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 in the Dark
눈을 감고 걸어 본 적 있는가?
몇 걸음이나 걸어 보았나?
나는 그것을 간간이 시도한다. 눈을 꼭 감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안전할 것 같은 곳을 걸어보는 거다. 재미있는 것이 있다면, 그 걸음을 스무 걸음 이상을 떼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다.
아무리 안전한 곳 일지라도, 눈을 감고 열 걸음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눈꺼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일렁임과 발을 옮길 때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나의 발 끝에 집중하게 되어 다른 다른 감각에 의존한다기 보다는 다른 감각을 못 믿게 되는 나를 만난다.
매번 시도할 때마다 같은 기분, 같은 마음이 든다. 처음에는 처음이라 그런 겠거니 했는데, 요즘엔 내가 나를 못 믿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번에 다녀온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는 어찌 보면 이런 나의 모습을 시험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 같아서, 주말에 훌쩍 북촌으로 길을 나섰다.
어둠 속의 대화. 비슷한게 영화 <어바웃 타임>에 잠깐 등장한 적이 있었다. 암전 카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인공은 대화를 나누고, 히로인을 만난다. 어쩌면 암전 레스토랑은 소개팅 장소로 제격일수도 있겠다. 눈 감고 걷는 것도 무서워하는 내가 왜 암전 카페를 소개팅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하냐고? 목소리로만 상대를 판단할 수 있고, 한 가지 감각이 사라지면서 불안감을 느끼다보니 적극적으로 상대를 알려 들테니까. 혼자 북촌으로 훌쩍 길을 떠나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다음에 소개팅을 한다면 암전 레스토랑이 어떨까, 하는. 사실 자신이 없어서 소개팅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서도.
다시 <어둠 속의 대화> 이야기를 해 보자.
가끔 어둠을 걸어보는 내가 '어둠'을 주제로 한 공연 문화를 접한다는 것. 나에게는 그것 자체가 상당히 설레는 일 이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어둠 속의 대화>는 내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이것 때문이었다.
사실 북촌은 신촌에서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다. 버스를 세 번 정도 갈아 타야 하는데, (접근성이라는 게 주관적이다.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닌지라 두 번 이상 무언가를 갈아타서 접근하면 좋지 않은 접근성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 날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혼자 한옥 이곳저곳을 훌쩍훌쩍 후비고 다니는 것도 그랬고,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 연인들이 맞잡은 두 손, 그리고 한 낮의 신선한 공기 모두 나쁘지 않았다.
조금 걸어야 했지만 혼자인 것은 이럴 때 굉장히 큰 장점이다. 힘들면 내가 쉬고 싶을 때 쉬면 되고, 다시 걷고 싶어 지면 걸으면 되니까. 예약 시간 15분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은 약 100분으로, 100분 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안내자'라는 분과 함께 걷게 된다. 걸으며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한다. 시각을 스스로 차단하기로 결정한 채 100분 간을 하염없이 느끼고, 생각하고 또 (냄새를) 맡으면서 우리는 공연의 일부에 녹아든다.
공연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언급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다고 느꼈던 점은 안내자가 자신의 생각을 감상자(또는 참여자)들에게 강요하거나 심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여'하는 류의 공연이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 참여 예술은 의도치 않더라도 관객-공연자들의 생각을 드라이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관객들의 생각은 통제가 불가능해지며, 이는 모든 관객에게 동일한 수준의 감동이나 기대를 전해줄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참여형 공연' 같은 경우, 어떠한 행동을 참여자에게 하게 함으로써 의도적으로 행위자의 생각을 인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걸 본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공연자가 인도하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된다. 세뇌의 기본은 강제적 육체 행위이다. 물론 참여형 공연이 모두 세뇌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여형 공연은 세뇌로도 충분히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연기자의 수준에 따라 현격히 차이가 난다. 참여형 공연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어둠 속의 대화>는 생각을 심지 않는다.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중시하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이 공연에 주제 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어둠', 하나 뿐이다. 사고를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 또한 '안내자', 즉 스토리텔러마다 다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야기는 철저히 어둠 속의 감상 그리고 감각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안내자에 의해 주된 이야기(mainstream)가 흐트러질 일은 없어 보인다. 공연의 퀄리티가 들쭉날쭉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야기를 더 해드리고 싶지만 그보다는 다녀오시라는 말을 더 해드리고 싶기에, 더 말을 잇지는 않겠다.
이 공연을 연인들에게 추천한다. 아니,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진지한 관계로 교제하고 있는 상대와 부부, 그리고 친구들과 꼭 한번 다녀오기 바란다. 나처럼 홀로 훌쩍 떠나 방관자 그 자체가 되는 것도 좋다.
연극 한편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아마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다.
많은 것을 이뤄야 하고, 성취해야 하고, 또 의무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우리 사회에 '느낌' 그 자체를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것. 공연을 느끼는 100분 간, 나는 정말 좋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어둠 속의 대화>. 하루하루를 소명과 목적의식으로 보내며 오늘을 살아내는 위대한 당신께, 얼굴도 모르는 내가 감히 추천한다.
"잠깐 쉬다 오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