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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08. 2016

마지막 씬은 모두 황정민을 위한 말이다

영화 <검사외전>

<검사외전>, 영화 자체는 즐거웠다. 명절인 오늘, 가족들은 70 퍼센트가 넘는 점유율로 본 영화를 찾았다. (74%, 메가박스 기준 2월 8일 자) 영화관은 친인척을 포함한 가족 단위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훌륭한 선택이다. 시나리오도, 배우들의 연기도 만족스럽다. 그러나 모두 최선인가 묻고 싶었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검사외전>은 흡사 <생활의 달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의 삶은 소울이 있었지만, 연기는 기계적이었다.

영화 <검사외전>은 황정민이 가장 잘하는 연기의 답습이었다. 이성민은 <미생>을 보는 것 같았고, 박성웅은 다시 한 번 양복에 썩소를 장착했다. 강동원은 <검은 사제들> 사제 캐릭터(최부제 역)의 모습이 보였다. 오랫동안 고생해서 나온 영화가 명절을 위해 급조해서 나온 마당극 같았다고 표현하면 너무 신랄할까?


'남-남 케미'의 관점에서 강동원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강동원은 재작년부터 필모그래피를 적극적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의욕적으로 영화를 찍으며 다양한 역할을 불사한다. 화면에서 열정과 적극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숙성에는 좋은 환경만큼 시간도 중요하다. <검사외전>은 숙성의 과정으로 보인다. '남-남 케미'의 관점에서 강동원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황정민은 그렇지 못 했다. 황정민은 필모그래피가 빵빵한 배우다. 황정민은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도 1년에 3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는 바람직한 배우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연기 스펙트럼보다 우리가 기억하는 황정민의 모습을 응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황정민을 아쉽게 하기 때문이다.


강동원은 화면에서 열정과 적극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숙성에는 환경만큼이나 시간도 중요하다.


황정민의 <베테랑>, <검사외전>, <신세계>, <전설의 주먹>, <사생결단>, <부당거래>를 말하고 싶다. <국제시장>과 <히말라야>, 그리고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도 있지만, 전자와 후자의 색 구분은 명확하다. 주먹을 쓰는 황정민과 그렇지 않은 황정민이다. 관객들은 그의 사랑 연기, 심경에 초점이 맞은 연기보다 폭력과 정의감이 뒤섞인 모습이 익숙하다. 강동원이 열심히 손을 내밀었지만 그의 눈빛이 반짝이지 않은 이유다.


관객들이 기억하는 황정민은 명확하다. 주먹을 쓰는 황정민과 그렇지 않은 황정민이다.


원래 쌍꺼풀이 없는 배우라서 눈이 빛난 적 없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정민은 그늘진 곳에서도 그 빛을 잃은 적이 없다.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은 단 4분 출연에도 그 존재감이 빛났다. 그러나 본 영화에서 황정민은 그렇지 못 했다. 관객과 함께 영화 속을 걷기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걸 먼 발치서 지켜보게 했다. 연기 '베테랑'의 모습이 보였다. 명절 특수에 맞춰 관객몰이를 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한 번 더 느와르' 영화다. 이제는 케이블에서 나오는 느와르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필자는 감방과 검은 정장, 회색 도시를 그린 작품은 당분간 쉬고 싶다. 훌륭한 가족 영화다. 그러나 박수를 탁 치게 만드는 경탄스러운 연기는 없다. 영화는 나왔다. 그러나 명화는 나오지 않았다. 한국 영화 흥행 공식의 클리셰에서 필자는 피로를 느끼는 중이다.


관객과 함께 영화 속을 걷기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걸 먼 발리서 지켜보게 했다. 연기 '베테랑'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한 번 더 느와르'영화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황정민은 말한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이라고. 성경에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라고 적혀있다. 환난을 이겨낸 자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휴식은 영원한 안식과는 다르다. 황정민에겐 충전이 필요하다. 그것이 또 다른 연기든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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