁜 고양이를 더 아껴줄까를 생각한다.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아내에게도 앞으로 자기에겐 기대를 안 하기로 했다고 했다. 보통 부정적인 말투로 내가 너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어!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시해서도 더욱더 아니다. 내 욕심대로 생각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고양이도 아껴주면서 옆에 더욱 소중한 내 아내를 아껴주지 못하면 안 되지 않나. 그리고 힘들게 했던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건 나의 부족함과 단점을 모른 체하고 다른 것들로 핑곗거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헛된 기대와 마찬가지로 이런 핑곗거리를 찾는 습관도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달팽이농장을 패기 있게 시작하고선 초기 몇 년은 힘들 거란 걸 뻔히 예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든 핑곗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달팽이는 대중적이지가 못해, 경쟁자들만 계속 늘어나, 경기가 좋지 못해 등등 온갖 핑곗거리를 찾는다. 나아가 금전적으로 도움 주지 못하는 부모님 탓을 하는 건 가장하기 쉬운 핑곗거리다. 인정하긴 싫지만 부족한 나를 탓하는 것보다는 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자기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위안으로 삼아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속으로는 잘 안다. 달팽이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