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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미술쌤 옐로 Oct 05. 2021

글을 그리면서 그림을 쓴다

06. 여백의 의미는 채움과 비움의 사이


종종 ‘빨리’라는 단어가 그림 잘 그리는 것과 무척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들릴 때가 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배울 때 나 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생각을 가질 때가 많다.

“어쩜 이렇게 빨리 그리세요.”

“잘 그리니까 빨리 그리나 봐요.”

“빨리 그리고 싶은데 안 돼요.”

“스케치 없이 슥슥슥 빨리 그릴 수 있는 그런 그림들 있잖아요.”

그런 그림은 없다. 빨리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면 여러 번 그려 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쉬워 보이는데 처음 그려보는 그림과 어려워 보이는데 많이 그려본 그림 중에 무엇이 더 어렵냐고 묻는다면, 쉬워 보이지만 처음 그려보는 그림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안 그려본 그림이 제일 어려웠다. 처음인데 잘 그린다면 익숙한 대상일 확률이 높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백을 빨리 채우는 것에만 급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으로 간단한 일상 이야기를 그려서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에피소드와 나의 에피소드를 그림일기 웹툰 형식으로 보여주는 콘셉트이었고, 제목은 일상을 그리는 산발쌤이었다. 아이들 에너지를 따라가려면 정신이 없어서 산발이 되기 일쑤라서 지었다. 처음 시작은 꾸준히 연재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큰 꿈을 꾸었다. 아이들과 있으면 엉뚱하고 기막힌 소재가 무궁무진하니 소재가 막힐 리도 없었고, 라인 드로잉으로 표현하면 채색에 대한 부담감도 덜고, 컴퓨터 작업이다 보니 복사 붙이기 등 기능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 세상 쉬울 것으로 여겼다. 게다가 인기 있어서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라는 김칫국까지 마셨다. 어쨌든 뭔가 시작할 때의 상상은 자유라지만, 그 상상은 첫날 시작과 동시에 무너졌다. 온종일 컴퓨터랑 씨름하느라 녹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거야. 빨리 안 되네.’     



만약 재밌다고 해줬던 이웃분이 없었으면 첫날이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다. 카톡 채팅방으로 산발쌤 이야기를 공유해 읽어보라며 추천까지 해주니 찌들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더 잘해봐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그렇게 몇 편을 더 만들었지만, 한계는 7편까지였다.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건 똑같은데 마음은 완전히 달랐다.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니라 더 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이웃 블로그님들의 매일 업로드되는 웹툰을 감상하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잘 그리니까 매일 그리는 것 같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많이 그렸을까 하는 진실을 놓치고 있었다. 여백을 채워 업로드할 생각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나는 그분들처럼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컴퓨터 작업을 하지 않았고, 귀여운 2등신 그림을 자주 그려본 적도 없다. 마우스보다는 붓이 편했고, 세밀한 인물 표현이 오히려 익숙했다. 2등신 몸, 동그란 얼굴에 눈코 입만으로 특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런데도 빨리할 생각만 가졌던 것이다. 피카소가 아이들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것처럼 어떤 그림도 내 것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많은 투자를 해야 쉽다고 느낄 뿐이다. 수업 시간에 쉽고 재밌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계획안을 짤 때도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구상한다. 진짜 쉽고 재밌게 하길 바라는 마음이 전달되기라도 한 듯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그렇게 이야기해 주는 경우가 많다. 노하우를 집어주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막상 혼자 부딪히면 다시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연히 여러 이유를 따져 보다가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데 심적으로 많이 가라앉아 버린다. 만약 그런 느낌이 들게 되면 고려해 봐야 할 것이 있다. 혹시 ‘빨리’라는 성급함에 빠지지 않았나 하는 것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빈 여백을 채우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것도 인생의 남은 여백을 채우는 과정이라 여긴다. 여백의 의미를 비워진 것에 두기보다는 채움과 비움의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크게 채우고 누군가는 작게 채운다. 누군가는 꼼꼼히 채우고 누군가는 러프하게 채우기도 한다. 채움의 방식에 따라 비움이 달라진다. 항상 여유를 가지고 채움과 비움의 사이를 돌아봐야 좋은 그림이 나오고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빨리’에 빠지면 채움과 비움, 그 사이가 적절한지 살펴볼 겨를이 없어져 버린다. 빨리와 안 된다가 짝꿍이 되어 못 하겠다고 하라고 속삭인다. 그럴 때마다 빨리 안 되는 것은 속도를 의미하지 하기 싫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일상을 그리는 산발쌤 이야기가 7편에서 더 진행되지 않았지만, 완전히 끝낸 것은 아니다. 여유를 갖고 많이 채워볼 생각이다. 자주 경험해 보겠다는 것이다. 내 여백에 산발쌤 자리가 여전히 있다. 다만, 여유를 가지니 급할 게 없다. 언제든 채워 나가면 된다. 에피소드만 적어 놓은 글도 있고, 손으로 스케치해둔 것도 있다. 이런 스타일의 그림도 좋다는 분들을 위해서 산발쌤만큼은 꼭 디지털 드로잉으로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 남겨두었다.    


  

다른 모양과 다른 색깔의 여백 중에서도 훌륭하게 보이는 여백들이 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빨리’가 아니라 ‘많이’ 채워봤기에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가 아닐까. 채우고 비우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노력했던 대가들의 작품 중에선, 여백이 텅 비어 있어도 꽉 찬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 그림 앞에서 빨리 그렸네 하지 않는다. 점 하나만 찍혀 있어도 어떤 의미로 채웠는지 알고 싶어 할 뿐이다. 그림을 그리며 채움과 비움의 조화를 만들어 가듯 우리의 인생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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