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 하나는 거짓말』...삶은 불편한 진실이다

김애란 『이 중 하나는 거짓말』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자료 준비되셨을까요? 전상무님 비서입니다."


동그랗게 도드라진 쌍꺼풀, 적당히 오뚝하고 복스러운 콧날, 동그란 얼굴선에 살짝 토실한 몸매가 여비서 특유의 세련된 느낌보다는 귀엽다는 인상을 주는 여자. 오랜 비서 생활에서 다져진 온순하고 수동적인 분위기 때문일까? 환하게 웃는 미소가 오랜 사회 생활자의 연출된 웃음만은 아닌듯한데, 함박웃음으로 시작해서 겉웃음으로 끝나는 느낌이 살짝 허무했다.


회사 유니폼을 입은 여비서를 처음 본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 여비서 중에도 상고 졸업자가 있었구나.' 주임으로 첫 직급을 부여받는 신입사원들은 예외 없이 백 퍼센트 대졸자들이었고, 유니폼을 입은 문서수발 여사무원들은 상고 출신이었다. 상고 출신이라 해도 대부분 전교 1, 2등을 다투던 사람들로 많은 업무량을 군소리 없이 곧잘 소화해 내는 사람들이다. 회사에 들어와 바보가 돼가는 스카이 출신 대졸 사원들보다 영특했다. 자존감이 높았던 이들은 야간대학을 다니며 직장 일과 학업을 병행하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퇴사하고 대학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더러는 결혼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 차원에서는 나이 든 고졸 여사무원을 오래 묵혀 승진시키지 않아도 되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 것이다.


조금 친해진 뒤 순옥 씨가 밝힌 나이는 예상보다 많았던 30대 중반.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함께 일하시던 부장님이 상무이사가 되면서 비서로 발탁된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상무님의 정년퇴직이 1년도 남지 않아 순옥 씨는 거취가 불확실하다. 다른 대졸 비서들처럼 또박또박 승진 시험을 보고 직급이 오른 것도 아니고, 연봉만 조금 올랐을 뿐 다른 업무를 해본 적 없는 노령의 여비서로 남았다. 그날 이후 자료를 가지러 온 그녀는 잠깐씩 수다를 떨다 가곤 했다. 대개는 그녀가 말을 하였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치과 치료하러 갔다가 치료를 해 준 의사가 그녀에게 반해 지금까지 사귀는 중이며, 그와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네! 등의 그녀에겐 중요하고 나에겐 시시콜콜한 잡담이 주였다. 나는 그녀가 약간의 과장과 그 말을 강조하는 추임새를 반복하는 언어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K 성을 가진 유명 연예인에게 대시 받은 이야기도 했었는데, 이 부분은 지나치게 극적이어서 신뢰가 잘 가지 않았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며칠 내내 산적한 일거리와 보충 요구에 바빠 컴퓨터에 코를 박고 점심도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중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순옥 씨가 점심 약속이 있는지 묻는 전화를 걸어왔다. 바빠서 도시락으로 해결할 것이라 했고, 순옥 씨는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하고, 벚꽃이 너무 이쁘다며 코에 바람 좀 넣으라 재촉하였다. 고마웠다. 그녀가 좋아하는 일식집에서 가벼운 점심을 먹으며 일상의 근황을 나누던 중 순옥 씨가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였다. 끈질긴 스카우트 제안에 강남에 새로 생긴 대형병원으로 옮겼는데, 야간 진료까지 해서 그들은 요즘 통 데이트할 시간이 없다고 하였다.


나: “우리 동네병원은 6시 반까지만 하던데, 강남은 다른가 보네요.”

순옥: “강남, 압구정 대형 피부과는 거의 다 야간 진료까지 해. 자기, 피부과 거의 안 다니는구나?”

나: “남자친구가 치과의사분이라고? 피부과셨어요?”

순옥: “피부과 의사라고 했는데….”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나: “아, 그런가요. 내가 잘 못 알아들었나 봐요.

그나저나 전무님 정년 퇴임하시면 언니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부모님 댁으로 가실 거예요?”

순옥: “나, 끈 떨어진 신세지 뭐. 미국에 다시 들어갈까 봐. 부모님도 들어와 공부나 했으면 하고.”

나: “부모님께서 미국에 계세요??”

순옥: “응.”


그녀의 허언증이 한꺼번에 터지자, 내가 그녀의 말을 자주 흘려듣나 싶었던 의혹은 완전히 풀렸다. 그러나 나의 기분은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 중 절반은 거짓말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다 보니 마치 영화 속 '리플리 증후군' 주인공처럼 자신의 거짓말에 갇힌 것 같았다. 그녀는 부모님이 부산에서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을 그만둬도 크게 지장은 없지만, 자신은 서울에서 살고, 서울에서 시집도 갈 거라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쯤 거짓말을 하고, 그 작은 거짓말을 후회한다. 덕분에 반성할 수 있고, 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추해 보니 20살도 되기 전 취직한 첫 직장에서 그녀가 고졸 사원으로서 부딪쳤을 상대적 박탈감과 제자리걸음뿐인 사회적 입지, 불확실한 미래가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너무 약해서 그걸 남한테 들키기 싫어서 곧잘 거짓말을 지어내고는 한다. 남들이 날 좀 괜찮은 사람으로 봐 주었으면 해서. 순옥 씨도 그럴 것이다. 유니폼에 각인된 학력은 가릴 수 없지만, 위조해도 탈 날 염려가 없는 몇 가지는 화려하게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남들이 잘 봐주었으면 해서. 아니 내게 한 거짓말은 내가 잘 봐주었으면 하는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거짓말들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거짓말을 지어내지 않고도 좀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바랐고, 지금 그대로도 너무 보기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다. 마음과 달리 점점 더 그녀와의 대화가 힘들고 부담스러웠나 보다.


내가 엄마 돌보면서 자주 짜증 냈던 일이. 왜 하루는 엄마 식사 돕다가 내가 버럭 소리 지르고 나서 병실을 뛰쳐나간 적 있었잖아? 별거 아닌데 그날따라 엄마의 날 선 말과 핀잔이 많이 서운하더라고. 애들이랑 어디 놀러도 못 가고 맨날 병원에만 있으니 숨이 막혔고. 하지만 그러고 십 분도 되지 않아서 나는 엄마에게 돌아갔지. 엄마를 굶길 순 없으니까. 끼니를 챙겨야 약도 먹일 수 있으니까. 얼룩진 얼굴을 정돈하고 병실로 돌아갔는데 엄마가 내가 운 걸 아는 거 같더라. 그리도 아무렇지 않은 척 손에 콧줄을 드는데 그때 엄마 표정이 잊히지 않아. 내 손길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아닌 텅 빈 얼굴이었어. 이전만큼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게 된 얼굴. 얼핏 보면 삶을 다 이해한 것 같고 또 다르게 보면 이해를 멈춘 얼굴 같았어.

......

지금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때 나, 내 눈에 엄마가 선명하게 보여야만 그날 하루를 안도하면서 시작할 수 있었거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래서 매일 아침에 눈에 엄마가 또렷하게 보이길 기도했어.

소리의 목소리가 어느새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 엄마, 나 엄마가 흐릿하게 보이기를 원한 적이 있었어.

(김애란, 『이 중 하나는 거짓말』, 문학동네, 2024)


전학생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 다섯 가지를 펼쳐놓는다. 그중 한 개는 반드시 거짓 정보가 들어있어야 한다. 짓궂은 농담처럼 시작된 자기소개 시간. 선생님은 이 순간을 즐기는 걸까? 아니면 뻣뻣하게 풀칠한 듯 긴장한 전학생과 낯선 존재 앞에 호전적일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함일까? 당황스럽게 시작된 자기소개 게임이 의도와는 다르게 전학생을 긴장시키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이 진실게임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해 나간다. 소설 초반에는 그저 약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다 읽고 보니 의외로 아이들은 약하지 않았고, 꼭 가족의 보살핌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른의 도움이 없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서로를 인식하고 기대는 이야기도 괜찮기는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상처 속에서 성장할 것이고 그 끝이 어떨지 모르기에 소설의 열린 결말이 위태롭기만 했다.


상처 하나, 소리

친구들은 이상한 아이라 여기지만, 소리는 사람들에게 손대는 것이 두렵다. 손으로 죽음을 보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소리는 사람들과 불필요한 접촉을 막고 싶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뭔가 붙들고 있으면 사람들과 손을 잡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픈 엄마는 소리의 가장 큰 위크 포인트다. 가족 간에도 꼭 매번 잘할 필요는 없는데, 그러기에는 엄마가 너무 아프고 약하다. 투정을 부려도 좋을 나이에 병 간호를 하던 아이는 어느 한순간 엄마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이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이건 인간적인 약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다. 반면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은 너무 힘들어서 뛰쳐나가거나 이런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불온한 생각과 마음이라고 자신을 자책한다. 그리고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 엄마는 진짜 죽어버렸다. 엄마의 부재는 그대로 아이에게 멍울이 되어버렸다.



상처 둘, 지우

아빠와 이혼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뇌암 판정까지 받은 엄마는 친구들과 놀러 간 동해에서 실수로 죽었다. 막대한 보험료를 타게 됐으나 지우는 그 죽음이 실족사라기보다는 자살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자기 탓이라 자책한다. 남보다 못한 아빠와는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상태이고 엄마와 사실혼 관계였던 선호 아저씨에게는 아직 마음을 열지 못했다. 지우는 애완 파충류 용식을 키우고 그림을 그리며 외로움과 자책, 상실감을 간신히 버텨낸다. 용식의 죽음이 선호 아저씨를 지우에게 인도하고 그간 자신의 마음을 지우에게 밝힌 적 없던 그는 이 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을 하며 지우에게 위로를 건넌다. 아직은 미성숙한 어른이라 마음과 달리 무뚝뚝하고 말재주가 없던 그가 선호에게 첫 어른이 되어보는 순간이다.



상처 셋, 채운

채운은 사회적으로 가장 큰 거짓말을 짊어지고 사는 아이다. 폭력적인 아빠를 막다가 실수로 칼로 찌르게 되고, 그는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의식불명이다. 엄마는 자신의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복역 중으로 지우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간간이 발설하면 죽어버리겠다는 말로 지우의 입을 봉한다. 채운은 누군가 올린 온라인 소설을 보던 중 그 작가가 지우임을 알게 되고, 지우가 자신의 비밀을 목격하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하다. 죽지는 않았으나 채운 역시 엄마를 잃었다. 그리고 거짓으로 자백한 엄마 때문에 자책한다.



상처받은 아이들

세 아이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엄마를 잃었고, 자신의 잘못이라 자책한다. 하지만, 곁에서 그게 아니라고 말해줄 어른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시간을 버텨낸다. 소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 펜을 꼭 쥐고 그림을 그리면서, 지우는 애완 도마뱀 용식을 끝까지 함께할 가족으로 생각하고, 채은 역시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도 뭉치를 놓지 못한다. 이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셀프 위로'를 건네는 중이다. 곁에서 외로움을 달래줄 어른이 없으므로.


소리와 지우는 그림으로 가까워지자, 진짜 사연은 말하지 않고 애완 파충류인 용식을 부탁한다. 소리는 처음으로 엄마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 적이 있다고 지우에게 털어놓는다. 목 끝까지 꼭꼭 차오른 '차마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비밀'을 고백하는 순간이다. 채운은 반려견 뭉치의 죽음을 미리 본 소리에게 아빠의 죽음을 봐달라고 부탁한다. 사실은 말할 수 없다. 채운은 아빠가 깨어날까 봐 걱정이고, 소리는 사실을 말할 수 없어 아빠가 깨어나실 거라고 거짓말한다.


"그해 우리 셋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했고 처음으로 가까워졌다.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 상처로 인해 거짓말을 했고, 이제는 말하기 힘든 비밀이 되어버린 이야기들 간직한 아이들. 이들은 은연중에 그 거짓말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순간순간 연민과 의심을 번복하면서 의지하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가거나 잊혀질까? 지우는, 소리는, 채원은 또 선호 아저씨와 주변 인물들은 삶이 주는 상처와 고통의 무게를 어떻게 잘 헤쳐나갈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 그래서 하다못해 다섯 중 하나의 거짓말을 해서라도 고통의 무게에 깔려버리지 않기를, 가중될 고통의 무게를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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