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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Jun 30. 2016

멀리 있는 방 Distant Rooms | 01

일민미술관(6.25 ~ 8.14), 현재를 유유히 침습하는 영상과 조각들

멀리 있는 방

        Distant Rooms


전시장소: 일민미술관

참여작가: 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 후이 샤페즈(Rui Chafes)

전시기간: 2016.6.25 ~ 8.14

협력: 한국 영상 자료원


일민미술관이 새로운 전시로 찾아왔다. 이번에는 포르투갈 두 거장의 작품 전시다. 거장의 이름은 페드로 코스타와 후이 샤페즈. 한 사람은 영화감독이고 다른 한 사람은 조각가다. 두 사람이 건네는 기억에 대한 물음이 어둠의 장막 아래 서서히 드러난다. 어두운 공간에 독립영화를 투사하고 그것을 간접 조명삼아 조각을 전시한다. 암순응이 끝나는 순간부터 두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문자에서 길이 나듯, 기억이 마치 길을 타고 흐르듯, 알듯 말듯한 모양으로 배치된 텍스트가 인상적이다


<그래픽 디자인 전>으로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려는 듯, 일민미술관의 <멀리 있는 방Distant Rooms>의 분위기는 진중하면서도 차분하다. 전시장이 이러한 공기를 머금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작품의 대주제가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분하고 진중한 것. 그것은 기억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기본 속성일 것이다. 즐거웠던, 슬펐던, 그냥 그랬던, 무엇이 되었든 간에 과거의 '어떤 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침묵과 재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굳이 슬픈 기억이 아니어도 그렇다. "당신은 어느 때에 가장 행복했나요?"라거나, "기억나는 파티의 기억을 말해주세요."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잠시 회상하며 침묵한다. 그리곤 미소를 띠며 그것에 대하여 차분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결국,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침묵은 필수 준비물이 된다.


나는 춥다, 후이 샤페즈, 273 x 124 x 130, 강철, 2005

페드로 코스타와 후이 샤페즈가 전시실의 조명을 모두 끄고, 가려달라고 한 것 또한 이런 연유일 것이다. 전시실 내부는 어둡다.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얼마간의 암순응 시간이 필요하고, 방을 옮기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명순응 시간이 필요하다. 1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는 전시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소리를 낮춘다. 그리곤 쇳덩이의 금속성 울림과 스크린의 루프, 의미를 알 수 없는 포르투갈어에 감각을 의지한다. 침묵을 위한 물리적 전초 단계다.


맨 처음 1층 전시실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후이 샤페즈의 조각, <나는 춥다>다. 육중하고 두꺼운 강철 감옥문이 가늘게 늘어뜨려진 의자 오브제 위에 올라가 있다.


조각의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을 지탱하는 의자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강철 문 또한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관객은 어느 방향에 서든 간에 간수이자 죄수가 된다. 높게 올라간 강철 문의 높이에서 짓누르는 권위가 느껴진다. 부드럽게 깎아내려진 선의 움직임 덕분에 작품 접근에 대한 부담이 적다. 그러나 무광(matt) 표면과 그 알갱이가 다 보이는 강철의 물성은 감히 그것 앞에 몸을 드러낸 감상자를 끝도 없이 외롭게 한다. 후이 샤페즈는 이 오브제를 완성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마음에서 냉기를 느꼈을까. 우리는 그것을 알 길이 없다. 그가 설명해 놓은 것이 하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춥다'는 심상을 함께 공유한다. 그의 조각은 다분히 낭만적(romantic)이다. 말이 던져질 때, 목적과 과정은 모두 사라지고, 짙은 감정만 남아 있다. 마치 우연한 사건 때문에 강제로 열리게 된 누군가의 마음 같다. 서사는 흐릿한데 아픔이 짙게 서려 있다.


100kg 이 족히 넘어 보이는 철제 문을 의자 오브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지하고 있다


강제로 벌어진 누군가의 마음을 훔쳐보다 실내로 들어간다. 열일곱 개의 오브제와 루프 영상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앞) 내 영혼의 이야기, 후이 샤페즈, 강철, 2004 | (뒤) 불의 섬, 페드로 코스타, 싱글채널비디오, 2015


<불의 섬>에서 쏟아지는 용암, 화산재가 열일곱 개의 오브제가 되어 관객에게 쏟아진다. 화산이 폭발하고, 순진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는 양의 눈빛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새 눈 앞에는 잘 정제된 강철 덩어리가 감상자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검게 타버린 흑연 덩어리 같다. 그러나 표면은 가죽 시트처럼 매끄러워 보여서 감상자를 방심하게 한다. 마치 야수성을 잘 감춘 맹수 같다.



내 영혼의 이야기 조각 열 일곱점 중 하나. 부드러워 보이는 표면과는 다르게 강철을 사용했다


열일곱 개의 오브제 위에는 하나씩 상처가 있다. 이것이 푸슈슈 하고 빠져나간 기억의 분출구 일지, 망각의 상흔 일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정교하게 계산된 상처이며, 네 개의 다리와 교합하며 기동성을 확보한다. 관객에게 쏟아질 추진력을 얻는다.


상흔이 존재하는 기억이 네 개의 다리와 교합하며 감상자에게 쏟아진다


마치 열일곱 마리의 상처 입은 돼지들이 나에게 쏟아지는 듯했다


필자가 노트에 옮겨 적은 감상이다. 여기서 '돼지'는 다분히 주관적인 단어다. 필자는 이 작품을 감상하며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Boule de suif>를 떠올렸다. 기억과 감정, 맥락도 줄거리도 없는 감정 덩어리. 그것이 필자를 향해 육중하게 돌진했다.



후이 샤페즈가 십이 년 전에 만든 열일곱 개의 기억들은 2015년의 화산섬과 만나면서 역동적으로 반응한다. 마치 서서히 산화 반응을 일으키던 물질에 촉매가 떨어진 것처럼.




실내는 이렇다 할 조명이 하나 없다. 후이 샤페즈의 오브제는 페드로 코스타의 영상 반사광을 간접 조명으로 사용한다. 두 작품은 서로가 스토리텔링을 돕는 촉매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감상자가 보는 작품은 Minino Macho, Minino Fêmea (수컷 고양이, 암코양이), 페드로 코스타, 2005


페드로 코스타의 이번 전시는 '기억'을 주제로 자신의 작품 중 일부를 자르고 돌려 반복 재생한다. 작품에는 스토리가 맥주 거품처럼 걷어져 있으며, 시선과 소품의 이동, 단순 동작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구성은 감상자의 개입을 기다린다.



후이 샤페즈는 검고 무거운 재료인 철을 재료로 대형 추상 입체/조각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낯선 미적 체험을 전달해 왔다. 그의 작품은 유기적인 형태로 자연물 또는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데, 실제로 100 킬로그램 이상의 육중한 작업을 완성함에도 이를 공중에 매달거나 띄움으로써 매우 연약하고 가볍게 보이게 하는 아이러니한 풍경을 연출한다.



강제로 벌어진 기억. 그리고 문 너머로 물밀듯 밀려오는 감정 덩어리들이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두껍게 두드린다. '이 두 사람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에 스토리는 없다. 전시의 서사성은 없다. 두 작품의 협업은 로맨티시즘이라는 주제에 충실하다. '기억'이라는 추상적 대상을 함유하기 위해 모든 서사를 흡입해버렸다. 덕분에 남은 인상(印象)은 쪽빛보다 짙다. 


전시는 마치 내러티브(narrative)에서 스토리(story)를 뺀 것 같다. 짙고 두터운 감정만 점도 있게 남았다. 이제 더욱 짙은 감정을 쫒아 2층을 오르자.



다음 편에 계속.




랜만에 글을 씁니다. 저장해 놓은 글은 스무 개가 조금 넘는데 아직 때가 되지 않은 듯하여 발행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 사이 다녀온 전시가 국내는 열 개가 넘었고, 해외도 한 번 다녀왔습니다. 쓰고 있는 소설이 두 편, 다 쓰고 퇴고를 기다리는 소설이 한 편 있습니다. 개인 사진 작품도 하나 했습니다. 책상 위에는 그렇게 주제가 다 잡힌 글 리스트가 마흔 편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섣불리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발전하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할 때의 마음이 딱 그랬습니다. '대중적인 작품들 말고, 조금 더 깊게 파 내려가 보자'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소재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취재를 다니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들어 글을 발행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보도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평론에 그렇게 많이 기대지 않고, 오롯이 나의 감상을 찾는 것. 그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글을 쓰는 것은 쉽습니다. 제가 한 십오 년을 취미로 해 오던 것이 글쓰기니까요. 그런데 잘 쓴다는 건 도무지 쉬이 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Real recognizes real"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래퍼 비와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진짜배기는 진짜를 알아본다" 정도로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딱 요즘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글 쓰길 오래 한 터라 진짜배기 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배기인가 하는 물음엔 섣불리 "예"라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니요"라고 하기도 뭣합니다. 부정적인 대답을 한다는 것은 저 자신의 폄하뿐 아니라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독자분들의 취향마저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요샌 발행하지 않은 글만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부디 제 속에 쌓여 있는 모든 글들을 다 게워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빈 속을 새로운 것들로 채워넣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제게 필요한 것은 시간. 그뿐입니다. 여러모로 모자란 제게 시간만 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지난 뮤즈, 스승님, 친구들, 그리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본 글은 일민미술관의 <뮤지엄 리포터 2기>의 활동 기록이며, 일민미술관의 협조를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전시된 작품에 관한 모든 저작권은 일민미술관에 있으며, 사진과 글의 저작권은 작성자(소고)에게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비상업적인 용도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세이프 하버 조항에 따라 주관자는 본 콘텐츠 작성자에게 게시 변경, 삭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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