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수업을 듣는 날만큼이나 경연 대회에 나가는 날이 많았던 어린이에게는 그게 당연했다. 나고 자랐던 군산은 물론 전주, 광주, 서울까지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를 일이 많았다.
독창 대회, 중창대회, 합창대회, 뮤지컬, 오페라 등 올랐던 무대의 성격도 다양했다. 그래서인지 학업 우수자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게 우리 집에선 심각한 걱정거리가 되진 않았다.
그건 확실한 특기였다. 칭찬이 어색했던 아이였지만 ‘가창에 재능이 있습니다.’ 이 문장만큼은 분명히 내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 아이들의 단골 장래희망이었던 선생님과 간호사도 나의 계획엔 없었다. 오로지 가수. 아, 다시 생각해도 빈틈없는 단호함에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정말이었다.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은 없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노래를 잘했던 아이는 ‘재능’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다 이런 글을 쓰고 앉아있다. 앞서 줄줄줄 늘어놓았던 음악은 포기한 지 오래다. 밥을 벌어먹을 수 있을 만큼의 재능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은 가창과 비슷한 행위조차 하고 있지 않다. 확실한 특기, 재능 그런 말들이 다 무색해질 만큼 관련 없는 일상을 보낸다.
그럼에도 이 어른의 세상은 곧 잘 돌아간다. 가창에 재능이 있다는 문장은 이제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지만, 나는 또 다른 문장과 함께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얻은 새로운 문장은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건 10여 년 전의 아이가 가지지 못했던 문장이다. 나는 한 번도 글을 써서 상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글짓기 대회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노래하는 사람을 꿈꿨던 아이는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어 일주일에 한 번 쓴 글로 돈을 번다. 기묘한 일이다.
다시 시계를 조금 돌려보자. 그러니까 딱 10년 전, 열일곱의 이슬은 새로운 장래희망으로 에디터를 선택했다. 특유의 세련된 문체로 립스틱이나 핫초코 가게를 소개하는 일이 멋져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학과에 입학했고, 그런 그녀가 입학과 동시에 문을 두드린 곳은 다름 아닌 학교 신문사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글쓰기를 배워볼 요량이었다.
스무 살의 그녀에게 글쓰기란 분명 낯선 행위였다. 그동안 그녀가 자발적으로 쓴 글이라곤 일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잘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2년 동안 학보사 기자로 일했던 나는 그 후로도 꾸준히 글을 써왔다. 스물두 살엔 다른 대학생들과 독립 잡지를 만들었고 스물다섯엔 좋아했던 리빙 잡지 회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스물일곱이 된 지금은 정규직을 희망하는 프리랜서 에디터. 글쓰기는 분명 재능의 영역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즐겨보는 요리 프로그램에선 늘 킥을 강조한다. 필수는 아니지만 70점짜리 음식을 100점짜리 요리로 만들어주는 재료 혹은 조리방법을 뜻한다. 꾸준하게 무언가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은 킥과 같다. 아무리 질 좋은 고기도 적절한 조리방법과 어울리는 소스 없이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재능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는 재능은 별 힘을 쓰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에 반해 약간의 용기와 꾸준함은 기본 재료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요리를 만들어 낸다.
여전히 나는 글을 쓸 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글엔 주술 관계나 띄어쓰기가 엉망인 문장들도 한가득이다. 하고 싶은 말을 찾지 못해 빈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 날 역시 부지기수다. 일주일에 한 번 올리는 블로그 포스팅만으로는 아직 온전히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그래도 쓴다. 좋아하니까. 또 좀 더 나은 기록자가 되기 위해 한 줄이라도 더 써본다. 미약한 성장을 기대하며.그리고 그렇게 써 내린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정말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커버린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