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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Aug 18. 2022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1

알베르 카뮈, <페스트>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에 나오는 이 글귀는 <페스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한다. 소설 속에서 의사 리유는 ‘영생의 기쁨이 순간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준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영생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은 세월 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이다. 그러나 패배의 운명 앞에서 우리는 반항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인간은 반항할 때 실재하기에.


1. 페스트와 오랑 시
 페스트는 계급적 불평등을 가장 먼저 부각했다. 페스트에 가장 먼저 당한 사람들은 오랑 시의 외곽지역에 사는 빈민층이었다. 이내 페스트는 무서운 속도로 오랑 시민들을 차례차례 감염시켰다. 페스트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병원 수위 미셸부터 오통 판사의 아들 필리프까지 모두가 페스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기하급수적으로 전파되는 페스트에 오랑 시는 결국 폐쇄되었다. 오랑 시민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삶이 공동체의 굴레 안에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가 폐쇄되며 생활 방식, 사랑하는 이와 갖는 시간, 죽음에 이르는 과정 등 당연하게 여겼던 상들이 당연하지 않게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페스트는 몇몇 사람들의 의무로 변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본연의 실체, 즉 모든 사람의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177쪽)

 삶 전면에 나타난 페스트의 위협에 오랑 시민들이 보인 반응은 다양했다. 일부 시민은 폐쇄 조치에 반발해 폭동을 일으켰다. 코타르 같은 이들은 페스트로 인한 카오스 상태를 틈타 부를 축적했다. 물론 염병에 따른 아노미 상태를 일탈로 대하는 사람들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파늘루 신부는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의탁해 이 상황을 견뎌 나가려는 초월적 삶을 지향했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페스트 사태에서 영웅이 되기보다 감정적 면모를 보였다. 사랑하는 이와 재회하고자 오랑 시를 탈출하려 애를 다. 한편 리유는 의사로 일하고, 타루와 그랑은 민간 보건대로 활동하며 이성적으로 사태에 접근하려 다. 질병을 관리하고 감염자를 치료하며 페스트의 운명에 맞서 반항의 삶을 살았다.


 결국, 페스트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떠나, 이들 모두는 연대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다 함께 페스트에 맞서 싸웠다. 이들이 영웅이 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성실하게 발휘해낸 것뿐이었다. 연대를 통한 인간 본연의 휴머니즘에 대한 지향은 카뮈 소설에서 가장 강조된 가치였다.

‘인간이 언제나 욕구를 느끼며, 가끔씩은 손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390-391쪽)


2. 페스트와 코로나바이러스
 논의의 무대를 확장해본다면, 카뮈의 <페스트>는 오늘날 코로나 사태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의 양상은 오랑 시 페스트 사태와 굉장히 유사하다. 각국 사망자와 감염자의 상당수가 유색인종, 저소득층, 고령자, 외국인 노동자 등 취약 계층에 쏠려있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전염병은 21세기 양극화와 소외계층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취약 계층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는 동안 부유층은 바다 위 호화 요트, 최첨단 지하 벙커, 외딴섬 등에서 안락한 방역 생활을 즐겼다. 그들이라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질병에 대응하는 역량에서부터 계급적 차이가 드러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코로나바이러스는 팬데믹(Pandemic)에 이르렀고, 많은 도시가 오랑 시처럼 폐쇄되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변해버린 사회가 도래했다. 모든 일상은 비대면과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언택트(Untact) 사회가 시작됐다. 펜데믹이 촉발한 갑작스러운 생활양식 전반의 변화는 사람들을 당황케 했고, 그들이 맺고 있던 다양한 관계로부터 고립시켜 고독의 시간을 갖게 했다.

‘과거로 돌아가고만 싶은, 혹은 그 반대로 시간의 흐름을 재촉하고만 싶은 구체적 감정, 어이없는 요구, 저 불타는 화살과도 같은 기억, 그것이 바로 귀양살이의 감정이었다.’(98쪽)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사람들의 대응은 제각각이었다. 일부는 코로나로 인한 아노미 상태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했다. 누군가는 도시 봉쇄령과 외출 금지령, 코로나 환자 동선 공개 등의 정책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항의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의료진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바이러스에 저항하며 방역망을 촘촘히 세웠다. 물론 21세기 초연결 사회에서 어느 한 사람만 방역 지침을 지킨다고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정부, 의료진, 시민 세 주체가 모두 연대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다. <페스트> 속 인물들(리유, 타루, 그랑, 랑베르, 파늘루)이 휴머니즘을 기치로 페스트에 맞서 싸운 모습은 현실 속에서도 필요했다.


*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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