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회사가 이사 가기로 한 것은 이미 1년 전 일이다. 올해 여름이 되면서 체감이 되기 시작했다.
서울 마포에서 같은 서울이라지만 송파 문정동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더욱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엄마라면 그 거리감은 더욱 멀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아내는 멀어진 회사 때문에 퇴사까지도 고민했지만 그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길 위에서 발을 동동 거릴 주연이가 아른거렸다. '엄마는?'을 백번 물어볼 세인이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한여름의 무더위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네이버 부동산은 참으로 편했다. 클릭 몇 번과 마우스 만으로 서울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동네별로 어느 위치에 내가 살아볼 수 있을지, 시세는 어느 정도 하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 일에서 이억 정도 대출받으면 30평대 아파트 전세가 가능했다. 멍청하게도 이때까지는 검색이 쉬워서인지 이사도 쉬울 줄로만 알았다. 몇 번의 검색으로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고 직접 동네로 찾아 나섰다. 먼저 문정동 법조단지의 대로 건너편에 있는 푸르지오 1,2차를 목표로 삼았다. 전세 8억 원 정도로 30평대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내 회사 바로 길 건너편에 위치한 올림픽훼미리타운과 장지동 가장 아래에 위치한 파인타운의 몇 곳을 둘러봤다. 이 정도라면 아내가 걷거나 마을버스 한두 정거장 거리에서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차렸다. 다른 일로 들린 은행에서 들른 김에 대출상담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은행의 상담과 대출 중계업체와의 몇 번의 통화로 상황 파악이 됐다. 나는 대출 조건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포에서 신혼초부터 자가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을 낳기 전에 가족의 보금자리가 될 아파트를 장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파트는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뉴스에 언급되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마용성, 역세권, 한강변 이런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는 투기 자산이 되어 있었고 9억 원 이상 주택 소유자는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10억 이 넘는 서울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 한구석을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의 생활이 여유롭고 풍족할 일은 아니었다. 팔아야 내 돈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팔아도 갈 곳도 별로 없었다. 주변의 아파트 시세가 우리 아파트 정수리 이상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투기 지역에 사는 집주인으로 정의하고 새로운 투자를 막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은 나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있었다. 답답했다. 이사를 못 가는 건가? 그러면 우리 주연이는 편도 1시간 30분이 넘는 출근과 퇴근을 매일 반복해야 하는데, 주연이도 정말 힘들겠지만 아들을 돌보는 일도 나의 몫이 될 텐데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역시 결자해지라 했다. 의도치 않게 똑똑한 말을 내뱉곤 하는 주연이는 이번에도 홈런을 날렸다.
"그럼 월세로 가야겠네"
이 말 한마디가 이 글의 주제가 됐고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월세 생각을 못해본 내가 참으로 우둔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 시절 4년 정도 월 16만 원의 반전세를 경험하고 1년 남짓 전세 그리고 내내 내 집에서만 살아온 40대의 굳은 머리에서는 월세는 꿈에도 나오기 힘든 낱말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전세금을 위해 대출을 생각까지 했었는데 그 대출이자와 원금을 낼 정도 돈이면 월세는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 집을 전세로 내놓으면 보증금은 충분히 넉넉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려던 찰나 또다시 머리를 쿵하고 때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목돈'이었다. 매달을 월급을 기준으로 정량적이고 정률적으로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목돈은 평소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을 줄인 결과물이면서 투자라고 말하는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진일보하는 행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밑천 즉 시드머니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라고 투자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예 안 한 것도 아니다. 예전에 한 생활가전 기업의 M&A 정보 하나만 가지고 주식을 투자해서 300만 원 정도의 손실과 아내의 손바닥 스매싱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오랫동안 주식을 멀리 해왔지만 20년 후반부터 연일 뉴스에서 주식 관련된 내용과 여기저기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적금을 해약하고 700만 원 정도의 돈으로 주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주당 6만 원대에 매입한 LG전자 주식으로 100만 원대의 이익을 실현하고(이익 실현 안 했으면 지금은 주당 15만 원인데) 나도 이제 신중하게 한다면 주식으로 돈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일 년 정도 투자하면서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참 더디기만 했다. 사실 수익률로만 보면 낮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서 1년에 몇 백 벌지 못하는 결과로는 부자가 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 하기에 갈증만 커졌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목돈이라는 것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다양한 투자처들을 생각해 봤다. 또 수익률을 계산해봤다. 그리고 몇 년이 아니라 10년 이후를 생각해봤다. 아내가 원하는 것처럼 투자금을 가지고 매월 월세를 낼 수 있는 만큼의 투자처를 찾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장기적인 투자수익 차원에서의 비전은 별로였다. 하지만 4~5억의 투자금을 잘만 굴리면 매달 월세의 절반 정도를 만들면서도 10년 뒤에는 노후준비 걱정 없을 정도로 불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투자를 계획해서 얻은 결론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월세로 사는 동안에도 곧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우리 마포 아파트는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 든든한 보험을 하나 들고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보증금을 최소한으로 줄인 월세 계약으로 새 집을 찾기로 말이다.
사실 월세를 찾아보면서는 범위를 더 넓힐 수 있었다. 매물도 많았고 내가 감내만 할 수 있다면 원래 생각했던 전세 8억 원 정도의 매물이 아닌 그 이상의 시세 아파트로도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부동산 현장 확인으로 알게 됐다. 그렇게 나는 보다 좋은 조건의 아파트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파트 월세 계약에 도장을 찍었다. 우리 아내의 출근길이 편하고 가까우면서 내년에 입학하는 우리 아들의 초등학교 캠퍼스 라이프도 생각했다. 문정동에서 가까운 위례에서 초등학교가 아파트 단지와 연결된 일명 '초품아'인 위례 플로리체를 찾았고 보름 정도의 협의와 몇 차례의 방문 끝에 계약까지 이르렀다. 지난 세기에 지어진 아파트에 살다가 21세기에 기획하여 만들어진 신도시에 있는 비교적 신축 아파트에서 살아보게 됐다. 지금 사는 집보다 평수도 10평은 넓고 방과 화장실이 하나씩 더 많아졌다. 이것 말고도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현관 출입을 하고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와 골프연습장, 로봇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와 같이 위례 플로리체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이 들고 있다.
40이 넘고 나서는 뭔가 설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한데 지금은 너무 기분이 좋다. 집이 좋아서도 그렇고 오랜 고민의 끝을 맞이한 기쁜 마음도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공부하고 알아보고 찾아보고 지금 시각 새벽(새벽보다는 아침) 5시 25분에 잠을 자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두 시간 전까지 바라보던 엑셀표 때문일 것이다. 나는 거의 한 달 동안 공부를 하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 어쩌면 내가 이리도 각성한 가장 큰 이유는 목돈을 들고 투자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유튜브 속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투자 노하우와 경험을 듣고 있다. 그리고 목돈을 굴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절세라는 것도 실감한다. 그래서 공부할 것도 많고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많다. 나는 원래가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마케팅, 홍보일을 나름 10여 년 해오면서 다양한 기업과 산업군을 경험했다. 이제 이런 인생 경험치가 투자로 열매 맺게 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그 시작을 공유한 것과 같이 앞으로의 과정을 계속 공유해보려고 한다. 현재 주요 투자 대상은 주식 그중에서도 미국 ETF와 달러 그리고 부동산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