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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im Oct 09. 2022

누군가의 하루가 갖는 깊이

김금희 《조중균의 세계》,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공동체에 대해 좀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게 된다. 김금희의 《조중균의 세계》,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개인의 일상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까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조중균과 '나'의 하루


 《조중균의 세계》의 조중균 씨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나’는 각각 출판사와 폐지처리장의 말단 직원이다. 이들은 급속하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현대 사회는 속도의 세계이다. 상실과 파괴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잔인한 세계로 다가온다. 그에 맞서 조중균 씨는 자신만의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지난한 출판 교정작업으로 문장을 다듬고, ‘나’는 폐지 더미에서 끈질기게 책이라는 근사한 리큐어를 찾아 문장을 품는다. 물론 속도의 세계는 효율성 제고라는 명목으로 해고 처분을 통해 그들을 가차 없이 몰아내고, 마침내 그들이 설 자리를 없애 버린다.

 그러나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속도의 세계 속에 남아있는 이들이 쉽게 무시하지 못할 가치가 머물러 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출판사 사무실에서의 조중균 씨, 어두컴컴한 폐지처리장에서의 ‘나’는 그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지하실을 의식한다. 태양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퀴퀴한 지하실. 고독의 시간 끝에 마침내 자유의지를 찾게 되는 방. 이윤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속도를 마구 높이는 세계 속에서, 두 사람은 그것에 반대되는 가치를 꿈꾸는 인간의 비합리적 면모를 발견한다. 그렇게 그들은 마음속에 있는 지하실을 개방할 것을 속도의 세계 사람들에게 주문한다. 자신의 고독한 지하실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아프도록 자유를 누리며 타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문학의 하루


 문학은 누군가의 하루를 펼쳐놓은 장이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숙주가 되는 과정이다. 작가가 생산한 바이러스가 읽는다는 의식에 기생체로 밀려 들어온다. 의식 내부에서 바이러스의 영토화가 발생하고, 새로운 기호의 배치가 생산된다. 쓴다는 것은 의식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변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체험하게 되고, 누군가의 고통과 결핍을 알 수 있게 된다. 타인의 고유한 고통과 결핍을 알게 되면 애틋함이 생기고, 그 애틋함은 결국 스스로를 보듬는 도구가 된다.


 문학의 언어는 예민한 조건에서 활성화되는 바이러스와 같다. 온도와 습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문학의 언어는 활동을 멈추고 무기물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만큼 문학의 문은 쉽게 닫힌다. 문학이 일깨우는 가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예민함을 유지해야 한다. 예민함은 자신만의 깊은 사유에서 비롯되고, 깊은 사유는 문학을 읽고 쓰는 고독한 과정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자유롭지만 동시에 고립되어 있고, 고립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의 고독을 느끼는 순간, 그대가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가 펼쳐질 테니.


‘조중균 씨는 문장을 끝까지 적었고 마지막 순간에도 이름은 적지 않았다.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한, 그것이 바로 조중균 씨의 세계였다.’ 《조중균의 세계》 中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중략)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中


ps. 도스토옙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같이 보면 이 글이 더 잘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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