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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Aug 18. 2022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2

알베르 카뮈, <페스트>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에 나오는 이 글귀는 <페스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한다. 소설 속에서 의사 리유는 ‘영생의 기쁨이 순간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준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영생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은 세월 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이다. 그러나 패배의 운명 앞에서 우리는 반항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인간은 반항할 때 실재하기에.


3. 페스트와 알레고리
 카뮈가 말하고자 했던 게 단순히 페스트라는 질병에만 국한되어 있을지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페스트가 의미하는 것이 사전적 정의의 병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소설 곳곳에서 띄기 때문이다. 소설 속 오랑 시에서 페스트는 1940년대에 발병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실제로 카뮈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서 전사했고, 카뮈 자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을 비판하는 저술 활동을 다. 이처럼 그의 생애가 세계대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페스트가 갖고 있는 전쟁 알레고리에 대한 추론은 신빙성 있게 다가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국들은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폭력을 정당화했고,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연합국과 추축국 모두 세계대전 당시 자행한 학살의 사례가 많이 보고되었다. 그중에서도 추축국이 자기네의 우월성을 앞세워 다른 민족에게 가한 무조건적인 혐오와 차별은 전염병보다도 더 무서운 끔찍한 행위였다.


 세계대전 당시 양산된 수많은 혐오를 질병의 은유로 본다면, 페스트는 더 이상 전염병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페스트는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폭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그것을 비판하는 매개물이 된다. 특히 공동체 속의 개인을 철저히 수단적 존재로 보는 전체주의에 입각해 전쟁을 벌인 독일의 나치 정권,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 일본의 군국주의 정권을 비판한다. 그들은 공동체 내부의 단결을 도모하고자 외부의 희악의적으로 발생시켰다. 독일군의 유대인 학살,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 등은 악명 높은 사례이다.

4. 다시, 여기 지금
 다시, 지금 펜데믹 사태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협하는 전염병에 맞서 싸워야 다. 전염병을 우리에게 주어진 패배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바이러스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어두워 보여도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깊이 살펴본다면, 코로나바이러스(혹은 페스트)는 어쩌면 우리네 마음속에 있는지 모른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내재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총칭한다.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그 자체로 질병이다. 그것은 1940년대 세계대전 때는 전체주의라는 탈을 쓰고 발병했고, 오늘날 펜데믹 시기에는 다른 형태의 가면을 쓴 채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코로나 사태로 인한 미국인들의 우울감이 인종차별 문제와 결합해 시위가 촉발되고 심지어 폭동으로 번진 것을 전 세계가 지켜보았다. 이는 인종차별이라는 가면을 쓰고 바이러스가 발병한 사례이다.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는 우리 스스로를 좀먹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죽이는 살인 병기로 기능한다. 우리는 이러한 바이러스에 맞서 싸워야 한다.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의지와 긴장을 가지고 반항해야 한다. 바이러스에 걸리는 것보다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게 훨씬 힘든 일이다. 카뮈는 소설 속에서 이방인 타루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329쪽)

 물론 그 바이러스는 항구적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언제든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생의 매 순간이 각종 패배로 물들게 방관하는 염세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가 연대하여 휴머니즘을 목표로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고, 세상의 바이러스에 단호히 저항하고 반항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실재하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401-402쪽)

 우리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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