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5%의 오차가 있다

95%에 기대고 싶습니다만

by 오끄

어릴 적 나는 대단히 '정성적' 사람이었다.

구체적인 수치 등에 기대기보다 두리뭉실한 형용사에 기댔다.


대충 " xx 분야로 다른 분야에 비해 n% 더 성적이 좋으니 이 쪽으로 기대해봐야 하겠다" 보다

"나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람이니까 어떤 분야로 가든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로

나의 성장 과정을 메꾸어 왔던 것 같다.


그러다 언어 쪽보다는 수리 쪽 성적이 더 잘 나왔던 터라 경영학부에 진학하게 됐다.


경영학에도 마케팅, 회계, 재무 등 다양한 전공 분야가 있는데 그중 나는 회계와 재무가 맞았다.

평소 문자 혹은 언어보다는 숫자 쪽에 더 관심이 있던 터라 그랬던 것 같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통계 관련 수업을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것이다.

요즘은 학사 및 석사를 마친 지도 꽤 오래된 터라 용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통계 수업에서 신뢰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어떤 것이든 100%의 확률로 발생하는 일은 없기에 적어도 95% 혹은 98% 등의 확률로 그 가능성을 입증해내는 것이 주요 골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정확한 설명이 아닐 수 있다)


내가 그때 기억한 건 이 세상천지에 100%란 확률은 없으므로 95% 혹은 98%의 꽤 높은 확률을 통해 해당 사실이 일반적 사실로 판단한다는 것이 통계학의 주된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항상 95% 혹은 98%의 확률 또는 가능성 내에 내가 살고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된다고.. 5% 또는 2%의 확률로 일어날 일들이 본인의 일이 되고는 할 수 있다.


세상 이치를 단순 확률에 기대어 설명할 때 내가 95%나 98%에 해당할 때는 "당연하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른 입장이 되었을 때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버림받은 기분까지 들었다.


이후 나는 극심한 불안 장애를 앓게 되었다.


그다음 일도 소수의 확률에 해당하는 일이 아닐 것인지, 나라고 평생 대다수의 삶에 낄 거란 보장은 어디 있는지가 의심스러워졌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심은 나를 갉아먹었고 쓸데없는 걱정으로 하루하루 스스로를 고통 속에 살게 하다 문득 아무 일 없다는 듯 내가 우려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극소수가 되지 않는 것이 우연 혹은 행운 같이 느껴지긴 했다.


그냥 한 번은 이런 일을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나보다 더 혹독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5% 혹은 2%의 확률을 맞이해야 했던 이들의 감정에 작게나마 위로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절대 넘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눈에 띄지도 않은 거친 돌이 내 발목을 잡아 길 위에 세게 넘어져 다리가 부러질 듯한 고통을 겪었다고 해도 그 일이 향후의 삶을 결정하진 않을 거란 현실성 없으면서도 희망적인 위안을 건네고 싶다.


부디 그 일이 각자의 삶을 지나치게 더디게 만들 덫이 되지 않도록 힘들고 고통스럽고 괴기스러워도 앞으로 일단 나아가 보길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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