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 탈락이란 실패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요즘
제법 더워진 날씨에 여름옷을 살까 싶어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너무 많은 선택지에 갈피를 못 잡고 여러 쇼핑몰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결국 자주 입을 가장 무난하고, 여러 번 빨아도 헤지지 않을 것 같은 품질의 티셔츠를 골랐다. 집에 있는 옷들과도 잘 어울리겠지? 입은 모습도 상상해봤다.
장바구니에 담아 구매를 하려는데 결제버튼이 쉽게 눌러지지 않았다. 더 저렴한 건 없을까 하고 비슷한 옷도 찾아보고 후기들도 읽어봤다. 요즘은 이렇게 무언갈 사려하면 꽤나 시간이 걸린다. 몇 번이나 잘 쓸만한지 적당한 가격에 잘 산 건지 생각해본다. 덕분에 구매한 것들은 대부분 잘 쓰고 있다. 낭비도 줄었고 불필요한 짐이 늘지 않아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패턴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내 일을 결정할 때도 쇼핑 때와 같은 똑같은 모습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빌딩 속 내 두 다리를 붙일 곳이 없다는 노래 가사처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취업준비생인 나는 매일 여러 공고을 확인한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서 지원했다고 쓴 자소서 내용과는 달리 합격할 수 있는 가를 가장 많이 고려한다. 귀하의 우수한 역량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수많은 탈락을 겪은 결과다.
학벌이 모자란 거 같아서, 어학 성적이 부족해서, 경력 있는 신입을 뽑을 것 같아서, 1명이라는데 내정자가 있는 건 아닐까. 못난 내가 맘대로 정해놓은 커트라인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가슴 떨리는 일보다 안정을 찾고 자꾸만 내 나이를 세본다. 시작도 전에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진다. 결국 제일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제일 싫지는 않은 혼자만의 합의점을 택한다. 그마저도 불확실하지만. 어린 시절보다 더 나를 모르게 된 것 같다. 진짜 꿈이 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혼란스럽다.
2시간의 영화도 실패하기 싫어 남들의 후기를 찾아보고 AI가 정해준 취향을 따르는 요즘이다. 가성비에 가심비도 챙기고 작지만 확실함 행복을 느끼라는 사회. 실패를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하지 말라고 몰아세우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결국 줏대도 취향도 꿈도 없다. 돌이켜보니 심지어 실패도 없는 어중간하고 텅 빈 내가 있다.
실패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원하는 일을 찾고 도전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며 다시 나를 찾아가고 싶다. 하루의 완벽한 데이트를 위해 무작정 샀던 원피스가, 화가가 될 거라며 졸랐던 색색의 물감들이, 마냥 좋아하니까 뛰어들었던 그 용기가 그립다. 그래서 화면 속 탈락이란 실패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실패가 하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