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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Oct 09. 2017

줄리안 오피(Julian Opie)

수원 아이파크 미술관, 17.09.28 - 18.01.21


요약

전시명: 줄리안 오피(Julian Opie)

장소: 수원 아이파크 미술관

기간: 17.09.28 - 18.01.21


전시에 대하여


줄리안 오피(Julian Opie)라는 이름보다 서울 스퀘어에 있는 프로젝션 프로젝트가 익숙한 분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미끈한 사람들이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영상이다. 모양은 간단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다. 아니, 어쩌면 디테일은 없는데 자연스럽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디테일하다는 표현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사진 출처: 중앙 시사 매거진, 박보미의 도시 미술 산책


영국의 미학자 노먼 브라이슨은 그의 논문 <담론, 형상 Discourse, Figure (1981)>에서 이미지로부터 담론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을 분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는 이미지가 담론을 중심으로 분리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문학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Ronland Barthes)의 사실주의 소설을 끌어온다. 브라이슨에게 '사실주의적'이란 주제의식 주변에 흩어져 있는 부가정보가 풍부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여권 사진은 사실주의적 인물과 정 반대에 선다. 여권 사진이란 개성을 지운 인지 중심의 산물이다. 여권 규격에 인물은 사진 전체의 2/3을 차치해야 하고, 액세서리를 제거한 맨 얼굴, 무표정,  그리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긴 채  (사진을) 찍어야 한다. 대상이 평소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혹은 어떤 장식을 즐겨하는가 묻는 것은 규정 위반이다. 여권 사진은 담론의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재단한 사진이다. 결국 '사실적'이란 메시지가 모호하거나 지저분한 정보가 많이 끼어들수록 본질과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영국 런던 출신의 줄리안 오피(Julian Opie)에게 메시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형상의 사실성에 집중한다. 그래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 모든 디테일을 꾹 찍어 뭉갠다. 그리하면 심플하면서도 사실적인 대상이 떠오른다. 혐오감, 이질감은 벗어지고 친숙함은 깃들기 좋게 간이 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쯤이면 메시지 없는 예술은 '없음'을 주제로 새로운 메시지가 된다.

수원 가는 기차


전시가 수원에서 열리기 때문에 부지런히 나와야 한다. 길을 안내해준 동료와 사과를 나눠 먹었다.

델핀 1번 (Delphine. 1)

 

(아마도) 최신 작품. 머리를 스캔하고 3D 기술로 프린트한 뒤 손으로 채색했다. 모델은 익명의 행인으로, 장거리 렌즈를 사용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포착하여 작업했다.



그는 표현에 제약이 없다. 타일 모자이크, 캔버스, 마스킹 테이프, 패널, LED, 태피스트리 등, 현대인이 친숙하게 느끼는 모든 소재로 작업한다.


 

먼지가 올라앉기 좋은 마스킹 테이프.


 

아크릴을 층층이 쌓아 올려 양감을 확보하고,  매끄러운 물성을 살렸다.

초원(Fields)과 양


초원과 양은 신작으로, LCD 또는 LED 패널 속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대상을 오브제로 끌어냈다.

사진: @eternal_object



대상은 표정 없는 얼굴과 미끈한 피부를 가졌다. 이것은 모델의 개성을 지우면서 그 위에 올라앉아 있던 편견을 떠낸다. 캔버스 속 대상은 이내 대입하기 좋은 존재가 된다.


사진: @eternal_object



작품 속 대상은 미끈한 얼굴을 통해 어디에나 있을법한 존재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면서도 한결같이 잊어버리는 타인의 형상이다.


줄리안 오피의 태피스트리 작업, 사진: @eternal_object


이번 전시엔 우키요에 목판화나 중국의 두루마리식 회화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신작도 함께 소개됐다. 또한 오피가 (예술로서) 공간을 디자인한 장소도 이 곳에 있다. 그의 팬이라면 가봄직 하다. 관람 이후에 수원 성곽길을 걸어도 좋겠다.


수원에서 하는 전시는 한적해서 좋다. 단점은 마찬가지로 수원이라는 것. 왕복하면 하루 2/3이 훌쩍 지나 있다. 반나절 이상이 드는 일정에도 안내를 도와준 @eternal_object에게 감사의 말을 남긴다. 중간중간 있는 좋은 사진은 모두 그가 찍은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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