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른 기억 한 조각
이상한 기억의 단편이 집요하게 내 삶으로 파고드는 순간이 있다.
요즘 그림을 그리기 때문일까....
학교 다닐 때 어떤 기억이 떠올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미술 선생이 과제를 내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너희들이 모두 재능 있는 예술가일리 없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열심히 과제를 수행해서 오면 나는 너희들에게 오직 그 노력으로만 평가를 하겠다. 또한 너희들은 언제든 내 의견에 이의가 있으면 나를 찾아와서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 또한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라."
참으로 순진했던 나는 당시에 선생의 말을 철석 같이 믿고 며칠을 새벽 2-3시까지 잠못이뤄가며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부모님은 내가 왜 그렇게 한낱 미술 과제에 시간을 '허비'하는지 이해하시지 못했지만 딱히 재능이 없어 늘 실기 점수가 낮았던 나는 한번쯤은 좋은 점수를 받아보고 싶다는 이상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점수를 받는 날. 우리는 작품을 제출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나의 스케치북에는 굉장히 굵고 빨간 펜으로 'C'라는 문자가 대문짝 만하게 적혀 있었다.
도저히 그 점수를 인정할 수 없던 나는 스케치북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분명 당신은 열심히하는 태도를 보겠다고 했고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이 과제를 수행했으므로 C보다는 나은 점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노라고.
그러자 그는 굉장히 크게(교무실의 이목이 다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너는 예술이 노가다라고 생각하는 거냐? 누가 너보고 밤잠 줄여가며 이 과제에 매달리라고 시키기라도 했어? (나의 스케치북을 마구 허공에 흔들며) 이따위 노가다 속에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난 너에게 정당한 점수를 줬다. 그러니 닥치고 여기서 나가라."
분해서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났던 기억이 선하다.
그냥 거기까지였다면 그나마 참았을 텐데.....
이후 그 선생은 나를 대놓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점수에 형평성을 유지하겠다며 어떠한 표시도 넣지 말고 과제를 제출하라고 한 뒤 그 작품을 들며 점수를 말하면 그걸 그린 혹은 만든 학생이 손을 들고 이름을 밝히고 선생이 그 점수를 학생의 이름 옆에 기록하는 형식이었다.
내가 조각한 비누 얼굴은 A-에서 B-로, 내가 친 난초는 A+에서 B로 손을 듦과 동시에 점수가 바뀌었다.
"너야? 그럼...." 이라는 말이 언제나 함께했다.
그러니까 그는 처음부터 형평성이라든지 성실성에 대한 평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늘 말은 그렇게 번드르하게 한다. 나는 늘 그 지점이 못내 분했다. 차라리 그런 척이라도 하지 말던지. 예술이 노가다가 아니란 걸 누가 모르나? 그럼 왜 그런 노력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가? 나아가 정당한 권리라고 말해놓고 그걸 실행하니 '나쁜 학생'으로 낙인을 찍고 성적에 불이익을 주다니 이건 공평한 처사인가? 아무튼 저 새끼가 날 찍었으니 내 미술 성적은 개판이겠구나 생각하며 나머지 학창 시절을 보냈던 기억.
그땐 몰랐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그 사람은 무척이나 좌절한 정신 상태의 예술가였을 것 같다.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포부와 다른 이들의 기대를 한껏 받아 훌륭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 때문이었든 그만한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든 평범한 고등학교의 미술교사가 되었고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고 괴로운데 스트레스를 분출할 데라고는 학생들을 괴롭히고 깎아내리는 것밖에 없었던 거다.
아, 갑자기 잡설이 길었다.
결론은......
딱히 내가 재능이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라는 사실. ^0^;;;;;;;;;
놀랍게도 5주차인 아직은 성실히 그리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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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생각의 확장
원래 처음의 계획은 '용봉정상'을 그릴 생각이었다. 그게 뭐냐면 다예할 때 품명배를 문향배 위에 올리는 행위로 품차인이 넓은 시야로 미래를 내다 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번주 화요일에 다예 시험을 봤어야 했기에......시험을 잔뜩 망치고 위축된 마음으로 돌아와서 뭐라도 그리자 싶어 스케치북을 펼쳐 떠올린 게 그거였으나 그리다 보니 뭔가 뜻대로 안 풀렸다.
하지만 그런 덕분에 나름 일본 다도에 필요한 것들.....말차를 넣는 통, 차시, 찻자리에 필요한 수건....뭐 이런 것들을 그렸다. 생각의 확장이 이루어진 것 같아서 혼자 매우 기뻤음.
#22 blow
외출했다가 들어오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라라랜드에서 휘파람 불던 것이 떠오르더니 그 음악이 반복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러며 동시에 휘파람 부는 입술을 그려야지, 하는 생각도 함께 찾아와 집에 돌아오자마자 저 그림을 그렸다.
전에는 딱히 뭘 그리고 싶다든지 그런 것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제 저렇게 갑자기 아이디어가 나를 찾아오기도 하는 상태가 되었다.
뭔가 기분 좋음.
#23 Dragon
용정차를 가지고 책에 들어갈 원고를 써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브레인 스토밍을 하기 전에 용을 그려보았다. 원래 계획은 비늘이나 무서운 표정 등 여러 가지를 표현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고 그건 나의 대충 그리기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실루엣만 그리기로.
그나저나,
글 쓰는 아이디어는 안 떠오르고 어서 <왕좌의 게임> 보고 싶다는생각만 잔뜩 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4 Strawberry
바야흐로 딸기철이다.
넘나 맛있는 것.
역시 사진이 제일 예쁜 것 같지만 그림으로도 한번 그려보고 싶어서 시도했다.
씨앗도 있고 그래서 좀 어려웠다. 만약 까맣게 표현했다면 좀 쉬웠을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먹었던 딸기는 노란색이라서 사실성을 더 존중(!)하여 덜 빨갛게 칠하는 대신 노란 씨를 살리는 방향으로 선택.
그나저나 녹차랑 꽤 잘 어울림.
#25 Let there be light
다 지난 일이긴 해도 이따금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또 열 받기는 열 받는다.
사실 난 요즘도 힘들면 중고등학교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위에 적은 미술 선생의 JR은 차라리 귀엽다...나의 학창시절은 꽤 험난했다)
지각했는데 교문 앞에 도착해서야 내가 잠옷바지를 입고 있다는 걸 알게 되거나 학교를 다시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거나......뭐 그런 것들.
너무 끔찍하고 힘들어서 이제는 이건 꿈이라고 나의 무의식에게 말을 걸지만 여전이 나의 스트레스 지수는 매우 높은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다. 만원버스에서 시달리는 도중 갑자기 쳐들어온 기억의 조각 때문에 괜스레 멜랑콜리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는데 때마침 보게 된 영화가 <동주>였다.
부당하고 불가해한 폭력에 시달리는 재능 있는 예술가를 보고 있자니 하아......................우울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램프에 불을 켜고 차를 마셨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내 이 지치고 어두운 마음에도 빛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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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여기에 털어놓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글을 쓰고 그림 그리는 행위에는 힐링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다.
다음주에는 또 그림 그리는 행위를 둘러싸고 어떤 모험이 펼쳐질 것인가!!! 기대된다.
데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