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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미술쌤 옐로 Nov 05. 2021

글을 그리면서 그림을 쓴다

10. 노란 꽃과 유튜브 동영상


평소 보지 못했던 물건이 보인다. 투명 케이스에 넣어진 면봉이 팔레트와 물통 사이에 놓여있다. 어디에 사용하려고 가져왔는지 물어본다는 게 깜빡했다가 작품 구경하면서 알게 되었다. 작품은 노란 꽃이 가득 핀 들판을 가로질러 흙길이 나 있고, 멀리 작은 집이 보인다. 오른편에는 우뚝 솟은 전봇대가 있는데, 덩굴식물이 전봇대를 돌돌 감아 위로 올라가고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다. 흙길 왼편에 핀 노란 꽃이 빛을 받아 오른편보다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된 붓 터치 덕분이었다. 이 노란 꽃 표현을 위해 유튜브 동영상 수업을 찾아 시청했다고 한다. 동영상 중에서 면봉이나 이쑤시개에 물감을 묻혀 콕콕 찍는 것을 발견했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시도하면 꽃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면봉을 준비해 온 것이다.

“노란 꽃을 잘 표현해 보려고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그분의 차분한 목소리에 진중함이 묻어났다.   


  

반이 바뀌면서 이주 연속 새로 오신 분 위주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아무 불평 없이 고민되는 부분을 해결해 보기 위해 노력한 걸 생각하니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자세히 살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자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좋아서 찾아보고, 좋아서 배우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다며,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이 긍정 에너지는 내게 바로 전달되었다. 같은 상황이 찾아왔을 때 좀 더 잘 대처하고 싶은 마음으로 노란 꽃을 바라보았다. 이분은 면봉이 필요 없다. 붓 터치만으로 꽃봉오리 표현이 충분할 만큼 스킬이 좋으신 분이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작품을 완성했기에 면봉은 꺼내지도 않았다. 아마 면봉으로 콕콕 찍었으면 부드러운 느낌이 지금처럼 표현되지 않고 꽃봉오리가 도드라져 보였을 거다. 수강생분들의 그림 스타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는 바로 나일 것이다.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도 다르고, 설명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남는 것만 남게 된다. 유튜브 동영상이 떠올랐다.

‘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두면, 필요한 부분을 찾아보거나 설명을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으니 도움이 될 텐데......’     



최근에 유튜브 동영상 제작 강의를 듣고 있긴 했다. 2년 전 원데이 클래스로 영상제작 과정을 배운 적 있었는데, 개인적인 작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필요해서 배운 게 아니라 유튜브, 유튜버 하니 궁금해서 참여했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핸드폰을 조금만 오래 봐도 쉽게 피로해지는 눈 때문에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는 편도 아니고, 검색은 습관적으로 초록 검색창만 이용한다. 유튜브가 생활에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진 않았지만 약속한 게 있어서 시간이 되면 다시 할 거라는 다짐은 하고 있었다.    


  

유튜버가 꿈인 아이들이 개인 채널을 보내왔다. 자신이 올린 동영상을 시청한 후에 좋아요와 구독을 꼭 누르라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구독 좋아요 부탁해요.”

“구독 좋아요 꾹 할게.”

귀엽게도 내 영상에도 좋아요와 구독을 누를 테니 보여 달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다.

없어서 유감이었다. 대신 나중에 보여주겠다고 수업하는 아이들과 약속했다.

“얼른 찍어서 올리셔야 해요.”

“그래, 제일 먼저 보내줄게.”     



조카와 차를 타고 가다 유튜브 동영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떤 동영상을 만들고 싶다며 한참을 설명했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어떤 동영상인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칭찬에다 약속까지 했었다.

“와, 기발한데. 편집해서 올리면 인기 폭발일 것 같다. 당장 만들어 봐.”

“고모, 저는 만들 줄 몰라요.”

“그럼 엄마나 아빠한테 부탁해 보는 건 어때?”

엄마 아빠가 안 되는 여러 이유를 조용히 말하는 아이에게 나라도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모한테 보내. 내가 다 해줄게.”

“진짜요?”

“고모 그런 거 잘해.” 해 본 적도 없으면서 큰소리쳤었다.     



이리저리 약속한 게 많아서인지 동영상 편집이 숙제처럼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서 동영상 제작 강좌가 개설된다는 광고를 접하게 되어 바로 신청하게 되었다. 열심히 해서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강의가 있던 첫날은 인기 있는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먹방, ASMR, 취미나 요리 강좌 등을 시청하면서 강사로부터 자신이 제작하고 싶은 영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상?’

어떤 영상을 제작하고 싶은지 고민해 보지 않았던 걸 알았다. 무작정 편집하고 업로드할 생각만 했다. 다른 분들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상을 소개하는 내용을 경청하며 머릿속으로 계속 궁리했다.

‘뭘 만들지? 뭘 만들면 좋을까?’    


  

첫 강의가 끝나고 두 번째 세 번째 강의를 들으면서 편집하는 방법만 제대로 알아두자는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 여전히 무엇을 만들지 구체적인 방향이 서지 않았다.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해서인지 크게 재밌지가 않았다. 어려운 것도 없었고, 부담되는 것도 없었고, 바쁜 것도 없었는데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랬던 한 달간의 마음이 노란 꽃을 보니 사라지는 것이다. 노란 꽃이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다. 노란 꽃을 예쁘게 그리는 동영상을 올리고 싶었다. 기쁜 마음으로 동영상을 시청할 분들을 상상하니 긍정 에너지가 샘솟았다.    


  

그날 퇴근하자마자 삼각대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하루 만에 배송이 이루어졌다. 포장을 뜯고 설명서를 잠시 훑어본 후, 얼른 삼각대를 세워 핸드폰을 거치해 보았다. 몸체에 작은 리모컨이 부착된 제품이라 블루투스를 연결하니 핸드폰을 누르지 않아도 손쉽게 촬영할 수 있었다. 마음에 쏙 들어 귀찮아하던 상품 후기까지 남겨 보았다. 모든 게 순조로운 느낌이 들자,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그분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좋아서 찾아보고, 좋아서 배우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동영상을 제작하는 것도 좋고, 뭐 하나 신경 거스를 일 하나 없는 긍정적인 상태 말이다. 이런 긍정 에너지가 늘 좋은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 같다. 노란 꽃 그리는 과정을 찍어 정성껏 편집해 유튜브 동영상 제작 강사님께 보여야겠다.

“그림 그리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어 노란 꽃을 잘 표현해 보는 동영상을 만들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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