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외로움은 자청한 것입니다만
고등학생일 때부터 난 주변에 "난 미국에 가서 살거야" 라는 말은 줄곧 내뱉어 왔다. 내가 자란 곳은 그리 작은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울 집중도가 높은 대한민국에선 여전히 시골이었다. 그냥 더 큰 데서 살고 싶은 마음에서 튀어나온 마음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결국 난 지금 미국에 머물고 있다. 이제 5년 차.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열 명 남짓할까? 싶을 정도로 나는 협소한 인간 관계를 맺어왔다. 그만큼 나는 내성적이기도 하지만 구태여 친구를 다양하게 만들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마실 때도 늘상 마시던 이들과 마시던 것을 좋아했다. 강아지를 기르기 전에도 나는 굳이 일이 있지 않는다면 주말에 바깥에 나갈 일이 전혀 없었다. 일례로 수유에서 살 던 시절, 대학교 여름 방학 때 한 달 반 정도 집밖에 나가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친구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사람이 왜 외로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외로운 감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혼밥, 혼술 레벨이라는 말이 있던데 나는 이런 말을 알기도 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밥을 먹기도 했고 20살엔 혼자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도 구워 먹고 그랬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 과거의 내가 대단했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나는 혼자 하는 것이 더욱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건너 올 때 내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없으면 굉장히 힘들 것 같다며 울었는데 나 역시 그 친구가 없으면 내 인생은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난 눈물은 안 났다. 그냥... 잠시 떨어져 있는 거니까 눈물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 건너와 친구 한 명 없는 이 곳의 삶은 정말 행복 그 자체였다. 남의 시선을 가뜩이나 신경쓰지 않는 나였기에 미국의 삶은 적응하기도 쉬웠다. 친구도 없으니 누군갈 만나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으니 홀가분했다. 철천지 남편밖에 없는 이 머나먼 타국이 너무 행복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도 역시나 친구 1명도 없는 이 곳은 좋다. 그런데 얼마 전 사무치게 외로운 감정을 태어나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사소한 감정 조차 털어 놓을 곳이 없다는 것을 지극히 깨달았을 때다. 사람과 사람 간에 물리적으로 떨어진 것에 대해 느껴본 적 없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해 본 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물리적으로 떨어지며 생겨난 외로움은 내가 자청한 것이 맞다. 그런데 그 환경에서 비롯되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화학적 외로움에 대해서는 도무지 해결 방법을 잘 몰랐다. 당장 한국으로 달려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어차피 한국으로 가도 난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있을 거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두 말 할 것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결국 내면의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내가 막을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힘이 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나는 가족과 친구의 존재에 힘입어 오늘 하루도 버텨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