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는 오랜 시간 우리나라 금융의 중심지였고 많은 회사가 위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그 지위를 상당 부분 상암에 빼앗기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국 본사가 두 개나 위치했던 방송 중심지 이기도 했다. 회사도 많고 일하는 사람도 많은 여의도에 당연히 식당도 많고 순대국밥집도 많다. 아마 순대국밥집만도 수십 곳이 이를 것이다. 이런 여의도에서 맛과 역사 그리고 독창성을 뽐내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순대국밥집이 화목순대국이다.
화목순대국은 여의도 KBS 별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 이곳에 다닐었던 필자는 연예인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했었다. 연예인뿐 아니라 내가 얼굴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의 허기를 달래줬을 것이다. 물론 길 건너에는 아파트도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크고 작은 회사들도 많이 있어 점심시간에는 테이블 3회전 가까이하는 전형적인 점심 맛집이다.
화목순대국이 단순히 위치가 좋아서 명성을 얻었을 리는 만무하다. 화목순대국의 순대국밥은 그야말로 중독되고, 이따금 생각나는 맛이다. 원래 맛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화목순대국의 맛을 글로 표현하자니 각종 형용 어구가 궁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어휘력과 필력의 부족함이 크다)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하자면 이곳의 맛은 전형적이고 짐작되는 맛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심지어 맛을 저해하는 요소라 할 수도 있을 법한 돼지 내장 특유의 비릿한 향마저도 크게 숨기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화목순대국의 특징은 크게 3가 지료 요약할 수 있다. 돼지 암뽕, 빨간 국물, 토렴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크게 각인된 것은 암뽕이다. 암뽕은 암퇘지의 자궁이나 애기보를 일컫는 말인데 주로 전라도 지역 순대집에서 순대를 만들 때 많이 사용하고 수육으로 내기도 한다. 나는 이 암뽕을 정말로 좋아한다.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은 내가 경험해 본 어떠한 식재료로도 낼 수없는 맛을 만들어낸다. 파스타 중 작은 귀라는 뜻을 가진 '오레키에테'와 모습이 흡사하다. 동글동글 자그마하게 잘라내어서 하나씩 씹히기에 적당하게끔 하면서 목 넘김도 부드럽게 했다. 이에 더해 암뽕 특유의 향은 적어도 나에게는 맛을 돋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 암뽕의 향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화목 순댓국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이마저도 감사하다. 사장님께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사람이 억제되는 것도 호불호가 있는 맛 때문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진정한 마니아들은 당연히 암뽕을 먹으러 가는 거다. 그런 사람들만을 위해서 내장탕을 따로 팔고 있는데 내장탕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건 아니고 순대국밥에서 머릿고기 없이 이 암뽕만 가득 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화목순대국 탕 속에 담아내는 순대가 일반적인 당면 순대이기 때문에 특별함은 별로 없다. 이런 점 때문에 내장탕을 찾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빨간 국물에 대해서도 특별함이 존재한다. 보통의 순댓국집에 있는 다진 양념을 풀었다고 생각한다면 화목 순댓국의 빨간 국물은 응당 맵고 짠맛이 강해야 한다. 그만큼 빨갛다. 더욱이 이 빨간 양념은 나의 의지로 그곳이 들어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릇에 담겨 나와 젓가락으로 몇 번 휘저으면 그때서야 희멀건한 육수 국물을 빨갛게 물 드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때문에 매운맛을 싫어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비기너라면 충분히 당황할만한 그런 붉은색이다. 그런데 맛을 보고는 또 한 번 당황 할 것이다. 생각만큼 맵지도 짜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빨간 양념을 이루고 있는 고춧가루에서 그 비밀이 숨어있다. 그냥 고춧가루가 아니고 볶은 고춧가루를 사용한 것이다. 볶는 과정을 통해 매운맛을 많이 날려 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빨간 국물에서 생각지도 못한 마알간 맛이 나는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여의도 화목순대국에서 빨간 양념을 추가하며 먹는 사람도 못 본 것 같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찌 보면 매운맛은 빨간 맛일 수 있는 우리 식문화에서 빨간 국물의 색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매움을 충족시켜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목순대국의 상징과도 같은 암뽕이다. 탱글함과 부드러운 맛을 눈으로 먼 저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토렴은 보온 밥솥이 없던 시절 찬밥을 데우기 위해 끓이고 있던 국밥의 국물로 여러 번 담고 따라내리 기를 반복하면서 온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밥이 말아져 나오기만 해도 토렴 하는 곳이라 부르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토렴을 하는 과정을 통해 찬밥은 국밥으로 먹기에 딱 알맞은 정도의 온도를 찾아가고 밥알이 한 올 한 올 생기를 찾는다. 반대로 국물은 적당히 식어 후루루 먹기 좋게 된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토렴은 뚝배기에 담긴 재료들의 온도를 높이고 낮추면서 각기 만들어져 자기갈곳으로 가고자 했던 것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같이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준비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밥솥에 담겼던 밥을 뚝배기에 퍼내고 거기에 국물과 순대, 머리 고기를 담아낸다면 이것도 토렴이라 불러야 하나 싶다.
토렴의 설명이 길었는데 화목순대국은 제대로 된 토렴을 한 다기는 힘들 것 같다. 밥알이 코팅된 느낌과 같이 전형적인 토렴 국밥의 식감을 기대했던 나의 미각의 기준을 넘지 못했다. 아마도 충분히 식은 밥으로 여러 번 토렴 하지 않는 탓일 수도 있고 뜨거운 밥에 재료를 더해 불위에 한소끔 끓여내기 때문인 것 같다. 다만 화목 순댓국의 자부심과 고집을 높게 사고 싶다. 앞서 언급한 암뽕과 빨간 국물을 선택지가 아닌 기본값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화목순대국의 토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뚝배기를 낸다는 것은 이렇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오랜 경험에서의 주인장의 강력한 제안일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새우젓을 조금 추가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한 그릇에 담긴 처음 그대로의 맛으로 즐기려고 한다. 경험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맛있었다.
[여의도 화목순대는 1.5층 다락같은 공간에서 조리해서 위 사진과 같은 쟁반에 뚝배기만 담겨 나온다]
이곳만의 재미있는 특징은 조리공간이다. 조리공간이 1.5층 다락방 같은 공간에 있다. 아래에는 손님 테이블이 있고 가장 안쪽으로는 어항이 있는데 어둡고 천장이 낮아서인지 가장 늦게 손님이 앉는다. 주방의 위치 때문인지 뚝배기 하나를 담을 수 있는 은쟁반을 사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얼추 내용물을 다 먹고 남은 것들이 얼마 없을 때 한쪽 모서리에 뚝배기를 올려 기울여 먹는데 안정감과 흘려도 문제없다는 안도감이 있어 상당히 유용해 보였다.
[좌) 도톰한 새우젓, 우) 파와 풋고추]
그리고 순대국밥집의 기본 찬에 있어서는 약간의 독특함이 있다. 보통은 양파와 고추를 내지만 이곳에서는 대파의 줄기 부분을 1센티 두께로 잘라 내놓는다. 파를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밥이 나오기 전 에피타이저로 파를 된장에 찍어 먹는데 이것이 별미다. 깍두기 맛은 특출 나지는 않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뒤쳐지지는 않을 맛이다. 또 개인적 취향으로 순대국밥집의 새우젓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해 5도의 방어는 해병대가 책임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순대국밥의 간은 새우젓이 책임진다. 때문에 순대국밥집에 새우젓에 민감하다. 특히 저렴한 새우젓의 싼티를 감추기 위해 양념해 놓은 것을 싫어한다. 그것만 있다면 어쩔 수 없으니 군말없이 그냥 먹기는 하지만. 화목순대국의 새우젓은 적어도 오젓은 되어 보이는 통통한 새우에 허이멀건이 소금으로만 간이 된 녀석이었다. 가끔 순대에 하나씩 올려먹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화목순대국은 여의도 KBS에서 원효대교 방면으로 좌측 편에 있는 경도빌딩 1층에 있다. 주차장은 따로 없고 바로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는데 순대국밥 한 그릇 가격을 생각해본다면 주차료가 비싼 편이다. 그리고 저녁에 소주 한잔하며 안주로 먹기 좋은 술국도 기본적으로 순대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