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아이를 키우면서 TV를 잘 챙겨보지 못한다. 그래도 "유퀴즈 온더 블록"은 챙겨보려고 노력한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한 분의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미술품 갤러리에서 일하시는 분인데, 직업의 특성상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들이 많이 오신다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분들처럼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딸아이에게 소소하지만 많은 걸 함께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아이는 공원에 나가고, 떡볶이만 같이 먹어도 굉장히 행복해하거든요!"
유퀴즈 온더블록의 화제의 인물 갤러리 과장님(출처: 유퀴즈온더블록)
어떤 기사에서 한국의 아버지들은 은퇴 후에 가정에서 본인이 왕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밖으로 겉돌면서 살다가(물론, 많은 아버지들께서는 일터에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 일하신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갑자기 은퇴 후에 가정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융합할 수 없기 때문에 본인이 왕따를 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거라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이틀은 주간에 출근하시고 이틀은 야간에 출근하시는 3교대 근무를 하셨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의 아빠들보다 낮에 놀아주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와 하는 것들 중 가장 행복했던 것은 야구장에 가는 것이었다. 나는 충북 청주시 옆에 작은 시골에서 살았는데, 연고팀인 한화이글스(예전엔 빙그레)가 청주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빠는 어김없이 나를 데리고 야구장에 데려가셨다. 어린 나이라서 야구 규칙을 몰랐지만, 야구장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치킨이었다! 야구장에서 아빠랑 같이 먹는 치킨은 왜 이렇게 맛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세상을 얻는듯한 기분이었다. 야구 경기가 끝나면 아빠와 나는 시외버스를 1시간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시간들 마저도 행복했고, 다음날 학교에 가면 어제 있었던 경기 내용과 먹었던 치킨에 대해 친구들에게 영웅담처럼 들려주곤 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어린 시절의 소중했던 추억들이 나의 자아를 완성시키고 좋은 어른, 좋은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들이 무의식적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에 아이의 어린이집을 마치고 나면 바로 집으로 오는 게 아니라 근처에 한 군데 정도는 꼭 들리려고 한다. 시간을 굳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아이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최근에 남산에 갔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온 적이 있다. 5살 어린이에게 너무 가 파르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35살의 나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한참을 내려오니 주차장 근방에 매점이 하나 있었는데, 아이는 그곳에 들어가서 짜파게티를 먹겠다고 했다. 분명히 남산에 올라가기 전에 저녁도 먹었고 빵도 먹은 아이였지만 배고프면 잠을 못 자는 녀석이기에 즉석에서 끓여먹는 짜파게티를 사줬다.
짜파게티를 맛있게 먹는 아이의 모습에서 옛날 야구장에서 치킨을 먹던 내 모습이 보였다. 짜파게티를 다 먹고 내려오면서 아이는 아빠가 최고라고 해줬다. 인생 뭐 있나. 몸은 좀 힘들지만 2천원짜리 짜파게티 하나만 사줘도 최고라고 해주는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 나는 돈 벌어 오는 기계다, 혹은 아이는 엄마만 좋아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아빠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를 위해 꼭 특별한 것을 해주라는 것은 아니다. 술자리 조금 덜 가고, 집에서 누워서 TV나 휴대폰만 보지 마시고, 그냥 아이 손을 잡고 걸으면서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놀이를 했는지, 친구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추천드린다. 그러면 더 이상 집안의 왕따(?)가 아니라 아이가 아빠만 오매불망 찾는 날이 올 것이다. 단, 너무 많이 찾아서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워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