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리뷰와 에피소스
시대가 특별한 것 같지만, 우리는 늘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일상의 품위조차 위협받는 민초들이 가끔씩이라도 흥청망청할 수 있는 좋은 시절은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멋진 말이 참 진부하고 허투루 들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맘속에는 불평이 차오르고, 그 불평은 소설 속 캘리포니아의 포도와 오렌지처럼 잘 무르익어 분노로 표출된적이 불과 얼마전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시대를 버텨내는가? 한순간 짤막짤막하게 좋았던 추억이나 문학적으로 따뜻했던 기억이라는 것이 작동하는 한 사람들은 여전히 선한 힘의 진리를 신봉하고, 온정을 베풀며 서로를 조용히 위로한다. 마치 존 스타인벡의 소설 속 66번 국도의 햄버거 가게를 살려내려는 듯이 말이다.
소설 분노의 포도 초입, 대지주와 은행에 땅과 집을 모두 빼앗긴 수많은 오키들은 비루하기만 한 집기와 그 집기와 별다를 바 없이 남루한 행색의 가족들을 태워 풍요의 땅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66번 국도변 햄버거 가게로 들어온 아버지는 형편껏 10센트어치 빵을 사고자 했으나 여종업원 메이로부터 거절을 받는다. 아버지는 이 상황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비록 아이들과 함께였으나 당당했다.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낼 수 있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겠다는 것이니 당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급기야 메이의 온정 없는 태도에 화가 난 주방장이 아버지에게 빵을 팔라고 고함쳐 주었고, 탄력적으로 온정을 회복한 메이는 10센트어치 빵을 잘라준다.
한편 어린아이들의 시선이 사탕에 가서 머물자,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사탕 가격을 물어보았고, 메이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을 둘러대며 아이들에게 사탕까지 들려 보내게 된다. 이렇게 전염된 온정은 다시 트럭 기사들에게 기세 좋게 옮겨가고 가게의 손해를 지켜본 이들은 자신이 마신 커피와 파이 값보다 많은 돈을 남기고 가게를 뜬다.
독재자와 위정자들의 욕심과 거짓된 욕망으로 사회 질서가 망가지고 시스템이 무너졌을때, 어떤 이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추억과 문학적 힘으로 인간미를 되살려 연대하고 온정을 베풀 줄 안다. 이기적이기만 했던 사람들조차 이 온정의 릴레이에 이끌려 자신이 지금 이 시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체득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평온하고 안일한 일상을 살기도 한다. 우리가 우리 공동체 전체를 보지 않고, 무관심하게 될 때 찾아오는 형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되고 공동체 대다수의 삶이 피폐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66번 국도변 햄버거 가게의 온정이 열정적으로 피어났었다. 이 온정이 끊임없이 피어나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