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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Nov 26. 2022

"결혼하는데 조건이 하나 있어."

결혼과 육아, 그리고 사회생활에 대한 고찰


남편이 처음으로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남편이나 시댁에서 혹시 결혼을 하면 일을 그만두길 바라지는 않을까라는 기우였다.


그동안 중고등학생들을 주로 만나며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고생하는 어머님들을 종종 목격했던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걱정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경력이 단절되는 이유는 육아에 대한 부담과 가부장적인 유교문화 때문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고민 끝에 미래의 남편이 될 남자 친구에게 굳은 결심을 전했다.


"나는 평생 일 할 거니까 나를 말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비장한 내 모습에 내심 긴장했던 당시 남자 친구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 마음, 평생 변치 않길 바랄게."




'내가 지금 얼마나 진지한데, 지금 장난을 치려고 하는 건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에 기분이 상할 준비를 하며 남자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진심. 그리고 기쁨.

내가 남자 친구의 표정에서 읽었던 두 단어다.


나와는 일곱 살 차이로 이미 결혼한 친구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말이다.


결혼 1주년을 열흘 남짓 앞둔 시점에서 남편과 위의 대화를 주고받던 그날을 떠올려 보니 이제는 나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느덧 나도 가슴팍에 사표를 품고 살아가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은근슬쩍 기조를 바꾸어 장난치듯 남편의 의중을 떠보곤 한다.

"나 그만두면 남편이 먹여 살려 줄 거지?"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와 비슷한 사정에서도 직장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섣부른 일반화 일지 모르지만 남편의 가까운 직장동료 중 와이프가 풀타임으로 근무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결혼을 하며 직장을 그만둔 동료들이 적지 않다. 결혼을 할 때는 그만두지 않더라도 아이가 생기면 그만두는 경우가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직장생활이 맞지 않아 후련하게 사표를 던졌고, 누군가는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감에 눈물 젖은 사표를 울며 겨자 먹기로 내야 했다. 이직을 위해 잠시 쉬어가려 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쩌다 전업주부가 된 이들도 있다. 취업을 준비하다 임신을 하게 되며 취업의 꿈을 내려놓게 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가지게 된 생각은 결국은 부부의 선택이라는 깨달음이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부부의 선택이라 표현한 이유는 결혼한 이상 개인만의 선택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부라는 운명 공동체는 서로의 선택에 필연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모든 선택에 충분한 대화와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반드시 부부가 모두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결혼 혹은 육아를 이유로 사회생활을 중단하는 이들의 선택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할 개인의 삶이다. 하지만 어떠한 결정을 했던 그것이 자의가 아닌 타의라면 그 사람의 삶이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장애물이 따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계속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편을 택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과 전업주부가 되어 아낄 수 있는 생활비의 균형이 깨진다고 할지라도 우리 부부는 이 편이 우리에게 더 잘 어울리는 삶이라는 데에 합의했다. 서로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지속해서 고민 중에 있다.




결혼에도, 육아에도, 여성의 사회생활이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지금과 같이 다양한 꿈을 꾸지 못했다. 오직 내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과 나라는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입증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답'이라는 틀을 내려놓고 보니 훨씬 더 다양한 선택지들이 손에 쥐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를 가득 메운 '혐오'라는 기조가 알게 모르게 내 삶 속에도 스며들어 '정답'과 '오답'을 가르려 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답'이라는 딱딱한 잣대를 내려놓고 다채로운 행복을 누리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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