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
감사할수록 무수입수명을 더 늘릴 수 있다.
불확실한 복잡계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 중의 하나는 무수입수명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수입수명이란, 수입이 0원인 상태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따라서 무수입수명은 남아있는 잔고를 생활을 위해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금액으로 나눈 값이 된다.
그렇다면 무수입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잔고를 늘리거나, 생활에 필수적인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잔고를 늘리는 일은 다소 직관적이다. 부를 창출하면 된다. 부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너무도 원하는 나머지 돈을 주고서라도 갖고싶어하는 것이다. 그것을 만들어내면 된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즉각적으로' 후자에 도움이 된다. 즉각적인 이유는 외부세계를 건드리지 않고 그저 생각하는 방식 혹은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내가 가진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데, 이는 뇌가 외부세계를 인식할 때 절대값이 아니라 상대값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제 내가 가졌던 것을 오늘도 소유하고 있는 것은 변화량이 0이다. 그러므로 뇌는 이미 소유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점점 덜 기울이게 된다. 반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한편 나는 갖지 못했는데(0), 남은 가졌을 때(1 혹은 더 큰 값) 상대값은 0보다 작아지며 인지 영역에 들어온다. 이 음수의 상대값에 대해 뇌가 느끼는 감정을 '상대적 박탈감' 또는 '열등감'에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뇌는 상대값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앞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두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뇌는 내가 가졌고,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0으로 인식하며(=당연한 것), 내가 갖지 못했거나 / 상대가 얻었다고 알린 것에 대해 -1 혹은 그 정도그 심할수록 -10, -100 ... 으로 인식한다.
여기까지 뇌가 느끼는 0과 음수 영역에 대해 다뤘다. 그러면 남아있는 것은 양수 영역이다. 뇌가 양수로 인식하는 상대값은 어떤 경우일까? 앞선 계산법을 응용하면 '나는 가졌으며, 상대는 갖지 못한 것'(A)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양수 영역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는 건강한 영역이며, 또하나는 뒤틀린 영역이다. 뒤틀린 영역은 우월감이라는 감정을 낳는다. 뒤틀린 영역에서 맛보는 감정은 좀 더 쾌락적이고, 달콤하고, 자극적이다. 따라서 이쪽 방향으로 길들여지기가 쉽다. 뒤틀린 영역은 그 사람을 더더욱 뒤틀리도록 만드는데, 우월감이라는 감정을 더 많이 맛보기 위해서 '사실 나는 갖고있지 않지만 갖고있는 것처럼 보이는 과시'를 통해 상대로 하여금 이 진실이 아니라 (A)로 느끼게 속이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식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런 과시는 자신의 잔고를 줄여서 '값비싼 신호'로 여겨지는 명품과 같은 사치재를 구매하여 착용/사용함으로써 손쉽게 이룰 수 있다. - 하지만 이는 무수입수명을 단축시키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 나는 이런 짓을 하고싶지 않다고 여겨왔다. 어쩌면 언어화되지 않은 직감의 단계에서 이미 이런 판단을 한 것인지 모른다.
[[매우 비싼 신호, 정말 진짜배기만이 할 수 있는 과시와 흉내]]
한편 건강한 영역은 '감사함'이라는 감정을 낳는다. '나는 가졌으며, 상대는 갖지 못한 것'(A)이라는 똑같은 인식에 대해, 누군가는 우월감을 느낄 때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아서, 그저 시대를 잘 타고났거나 부모님을 잘 만나서, 더 장기적으로는 조상님을 잘 둬서 이 모든 것들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 나는 되도록 이 깨끗한 영역에 머물고자 하며, 이 영역 바깥으로 날 끌어내려고 하는 시도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아마도 내가 칭찬 받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것때문일 것이며, 칭찬 하기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이것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뇌의 기본값은 0이다. 내가 이미 가진 것과 누리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첫째, 약한 방법으로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처럼 스스로 가끔 환기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더 강하게 인지하는 방법은 '돕는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나는 은연중에 내가 가진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1]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집중하는 것은 과시를 위해 소비하도록 만들지 않기 때문에 무수입수명을 늘린다. 또한 뇌는 동시에 여러 주제에 집중할 수 없으므로, 또한 감사할 것을 생각하는 동안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메커니즘도 억제할 수 있다. 감사한 마음을 자주 느끼는 것은 무수입수명을 늘릴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 느끼는 전반적인 만족감도 올려준다.
돌아보며 드는 생각
1. 양수, 0, 음수 개념과 뇌가 인식하는 상대값 개념, 그리고 그것들을 상대적 박탈감, 우월감, 감사하는 마음 등으로 분류한 것은 순전히 글을 쓰며 논리를 전개해나가면서 즉석에서 연결지은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 개념들은 그저 파편적으로 머릿속을 떠다니기만 했을 것이다. [^2] #글쓰기의쓸모
2. 연관짓기, 이유찾기, 이야기짓기 - 객관적이거나 타당하다고 할수없는 수준이지만, 역시 파편적으로 떠다니던 나의 칭찬을 좋아하지 않는 것, 권위를 싫어하는 특성들을 하나의 분류로 묶을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의쓸모
3. 내 안에 점점 '사이클' 내지는 '순환' 개념이 움트고 있다. 사과 위에서 앞으로, 앞으로만 전진하던 개미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초기에 생각하던, 아니면 원래 글을 쓰기 전부터 갖고있던 특성들을 비로소 설명해주는 이유를 찾으며 원점들로 돌아오곤 한다. 이는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점점 더 많은 글들을 써내려가며 더 많은 생각의 조각들을 캡처할수록 이렇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직 결론내리지 못했다. 매일 글을 써내려가면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_ 그리고 이 '도움'은 그 도움받던 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언젠가 자신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때 또다른 누군가를 돕게 만드는 건강한 전염성을 갖고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반면 위의 '우월감' 역시, 상대적박탈감을 많이 겪은 사람이 우월감을 과시할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을 때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부정적 전염성을 갖는다. - 어느 방향으로 가든 같은 패턴의 사용자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2]: _ 개념들을 숫자 또는 물리 혹은 다른 분야와 연관짓고 대응시키는 것은 유용하다. 생각하지못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