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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Nov 13. 2022

엄마라는 사치

내겐 너무 사치스러운 단어 워킹+맘

스물아홉.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임신 계획을 밝히자 친구들의 만류가 이어졌다. '결혼, 임신, 출산'이라는 여자의 3대 무덤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20대라니, 꿈이 많은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연봉 2,500만 원의 평범한 월급쟁이 사원에게 '엄마'라는 이름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말이다.




나는 업무 특성상 변호사를 자주 마주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변호사님이 있는데 업무 상 연락을 하면 수화기 너머로 아기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많다. 나름대로 분야에서 손꼽는 변호사님이시고 그만큼 수임하고 계신 사건 또한 많지만 상대적으로 업무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덜 받으시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저마다의 고충이 있겠지만 전문직은 상대적으로 업무 시간이 자유롭고 휴직을 하더라도 재취업의 걱정이 덜할 것만 같다.


한편, 공립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했던 친구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무관들은 아이가 셋이라고 한다. 첫째도 예쁘고 둘째도 예쁘지만, 셋째는 차원이 다르게 예쁘다며 꼭 셋째까지 나을 것을 추천했다고 한다. 교육부 등 정부부처가 모여 있는 세종시의 출산율이 부동의 전국 1위라는 점을 감안하여 보면 비단 해당 학교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나는 전문직도 공무원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전통적인 중소기업으로 육아휴직을 가면 계약직을 뽑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을 신규 채용한다. 육아휴직을 다녀왔을 때 내 자리가 있을지 없을지는 철저하게 운에 맡겨야 한다. 그뿐인가.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내가 한 달안에 듣게 될 말은 "둘째 계획은..?"일 것이다. 결혼 계획을 밝히자마자 "아기 계획은..?"이라는 질문이 쏟아졌던 것과 같은 맥락이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냥' 그리고 '덜컥' 임신을 하는 것이 두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을 갖기로 했고 나만의 <엄마 되기 프로젝트>는 어느덧 20주 차를 넘어섰다.


20주 동안 나는 매일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 권 이상 책을 읽었으며,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나름의 공부를 했다. 명상을 시작했고, 혼자만의 감사운동을 실시하기도 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글쓰기를 통한 자기 계발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난 20주 동안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던 적도 있고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도 막상 포기하려 뒤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눈에 들어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조금만 더 가보 자하는 마음이 든다. 그 마음 덕분에 나는 결국 포기하지 않고 때로는 굵게 때로는 가늘게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을 기준으로 21주째 도전을 이어가는 나의 소감은 이렇다. 내가 그렸던 '이상적인 엄마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사치스러운 꿈이다. 본인의 커리어를 유지하면서도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은 높은 전문성 혹은 놀라운 사내 복지를 담보로 할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가가 되는 일도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일도, 현재의 나로서는 가만히 앉아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꾸는 꿈이 사치스러운 꿈이라면 그 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하지만 크고 놀라운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들을 지속하는 일이다. 내가 20주 동안 도전해온 것들이 더 이상 도전이 아닌 습관이 되어 새로운 도전으로 내 삶을 채워나갈 수 있을 때쯤이면 나도 조금은 더 나의 이상향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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