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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04. 2016

평면탐구:Crossing Plane

일민미술관

<평면 탐구: 유닛, 레이어, 노스텔지어>

전시기간: 15/11/27 ~ 16/1/31 (전시종료)
일민미술관 1, 2, 3 전시실
강서경, 곽이브, 박미나, 박아람, 박정혜, 백경호, 성낙희, 윤향로, 차승언, 홍승혜




당신의 눈 앞에 있는 첫 번째 물건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지각한다. 원근이나 명암 같은 시각적 요소를 이용해서 실존을 파악하기도 하고, 후각이나 촉각과 같은 비시각적 자극을 사용하여 가상의 공간을 구성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예술가들은 회화를 통해 실존을 표현했다. 우리가 셀카나 음식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함으로서 대상의 존재를 타인에게 인지시킨다면, 예술가들은 캔버스 위에 공간을 구성하며 감상자와 교류하고자 했다.



원근법은 우리가 평면 공간에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르네상스 시절부터 많은 화가들은 원근법, 특히 투시원근법에 대해 연구했다.


원근법은 우리가 평면 공간에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르네상스 시절부터 많은 화가들은 원근법, 특히 투시원근법에 대해 연구했다. 정확한 계산에 입각한 완벽한 비례는 감상자들을 당대의 모습으로 초대하는 듯 했다. 마치 공간을 평면 아래 짜 넣은 것 같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화가들은 한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원근법을 사용한 그림은 감상자에게 입체감을 줄 수 있지만, 공간을 실제로 느끼게 할 순 없다는 것을. 원근법을 사용한 그림은 화가의 한 시점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감상자들은 이동하며 그림을 관찰한다. 그림의 시점은 변하지 않는다. 평면에 투사된 공간은 깊이(depth)가 상수로만 존재한다. 삼차원 큐브에서 이차원 평면으로 투사할 때 발생하는 근본적인 한계다.


Impression, Sunrise, Claude Monet (1873)


예술가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본 그대로를 재생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감상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했다. 시점의 재현(再現)보다 현실감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인상주의나 큐비즘(입체주의)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역설적이게도, 화가들의 표현이 다각화 될 수 있었던 계기는 평면공간 위로의 표현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다. 캔버스 위로 그려지는 화가들의 풍성하고도 괴기한 표현들이 모두 용인될 수 있는 이유다.



길 건너에서 바라본 일민미술관, 건물은 동아일보가 소유하고 있다


<평면탐구: 유닛, 레이어, 노스텔지어>는 예술가들의 표현의 진원지인 평면에 집중한다. 예술가들은 유닛, 레이어, 노스텔지어라는 키워드로  작품을 표현한다. 그러나 요소에 집중한다고 해서 요소의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시각화 할 순 없다. 차원의 한계다. 점의 세계를 시각화 하기 위해서는 차원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한다. 평면 요소를 공간 위로 표현하다보면 본질의 왜곡을 피할 수 없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우리는 대상의 사영(射影)을 통해서만 그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의 작품이 키워드들 사이에서 느슨히 중첩되어 있는 이유다.


1전시실에 소개된 작가들은 평면을 탐구하기 위해 단위(unit)를 이용한다. 
(중략) 빈 캔버스를 채우고자 하는 충동을 정제하기 위해 고민하고 평면에
놓이는 시각적 단위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도출하고
배치할 것인지 탐구해 온 작품이 위치한다


성낙희(b. 1971)

성낙희는 임의로 상정한 조형 단위를 감각적으로 이용하며 캔버스를 채우는 특유의 추상회화를 선보여 왔다. 기존의 작품이 직선을 주로 사용하면서 평면의 안쪽을 분절하고 밴버스 바깥을 잠정적으로 지시하는 조형 언어로 이루어졌었다면, 이번에 공개된 신작에서는 두꺼운 곡선을 이용해 평면안에 둥근 중심을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증식해나가며 또 하나의 우주를 선보인다.


전시실의 모습, 왼쪽부터 -Shift 그리고 Resonance-, 성낙희 작가


Shift의 정면, 평면 속에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이 확산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130x181 (2015)


배경을 이루는 레이어 부터 유닛이 요동치며 확산해나가고 있다, Shift


박정혜(b. 1989)

박정혜는 일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시각적 단위를 발랄하게 뒤섞는 작업을 전개한다. 그러므로 작가 주변의 실재하는 세계는 종이접기 등의 강박적 시각 규칙으로부터 발췌한 평면적 형태로 환원된다. (중략) 마치 부피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평면으로 구성된 세계를 상상하는 듯 하다.


Bubble Mine, 종이에 색연필, 25x18cm, 박정혜 (2014)


Tomorrow, 캔버스에 아크릴, 65x53cm, 박정혜 (2015)


강서경(b. 1977)

강서경은 적극적으로 캔버스의 물리적 경계를 허물어 평면의 확장을 모색한다. 강서경에게 캔버스는 그 자체로 독립된 작품이기도 하나, 전체의 일보로 작용하는 하나의 조형적 단위이기도 하다. 프레임에 색과 형태를 구축하는 일반적 회화의 방식을 '정간보'라는 그래픽 악보의 원리에 중첩시키고, 거기에 선과 덩어리를 지시하는 사물이 덩그러니 놓이며 전체적인 시각적 리듬을 보완하고 있다.

(모라 55x40)과 (두꺼운 모라 55x40), 캔버스 위 장지에 과슈, (모라 55x40) 55x40x4cm, 2015년 작품, (두꺼운 모라 55x40)은 55x40x16cm
정(井), 조합된 구조물, 철에 도색, 나무프레임 및 바퀴, 가죽조각, 254x120x40cm, 2014-2015
둥근 절벽, 조합된 구조물, 철에 도색, 실감기, 나무바퀴 116x34x34cm 2012-2014



2전시실에 소개된 작가들은 평면을 두께가 없는 기하학적 개념에서 확장시켜서
하나의 겹(layer)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평면을 입체라는 실존 영역으로 끌어오거나, 입체를 통해 평면 영역에 도달하고자 함은 물론, 평면을 중첩하여 시간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백경호(b. 1984)

백경호는 기존의 미술적 재현 규칙을 뒤섞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작가 주변의 일상에서 수집할 수 있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평면 위에 자의적인 시각 기준에 의거하여 배열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수집된 이미지를 만질 수 있는 사물로 전환하는 쾌감을 위해 유화와 붓질이라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Long Live, 캔버스에 유채, 240x280cm, 백경호 (2015)


곽이브(b. 1983)

곽이브의 <면대면>은 흔한 일상의 어떤 면을 참고해 만들어진 가변적인 포장지다. 관람객은 전시장의 벽과 바닥에 다양한 모양으로 작품을 연출할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은 실존의 입체를 납작한 평면으로 인식한 후, 다시 입체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환원시키는 방법에 대한 일종의 시각적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관객이 평면을 사용하여 입체를 재구성하게 허함으로서 레이어를 체득시킨다. (면대면3), 곽이브 (2015)

곽이브의 <면대면>은 흔한 일상의 어떤 면을 참고해 만들어진 가변적인 포장지다. 관람객은 전시장의 벽과 바닥에 다양한 모양으로 작품을 연출할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은 실존의 입체를 납작한 평면으로 인식한 후, 다시 입체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환원시키는 방법에 대한 일종의 시각적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윤향로는 유명 애니메이션을 한 프레임씩 일일히 분리한 뒤, 그 정지된 평면을 손으로 직접 다듬고 이어 붙인다. 소리와 인물이 소거된 애니메이션의 기괴한 앙상함 속에서 관습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의 클리셰는 순간 마치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1만 3천장의 평면이 중첩되어 얻어진 시간의 부피가 공기처럼 가볍게 부유하고 있다.

(s25e00: part1)의 일부, 싱글 채널 비디오, 10' , 윤향로 (2015)


3전시실에 위치한 작가들은 전체를 바라보려고 한다.
그리고 전체를 조망하려는 시도가 (미술 혹은 작가가) 걸어온 길을 향수(nostalgia)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끝없이 자신을 변주해야 하는 한 명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평면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의 언어가 걸어온 길일 수도 있다.


홍승혜 (b. 1959)

홍승혜는 그동안 컴퓨터 그래픽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작업의 최소 단위로 사용해왔다. 픽셀은 물리적 세계로 환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볍고 작기 때문에 무한히 확대하거나 쌓아 올린다 하더라도 결국은 개념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홍승혜의 작업 세계는 결국 끝없는 자기 변주의 연속이기도 하다. 근년에 이르러서 추상과 기하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형태에 인물의 개입을 허용하며 보다 직접적인 대화를 시도하는데, 그러한 변화의 명징한 예로 영상 작품 <Sentimental Smile>을 선보인다.


(Sentimental Smile)의 일부, 플래시 애니메이션, 영화 <모던 타임즈>(1936) OST 'Smile', 1'34" (loop), 홍승혜 (2015)
센티멘탈 스마일(Sentimental Smile)의 단면, 프로젝터가 글라스에 투사되며 인물 요소를 끊임없이 축적하고 있다.


차승언(b. 1974)

차승언은 평면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재료인 캔버스를 직접 손으로 직조한다. 그렇게 작품으로 만들어진 캔버스는 재현의 대상을 잃은 재료처럼 쓸쓸한데 그러한 방법은 이미 존재했던 수 많은 회화적 시도를 참조와 재현의 대상으로 다룰 수 있게끔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게 해준다. 즉, 평면 미술의 역사 위로 비행하며 각 역사의 순간을 회화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재료인 프레임(캔버스)를 통해 낚아채려고 하는 것이다.


(Twill Stain-2), 면사, 합성사, 직조, 염색, 146x97x3cm, 차승언 (2015)
(Twill Stain-2)를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캔버스가 스스로 직조되어 나가는 듯한 율동감이 느껴진다. 공간의 자발적인 창출이다.
Offset Plain Line7 and Line4 and)의 단면, 앞에는 동 작가의  면사, 합성사, 직조, 염색, 194x291x3cm, 차승언 (2015)


일민 미술관 1층 카페 이마(imA)는 와플과 함박스테이크가 유명하다. 일요일의 이마는 웨이팅 시간만 30분이 넘을 정도로 부산했다. 그러나 복작스러운 카페 분위기와는 달리 전시실은 한가해서 좋다. 관람 시간은 40분 내외, 방문은 일 700명 내외일 것으로 보인다. 전시의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밋밋한 공간 사이로 생각들이 차고 들어간다. 다만 <디 모 뮤지엄> 처럼 셀카가 예쁘게 나올 공간은 없다. 이 점을 제외하면 일민미술관은 한남이나 이태원보다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다. 사람을 피해 문화를 즐기고 싶은 커플들에게 일민미술관은 그늘이다. 다만 감상을 위해서는 머리를 좀 써야 한다.


일민미술관은 연인과 함께 가기도, 혼자 방문하기에도 좋은 장소다. 연인들에게 좋다는 말의 근거는 카페 안 커플들의 숫자가 증명하고 있었고, 나는 혼자였지만 즐거웠으니 내가 증인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민의 다음 전시를 기약해 보자.



일민미술관 전경, 외관과 카페 이마(imA)가 예쁘기로 소문났다


#Thumbnail Info: <얼굴(the face): 일민미술관>, Jaehyun Ah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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