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산촌 편을 보고 있었다. 세명의 출연자가 산골 집 주변의 푸성귀와 된장을 가지고 그들만의 취향을 담아 된장찌개를 끓인다. 국그릇에 담아 각자 따로 먹기는 했지만 끓이는 방법이나 들어간 재료와 구성을 보자면 영락없는 된장찌개였다. 늦은 시간 소파에 누워 보던 중이었다. 두툼해진 뱃살 때문에 저녁을 걸러서 그런지 된장찌개가 유난히도 침샘을 자극했다. 그리고 분명 텔레비전 속의 된장찌개보다는 내가 더 맛있게 된장찌개를 끓일 자신이 있었다. 된장찌개를 자주 끓인다거나 요리에 자신이 있지는 못하다. 다만 어려서부터 맛있는 된장찌개를 많이 먹고 자란 자의 미약한 근거에 의한 자신감이었다. 이내 일어나 냉장고에 된장찌개 재료가 될만한 것들을 찾았다. 쓸만한 재료는 어머니의 집된장과 양파뿐 당장 된장찌개를 끓이기에는 궁색했다. 결국은 된장찌개를 만들겠다는 결심만 남겨둔 채로 다시 소파에 누웠다.
며칠이 지나고 아침부터 갑자기 그 된장찌개가 떠올랐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들어오는 길에 동네 마트로 향했다. 그냥 동네 마트라 하기에는 상당히 큰 마트였다. 가격 할인 중인 감자를 담고 내가 좋아하는 바지락을 담았다. 물론 애호박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계산대를 지나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두 번째로 큰 냄비에 물을 반쯤 넣고 마른 새우 그리고 디포리와 다시마를 넣어 국물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바지락을 해감하고 야채 손질을 하나하나하고 재료를 담아 놓고서야 중요한 걸 빠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부였다. 다시 마트에 가는 귀찮음이 두부가 든 된장찌개를 먹겠다는 의지를 이겼다. 그렇게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나의 된장찌개는 아니 나의 요리는 항상 큼직큼직하다. 나는 큼직한 것을 과감하고 시원스러운 나의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을 정교하지 못한 칼질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카레를 끓일 때도 깍두기 크기로 모든 재료를 썰어놓곤 한다. 그렇게 먹어 버릇하니 재료가 작은 것보다는 큰 것에 익숙해졌다. 아이 먹일 음식 말고는 다 큼지막한 재료가 우리 집 요리의 특징이 됐다. 이번 된장찌개도 예외는 없다. 특히 애호박이 더 큼직하게 썰렸고 나는 더 잘게 자를 생각 없이 그냥 투하했다. 애호박은 심 쪽으로 반쯤은 뭉그러 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자의 크기에는 민감했다. 감자 익는 시간이 곧 된짱 찌개의 요리시간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기 주먹만 한 감자를 여덟 조각으로 잘라 넣었다. 새우, 디포리, 다시마를 채로 건져내고 일찌감치 해감을 마친 바지락을 잔뜩 넣어 진한 맛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뒤이어 손질을 끝낸 야채들이 순서 없이 들어갔고 바로 된장을 풀었다. 된장은 어머니가 직접 담근 것으로 지난해의 맵고 텁텁한 막장보다는 맛이 좋았다. 이제 된장의 염분이 야채를 형체를 일구고 있던 그것들을 삼투압이라는 자연의 섭리로 끌어낼 차례다. 아내의 우려 섞인 말이 있기 전부터 이미 불은 중불로 낮췄다. 뭉근한 온도로 국물이 잘 우러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30분은 넘게 끓였다. 감자에 딱딱한 느낌은 남았지만 어차피 을지로 동원집 감자국처럼 퍼석하게 풀어져 익을 감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섯 살 아들이 한술 뜰지 몰라 고춧가루, 고추장은 풀지 않았다. 물론 청양고추 역시도. 간이 심심했다. 며칠을 두고, 몇 번을 더 끓일 계산이 담긴 맛이다. 하지만 단맛은 계산하지 못했다. 양파와 애호박에서 흘러나온 맛이 설탕 세수저만큼이나 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발에 한가득 담았다. 흰쌀밥을 국그릇에 푸고 창난젓도 조그만 접시에 한 젓가락 크게 내왔다. 한술 뜬 아내의 표정이 영 시원치 않다. 나도 같은 표정이 지어졌다. 명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부족한 것이 쇠고기 맛 다시다였으면 더 후련했겠지만 그렇게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된장찌개 맛은 재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손에서 나오는 맛이었다. 어머니의 손에서.
어머니의 된장찌개
나는 된장찌개를 즐겨먹었다. 하지만 누군가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된장찌개를 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위안을 받는 집 앞 공원이나 뒷산 산책로를 선뜻 말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보통은 앞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평생에 한 번이나 가봤을 멋진 여행지 추억의 장소를 꼽을 것이다. 에펠탑이나 누 캄프 같은 곳 말이다) 된장찌개가 그렇다. 분명 좋아하는 음식인데 식당에서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네 정육식당에서 가성비 좋게 내오는 차돌 된장찌개 말고는 돈 주고 된장찌개를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게 다 어머니 때문이다.
어린 시절 중요하지 않은 날은 기억할 수 도 없이 많이 먹었겠지만 기억할 만큼 중요한 날 아침에는 언제나 된장찌개나 된장국을 먹었다. 이건 삼성 박한이가 매 타석에서 보호장구를 고쳐 매는 것과 같은 루틴 같은 것이었다. 나의 지병인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고등학생 때 정도부터는 기름진 음식이나 찬 음식이 나의 배변활동을 왕성하고 분주하게 만든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수능시험일은 물론이고 대학교 입시 실기평가나 고등학교 기말고사 같이 중요한 날이면 언제나 아침 일찍 된장찌개나 국으로 식사를 했다. 나의 의견이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알아서 그렇게 준비를 해주셨고 이건 암묵적인 루틴이 되었다.
분가를 해서 부모님과 따로 살기 시작해서부터는 내가 부모님 집을 찾는 날이 특별한 날이었다. 그 수가 명절 수와 정확히 일치하거나 근소한 차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함께하는 부모님 집 식탁에서는 항상 된장찌개를 찾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큰아들이 반가운 만큼 꽃게나 말린 표고버섯 심지어는 쇠고기 같은 고급스러운 재료가 추가되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과 재료의 변화를 뛰어넘어 내가 느끼는 어머니의 된장찌개에 대한 따뜻함과 감사함의 크기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어머니의 된장찌개에 대한 믿음은 나에게 신앙과도 같은 것이다. 실패란 없을 것이며 이번 식사 역시도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맛있게 싹싹 비울 것이고 어머니는 밥 한 공기와 찌개 한 그릇을 더 권할 것이다. 내가 밥을 한 공기만 먹더라도 그건 맛이 없어서는 아니다. 내 체중에 대한 두려움과 아내의 눈총 때문일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나에게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그토록 완벽한 소울푸드로 느끼게 했을까? 원래 답이 없는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답을 짜내어 본다면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첫 번째는 물리적이고 명확한 실제라 할 수 있는 '맛'이다. 다시 말해 어머니의 된장찌개는 맛있다. 어머니는 분식집을 경영하시고 대량급식소에서 조리사로 오랜 시간 일했을 만큼 요리 경험이 많고 손맛도 좋으시다. 더욱이 어느 순간부터는 잘 띄운 메주를 사서 집에서 된장과 간장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으니 시판되는 된장(사실 만드는 방법만 본다면 된장 맛 소스라 표현하는 것이 옳다)과 차별되는 진짜 된장의 맛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해를 거듭하면서 우리 가족의 입맛에 맞춰 저염에 깊은 콩 맛이 우러 나오는 그런 된장의 맛을 완성하셨다. 어머니의 된장찌개의 또 다른 특징은 감칠맛에 있었다. 멸치국물과 말린 표고버섯 같은 재료로 다시 국물을 만들어 감칠맛을 강하게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그 결과물은 항상 깔끔하면서도 한 없이 깊은 감칠맛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사실 위에서 열거한 두 가지, 된장과 감칠맛 재료의 사용 이외에 다른 재료에 있어서는 특별함은 찾을 수 없다. 두부는 두부이고 감자는 감자일 뿐 그 양과 손실 방법에 따라 된장찌개의 맛을 크게 좌지우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 십여 년 요리 경험으로는 그렇다. 그렇다면 물리적,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머니 된장찌개만의 맛의 비밀은 무엇이란 말인가. 감성적인 접근법으로 추억과 사랑의 맛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10대 시절까지 아침 식탁에 중요한 날인던 평범한 날이던 주인공이었던 된장찌개를 먹고 자라난 나는, 몸속 구석구석에 어머니의 된장찌개가 깊이 각인되어 그 맛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것 아닐까. 평소에 특별히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떠올리지 않고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 그리워하고 있었을지는 모른다.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주문하지 않는 것도 어머니의 된장찌개만 못할 것이라는 무의식의 발현이었을지 모른다. 그래 놓고는 집에 가기 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는 뭐가 먹고 싶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그냥 된장찌개나 끓이면 됐지 뭐 특별한 거 준비하지 마시라는 말을 퉁명스레 전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때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를 읊은 것이었다.
다이내믹 듀오는 어머니의 된장국이라는 노래를 통해 서울로 상경해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살아가는 대학생, 가족을 위해 사회생활에 찌들고 술에 취한 중년 신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어머니의 된장국이라는 해답을 남겼다. 나에게도 어머니의 된장찌개가 피로 해소와 심리안정을 위한 치료약이다. 약을 만들어 먹는 건 포기하고 조만간 진품 약을 먹으러 가야겠다. 어머니의 된장찌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