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소설 급류 리뷰입니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정대건, 『급류』, 민음사, 2023)
아이들은 부정하고 싶은 현장을 숨죽이며 목격했고, 자신들의 불륜현장이 노출된걸 깨달은 부모는 그만 급류에 휩싸이고 만다. 한순간의 실수로 부모의 죽음을 만들어 버린 아이들은 엄청난 충격과 고통스런 자책을 경험한다. 결국 어린 연인은 기억 저편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과 고군분투하다 서로를 잃어버리고 만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사랑보다는 미안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공간을 감당못한 이들은 시시때때로 놀라 멈춰 서거나 다시 한번 급류에 휩쓸리는 고통스러운 결별을 반복한다. 정대건 작가의 『급류』는 사랑을 부정하게 만드는 상황과 감당할 수 없는 결별의 상처, 그럼에도 서로를 원하는 무한 갈증에 목말랐던 한 연인의 이야기이다.
이름이 다를 뿐 우리땅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소도시 진평. 관광객에게는 아름다운 강에서 서핑을 즐길수 있는 매혹적인 공간이지만, 진평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시시때때로 강이 범람하는 무서운 공간이고 매해 규칙적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다. 이 고립되고 내재된 결함을 갖고 있는 작은 소도시 진평에서 유일한 우상이었던 소방관 아빠, 다정한 엄마와 함께 그런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도담에게 진평은 시시때때로 따분한 곳이다. 그런 도담에게 해사한 모습으로 등장한 해솔의 존재는 지루한 장마 뒤 무지개였다.
도담과 해솔은 한눈에 반해 좋은 친구가 되고,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양쪽 부모의 불륜 앞에 이들의 사랑은 타인에게는 금기시되고, 자신들에게는 낙인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상처가 너무 깊고 클 때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상처는 수시로 자신을 갉아먹는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어렵고 힘들어지면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자기방어본능으로 자해를 하기도 한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자해하는 것조차 용납하기 싫을 때는 자진해서 위험이 가득한 화염 속으로 뛰어든다. 자칫 이타적으로 보이는 해솔의 인명구조 활동 역시도 도담의 자해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향한 본능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조차 허용을 한 수 없기에 해솔은 도담이 자해를 하듯 화마속을 걸어들어간 것이다.
농담처럼 급류를 이야기한 도담과 해솔은 실제로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급류에 몇 번인가 휩쓸리고 만다. 처음 급류에 휩쓸렸을 때는 수면 위로 올라오고자 발버둥을 치다 서로를 벗어났고, 두 번째 급류에 휩쓸리자 차라리 침잠을 선택하며 서로를 잊기로 했다. 하지만, 마지막 급류에 휩쓸렸을 때는 바닥 밑까지 완전히 침잠했다가 서로를 건져올리며 올라오게 된다. 도담이 해솔에게 이야기했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을 제대로 실천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있다. 내 의지로는 죽어도 바꿀 수 없는 급류 같은 거.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멈추거나 도망칠 수 없는 급류에 수없이 휩쓸리며 살아간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무력감을 불러온다. 과거는 영원히 바꿀 수도 지울 수도 없기에 그 과거는 수시로 현재의 삶을 농락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야 할 일들은 충분히 시간을 흘러 보내야 하고, 끝없는 침잠, 폭풍 같은 분노와 수용을 번복하면서 기가 허할 만큼 비워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무섭고 외롭지만, 결국 그 길을 찾아내는 것 역시나 급류 속의 인간이다. 지금 누군가 헤쳐 나오기 힘든 급류 속에 있다면 수면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지 말고 밑바닥까지 완전히 잠수해보는 경지를 경험해봐야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빠져나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