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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09. 2016

에로 영화를 응시하다

영화 <완전한 사육The Perfect Education>

화 <완전한 사육The Perfect Education>은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총 8편이 제작된 유서 깊은 영화 시리즈다. 마블의 히어로 영화 <어벤저스Avengers> 시리즈보다 여섯 편 더 많고, <스타워즈Starwars> 에피소드보다는 두 편이 더 많다. 

웃자고 한 소리다. 제작비나 스케일 면에서 비교가 불가하니까. <완전한 사육>은 분류로 치면 삼류 에로 영화 시리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에로 영화들과 같은 패러디 작품이 아니다. <완전한 사육>은 독자적 스토리의 핑크영화(Pink Film: 남녀의 정사를 주로 다룬 영화)다. <완전한 사육> 시리즈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한 남자가 여성을 보고 납치를 감행한다. 납치범은 여성에게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진실된 사랑을 찾고 있음을 끈질기게 설득한다. 납치된 여성은 처음에 그를 완강하게 거부하지만, 진득한 남성의 진정성에 점차 마음을 열고 그를 받아들인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고3으로서 혹독한 일과를 마치고 열두 시쯤 집에 들어갈 때면, OCN에서 나오는 명화들(?)을 보며 지난한 삶을 위로받는 것이 필자의 쳇바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는 동 채널에서 <완전한 사육>을 접했다. 그날은 채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에로틱하고 육감적인 여성의 몸매를 본 것보다 감금의 폭력성을 뚫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변하는 피해자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아동 청소년 보호법(아청법) 때문에 본 영화를 접하기 어려워 보인다.

The Halot, Sisters of Inquisition, Oil on Canvas, Shaun Berke (2013)


<완전한 사육>시리즈 1편의 제목은 <신주쿠 여고생 납치 사건>이다.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주제로 한, 베스트셀러 <여고생 유괴 사육사건>(마츠다 미치코Michiko Matsuda)을 다룬다. 줄거리는 이렇다. 평범한 셀러리맨 이와조노는 여고생 구니코를 납치한다. 남치범은 그녀를 감금한다. 그녀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대신 식사를 챙겨주고, 원하는 것을 사다주며 자신의 삶을 설명한다. 그는 자기 원룸촌 이웃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녀와의 첫 대화를 시도한다. 그의 이웃들은 다음과 같다. 히키코모리, 밤거리를 누비는 꽃뱀, 게이 커플, 권태기의 집주인 부부. 주변에는 모두 소수자이면서 외로운 사람들 뿐이다. 범인은 자기 이웃들처럼 자신도 외로운 사람일 뿐이며, 쿠미코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범행 동기를 설명한다.

처음 여고생은 격렬하게 현실을 부정한다. "차라리 자신을 겁탈하고 풀어달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이와조노는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다. 그는 그녀와 완벽한 사랑을 나누길 원하기 때문이다. 쿠미코는 그런 이와조노의 고집에 저항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낀다. 갇혀 있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와조노만이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그렇지만 이와조노는 탈출 외에 그녀가 바라는 것은 모두 들어준다. 여고생은 점차 자신에게 헌신하는 이와조노에게 동정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동정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애정이라는 감정으로 변모한다.


The Gift & The Ghost, Sisters of Inquisition, Oil on Canvas, Shaun Berke (2013)


정상인의 사고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도 설득의 여지는 있다. 만약 쿠미코가 성적 학대 속에 이와조노에게 애정을 느끼는 스토리라면 여타 저질 야동과 다를 바 없는 발상의 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이 영화를 곱씹는 이유는 '왜 여고생을 범행의 대상으로 정했는가?'를 고민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왜 그녀였을까? 정답을 말하고 시작하자. 이와조노는 쿠미코가 특별한 여성이기 때문에 납치를 감행한 것이 아니다. 그가 쿠미코를 납치한 이유는 그녀가 여고생이기 때문이다.

열아홉, 스무 살은 아직 자신을 발견하기 이를 확률이 높다. 이들이 확고한 자아를 형성하기엔 아직 경험과 시간이 모자라다. 미성년자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내 마음은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감정으로 흐릿하게나마 느낄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으며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을 찾아야 한다. 오죽하면 세간에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스무 살까지'라는 말이 있겠나.


Abbot, Sacrosanct, Oil on Panel, Shaun Berke (2014)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이와조노가 쿠미코를 고른 이유는 쿠미코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세계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애정관이다. 그러나 자아가 채 형성되지 않은 여고생은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설득에 넘어간다. 상황이 다를 뿐 '걔 원래 마음은 착한 애잖아'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피해자들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와조노는 그녀의 세계를 주무르는 것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납치 때문에 받을 법적 처벌과 자신의 행실을 분리시킨다. 이와조노는 말한다. "난 징역을 살 준비가 됐으니, 앞으로 겪을 일을 참아달라"고.


피해자 여고생은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인다. 자신을 가둔 범죄자의 말에 설득당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에게 전적으로 동조한다. 그릇된 교육에 자신을 훈육한다. 쿠니코는 서서히 스스로가 감금됐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녀는 이와조노와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피해자의 안정감은 스톡홀름 증후군의 필요조건이다. 결국, 애처로울 정도로 완벽한 사랑을 갈구하는 이와조노와 그의 헌신을 보면서 안정감과 연민, 그리고 존중의 복합적인 심경의 변화를 겪은 쿠미코는 사랑에 빠진다. 사육이 성공하는 순간이다.


The Dark Alley, monotype, Ivan Bunin (1993)


영화 마지막, 형사와의 대담에서 쿠니코는 이렇게 고백한다.
"전 유괴된 게 아닙니다."

형사가 말한다.
"당신 조깅 중에 납치된 거잖아!"

"아니요, 제가 따라간 겁니다."
"아니, 감금당했잖아?"

"아니요 즐겁게 동거했습니다. 그는 존경하는 사람이기에 그와 즐겁게 섹스했습니다."
쿠미코는 미소 짓는다.


Aquarium, oil on canvas, Olga Okuneva (2015)


이 영화는 그릇된 사랑 관념(사랑이라 부르기도 혐오스럽다)으로 인한 감금 범죄, 그리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런데 영화의 영문 제목은 사육을 의미하는 Raise나, Rear, 또는 Keep이 아니다. 사육은 Education, 그러니까 교육이다.(영제: The Perfect Education) 다시 말해, <완전한 사육>의 원뜻은 <완전한 교육The Perfect Education>에 더 가깝다. 감독은 이와조노를 사육자의 관점이 아니라 교육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가르치는 자'를 의미하는 교육자. 그 의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재고의 여지가 있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현실에서는 간음·결혼을 목적으로 여성을 약취 유인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심각한 중죄다. 성인의 세계를 주무를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여고생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영향력은 후자가 훨씬 더 크다. 자아 형성이 채 이루어지지 못한 이들은 우선 받아들이고 생각한다. 그릇된 자아는 삐뚤어진 받침 나무를 타고 비스듬히 자라는 식물 같다. 마치 그것이 바른 방향인 양 쑥쑥 자란다. 이와조노가 여고생 쿠미코를 사육의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다.


*사족: 영화는 야동만도 못한 삼류 핑크영화다. 그나마 일편이 제일 나은데, 일편이 그 정도다. 아청법 문제도 있으니, 호기심은 오늘 글로 만족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참고자료
1] IMDb: http://www.imdb.com/title/tt0263854/
2] 다음 블로그 <나를 가둔 이 남자 무죄입니다>: http://blog.daum.net/psy_novelist/758122

3] 아이뉴스24, <충격 실화극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 10월 개봉>:

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600&g_serial=169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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