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에게』 그래도 사랑해!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리뷰와 후기

by 서은


할머니의 여동생이 한 분 계셨다. 그러니까 이모할머니! 공무원인 아빠가 해외에 나가 있는 몇 년간 엄마와 나는 이 댁에 잠시 머물렀다. 빨갛고 자그마한 들장미가 야트막한 담장을 온통 휘감고 오르던 향기로운 집. 이 집을 생각하면 들장미와 함께 콩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엄마는 매일 아침 간밤에 불린 콩을 절구에 30분 이상 곱게 빻아 할머니께 드렸다. 물론 이 집에는 성능 좋은 믹서기가 있지만, 영양성분을 잃지 않기 위해 그랬다고 하는데, 사실 입자의 크기나 식감의 차이일 뿐 영양가의 차이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 싶다. 아, 물론 사 먹는 것과 손맛의 차이가 날 거 같기는 하다. 대가족이라 집안일을 돕는 분이 계셨지만, 이모할머니가 드시는 몇 가지 음식만큼은 엄마가 특별히 만들어 드렸다. 한마디로 음식을 비롯한 모든 취향이 존중되는 그런 집이었다.


하지만, 이 댁의 형편이 처음부터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 남편과 사별해야 했던 이모할머니는 자식들을 키워내는데 오랜 세월 고생을 하셨다. 할머니는 이 당시를 '사납게 일한 시절'이라고 회상하신다. 홀어머니의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자식들은 노력하였고 성공하였다. 영특했던 첫째 삼촌은 서울대를 수석 졸업하고 떡하니 삼성에 취직했고, 한동안 승승장구하며 정계에도 진출하셨다. 물론 그 끝은 그다지 좋지 못하여 말년에는 풍을 맞기도 하였지만. 둘째 삼촌은 강남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큰 레스토랑을 경영하였다. 삼촌의 레스토랑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던 TV 연속극에 단골 출연할 만큼 명성이 자자하였고, 잘 생긴 삼촌은 유명 연예인들과 호형호재 하였다.


당시 나는 7살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깰까 봐 불도 밝히지 않은 채 어스름한 새벽녘부터 소리 없이 움직이셨다. 세안을 마치고 무채색 한복을 입으시는 한편, 머리카락 한 올 나오지 않도록 은비녀로 단정한 쪽을 지셨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1년 12달 정갈하게 차려입으시고 아침 불경을 외우시던 할머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교훈 같았다. 할머니는 삼베 천 조각으로 누빈 고운 받침대며 비단 조각을 이어 붙인 다양한 장신구를 만들어 어린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나는 별거 아닌 할머니의 작품들이 너무 곱고 이뻐서 성인이 된 이후로도 한참 동안 간직하였었다. 밥상에서는 늘 옆에 앉히시고, 할머님 앞에 놓인 커다란 조기 살을 발라주셨던 인자한 분이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평상시 매사에 엄격했고 까다로우셨다. 아마도 까다로운 것은 본인의 가치 기준이 높기 때문일 것이고, 그래서 가족들 앞에서 웃거나 부드러운 말을 건네지도 않으셨다. 자식들, 특히나 첫째 며느리 앞에서는 미소조차 짓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아름답고 고상한 숙모에게 차갑게 대하시는 할머니를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숙모는 재벌가의 딸로 태어나 애지중지 키워졌고 삼촌과 같은 대학 피아노과를 다니던 중 캠퍼스 커플로 만났다고 한다. 남자 하나 보고 홀어머니 시댁에 시집온 며느리. 그녀는 할머니의 엄격한 기준을 맞추려 들지 않았고 매사에 부딪히며 다퉜다. 어린 내가 본 숙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고 여하간에 뭔가 꽤 다른 범주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천사 숙모와 다정한 할머니는 크고 작은 일들로 매일 다퉜다. 때로는 너무 끔찍하게 다투었고 그 뒤 며칠간은 온 집안이 전쟁을 치르고 난 뒤처럼 조용하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며느리를 대할 때의 모질고 차가운 할머니의 모습과 평상시 너그럽고 손큰 어른의 모습 중 어느 게 진짜인지. 또한 할머니에게 바락바락 대들며 거품을 물던 숙모가 천사가 맞는지. 하지만, 나는 이제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 역시도 기준이 높고 까다로운 여자가 되어가고 있으므로. 그 둘의 모습 중 어떤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하는 건 어렵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팥칼국수가 나오자 이모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휘휘 젓더니 국물이 너무 묽다고 소리 내어 불평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 국수를 먹었다. 이모의 불평과 다르게 국물은 적당히 되직했고 면도 쫄깃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팥칼국숫집이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먹지 않았는데도 더 들어가지 않아서 나는 젓가락을 내려놨다.

‘이모.’ 나는 마음속으로 이모를 불러보았다. 이모는 내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날 나는 이모의 얼굴에서 나의 모습을 봤다. 까다롭고 기준이 높은, 그래서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웃음에 인색한 얼굴을.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이모에게, 문학동네, 2023)



최은영 작가의 이모에게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게재된 단편 중 비교적 덜 주목되는 이야기였으나, 잔잔하게 파문을 일으킨 작품이었고 그 파장은 의외로 깊고 길게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 이모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존경했던 이모할머님의 성품과 취향을 느꼈다. 알고 보면 누구와도 다른, 확고한 자기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자라난 환경과 가난 앞에 목청을 높일 수 없는, 자주 억울하고 억제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 그런 자신을 대신해서 자식들만큼은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일치하였다.


까다롭고 기준이 높은, 그래서 매사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웃음에 인색한 얼굴을 가진 여자. 결국 이런 이모의 돌봄 아래 자란 희진은 성장하면서 이모가 자신에게 보였던 것들을 답습하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다정한 친인척과 함께 자란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사랑을 받는 법도, 사랑을 주는 것에도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반면 사랑이 있어도 냉정하고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부모나 주변 사람과 자란 아이들은 표현력도 약하고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두는 법을 먼저 배우기 마련이다. 이모는 냉정하고 단호한 사람이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는지, 살아온 환경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는 소설을 읽어가면서 조금 애매했다. 왜냐하면 이모가 많이 늙어서 정신이 혼미할 때는 아주 해맑은 아이 같은 웃음을 짓는 사람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이모는 친자식이 아닌 손자뻘 되는 희진을 사랑하고 돌봐주는 실질적인 돌봄의 주체이다. 그녀의 냉담하고도 살갑지 않은 태도와 달리 이모의 사랑은 조건이 없고 헌신적이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지만, 딸 벌인 동생이 아이를 양육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자 군말 없이 희진의 집으로 들어와 아이를 돌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물건도 아닌 동생 식구의 물건이 가득 찬 커다란 장롱이 놓인 작은방에서 몇 벌 안되는 옷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모. 그녀는 가부장적이고 욕심까지 겸비한 매제에게 그 작은방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아무 불평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것을 입 밖에 내어 불평하는 것을 자신의 품위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모에게는 조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기보다 불편해도 여자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기를,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남에게 함부로 대해지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다. 여자로서 자신은 원치 않는 삶을 살아왔기에, 조카만은 자신과 같은 인생이 아니기를 바라는 간절함,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희진이 힘들 때 직접 도와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는 걸 지켜보았다. 긴 시간이 걸렸고, 진심은 냉정하게 가려졌으나, 희진은 이모의 바람대로 성장하였다.


물론 같은 또래 여자아이다운 행복은 없었다. 스스로를 챙겨야 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내색하지 않고 참아야 했고, 무심하게 인내해야 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주변 친구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강했다. 저마다의 가치관이 다르므로 어떤 게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적으로 말랑말랑해서 주변을 잘 웃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한지, 아니면 냉담해 보여도 자기 자신을 지키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사회적 약자로 태어난 사람이 두 가지를 모두 갖기는 힘들다.


수많은 현실의 소시민들, 그리고 계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선택지가 좁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희진의 이모와 엄마, 희진을 통해 드러났다. 서로 간에 이해와 연대가 무엇보다 절실한 가족 구성이지만, 저마다의 입장과 구조적 병폐 때문에 감정을 서로 드러내기도 힘들었고 진심은 쉽게 가려졌다. 결국, 희진은 자신이 싫어하던 고집 센 이모의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서도 발견하게 될 시점에서야 이모를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맘껏 확인할 길 없는 세월을 보낸 이들의 여정이 슬프다기보다는 좀 쓸쓸하게 느껴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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