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소고 단편선
생후 삼십하고도 두 해가 지났다. 나는 이제야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졌다. 전에는 체면을 지키느라, 더 정직하게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밝히지 못했던 어떤 것에 대해, 나는 이제는 조금 편안해진 심경으로 운을 뗄 수 있게 됐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이성과 만남에 목을 매며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친구 놈의 표현을 빌자면, 이것은 ‘반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포기한 이유는 생면부지의 여성과 첫 만남부터 사랑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는 나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오년지기 녀석과 술을 마시면서, 나는 이렇게 내밀한 고백을 바쳤다.
혼자 있을 땐 페트병에 입을 대고 생수를 들이켜는 나는, 와인잔 앞에서는 짐짓 하던 일인 척, 코를 들이민다. 낡은 건물 지하 생선구이집을 들락거리며 뜨듯한 미역국을 들이켜 먹는 것을 숨긴다. 대출금 이자다 적금이다 뭐다 잔뜩 근시안적 삶을 살면서, 선자리에서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국제 정세와 요즘 하는 콘서트, 최신 영화에 대해 열린 관심을 늘어놓는다. 나는 그것이 “조금 끼는 옷을 매일 입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말했다. 녀석은 내 이야기가 끝나자, “네 말이 맞지. 맞는데, 처음부터 네 삶을 날고기로 만나는 것은 누구든 당황스럽지 않을까?”하고 맞수를 두었다. 그것은 나의 논리가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게 적당히 유속을 조절하는 듯 보였다. 이 시간 이후의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내들의 술자리가 의례 그렇듯, 우리는 대충 잔을 부딪쳤을 것이다. 별 할 말이 없을 땐 안주를 휘적였을 것이고. 둘은 그렇게 자정을 보냈다.
나의 다짐은 위인전 한 챕터처럼 막을 넘기듯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날의 자리가 도움이 됐던 것은, 다음 선자리에서 자신을 재차 의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은수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을 만났다. 그리곤 다시 한번 요즘 하는 콘서트 이야기를 했다. 자주 가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좋아하는 스테이크 굽기를 말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것을 들었다. 식사는 평범하니 맛있었다. 만약 일기장이 있다면, 나는 오늘을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하루를 더 썼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식사를 다 마치고 카운터에 서서 계산을 할 때였다. 그녀가 말했다.
“전시가 하나 있는데, 보러 갈래요?”
나는 그녀의 말이 조금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그녀가 선자리 내내 나에게 어떤 기대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찜찜한 기분을 물을 만큼 단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전시를 보기로 했다.
우리는 안국역에서 만났다. 흰색 타일이 예쁜 매장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서로의 지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십여분을 함께 걸었다. 우리의 왼편에는 기와 담장이, 오른편에는 미술관이 섰다. 우리는 전시관 앞에서 잠시 헤어졌다. 그녀는 각자 속도로 전시를 감상하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우리가 헤어진 곳 바로 앞에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라는 아홉 글자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방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바큇살이 아름다운 수레 창작물과 영사기에 투사된 신체 일부를 보았다. 그녀는 나와 함께 들어왔지만 이내 다른 속도로 사라졌다. 나는 옆 전시도 조금 둘러보다가 보디츠코의 다른 방에 들렀다. 그곳에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곤 벤치에 앉아있다가 그녀와 함께 미술관을 나왔다. 우리는 삼청동 언덕, 미온한 오늘 날씨와 어울리는 장소를 골랐다. 함께 차를 마셨다.
“어땠어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보디츠코가 섬세한 사람 같다고 했다. 그리곤 그가 만드는 물건의 용도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 같다는 말과, 그 물건이 한편으론 타인과 소통하기에 위화감이 없는 것이길 바라는 것 같아 보인다는 말을 했다. 그의 작품은 선의를 가진 자들에게는 부드럽게 열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단단하게 세울 수 있는 방패 같다고 했다. 비유하자면 카카오 캐릭터가 그려진 방패. 나는 보디츠코가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겹겹이 부드러운 빵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받았던 질문의 머리를 그녀에게 돌렸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전시 내내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이 생각났어요. 그곳엔 모모라는 주인공이 나와요. 모모는 어려요. 모모의 환경은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성전환자, 병자들의 세계예요. 모모는 그것이 나쁘게 평가받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에요. 종종 괴롭고, 어두운 곳이죠. 그렇지만 그곳엔 사랑이 남아 있어요. 모모는 일반적인 삶 앞에서 좌절해요. 상대적 가난과 차별 앞에 슬퍼해요. 그렇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사랑으로, 아이는 삶을 깨치고, 상처를 꿰매요. 그런 이야기예요.”
그리고 그녀는, “저는, 어쩌면 모모가 자라서 보디츠코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하고 말했다.
“자기 앞의 생이네요.” 내가 입을 뗐다. 그러나 말은 섣불리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는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망설였다.
대신 나는 우리들 바로 앞에 자기 그릇만큼의 생이 놓여있는 상상을 했다. 우리는 그것을 먹어치워야 한다. 어떤 생은 맛이 없어도 끝까지 먹어야 한다. 어떤 생은 먹기를 포기하고 폐기 처분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다. 언젠가는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 자기 생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나의 생을 남이 뺏어먹는 날이, 다른 날은 내가 남의 생을 덜어가는 일이 있을 테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결국 지독한 진실은 모두 나의 것이라는 것. 어떤 음식이, 어떤 그릇에 나오더라도 모두 나의 것. 내가 비워야 할 것이다.
“결국 자기 삶을 살아야 하는가 봐요.” 나는 말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어쩌면 운명이 정해놓은 삶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자기 것이다 합리화하는 걸 수도 있어요.”
그녀는 이제 찻잔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세계, 우주, 뭐 그런 거. 저한테 삼라만상이니 인생이니 하는 것은 너무 먼 이야기예요. 나무, 동전, 쿠폰, 영수증. 그게 생 같아요.” 나는 은수씨의 손가락 끝에서 끼익 끼익 하는 마찰음이 나는 것을 상상했다.
그녀는 이제 나의 목 언저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사선으로 두었다. 창밖으로 바람이 불었다. 은행잎이 서로의 몸을 비벼댔다. 우리는 그것이 충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Fin.
나는 한국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한국인이 됐는지 설명, 설명, 설명, 설명...
초등학교 때, 나라를 그리라고 하면 반만 그리는 사람 있습니까?
저는 이 땅에서 세금도 내고, 여기 잘 살고 있는데. 왜 저를 부정하십니까?
<나의 소원>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가 김구 동상에 여러 소외된 사람의 목소리를 투사한 작업이다. 관객들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들은 언젠가 이것을 등지고 나온다. 영상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 속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소리 지르고, 누군가는 설득하고, 누군가는 고통에 울부짖지만 감상자들은 때가 되면 고개를 돌리고 뚜벅뚜벅. 전시실에서 걸어 나올 수 밖에 없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