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인연

피니스테레로의 추억

by Snoopy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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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걷는 여정을 마치고 세계의 끝이라 여겨졌던 피니스테레로 가는 길이었다. 갈리시아 지방은 비가 많이 오는 악천후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그날의 나도 비바람을 뚫고 걷는 중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세찬 바람과 비는 서서히 내 배낭과 옷의 방수층을 뚫고 침투해왔고 나는 저체온증의 습격을 받았다. 온몸이 덜덜 떨리는데 피부는 불덩이처럼 뜨겁게 느껴졌고 머릿속이 핑핑 돌지만 아무런 생각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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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목소리의 지침을 따르기로 했다. 목소리의 주인에게 의지해 차를 타고 순례자가 묵는 숙소에 닿을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지역 공동 운동장이었다. 우선 젖은 옷을 벗고 최대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그가 건넸던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메트리스 같은 곳에 쓰러졌다. 의사가 와서 나를 점검했지만 대단한 처방은 없었다. 그냥 쇼크인 것 같으니 안정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혼자 남겨졌다. 누워서 외롭고 무서워서 한참을 흐느꼈던 것 같다. 조금 뒤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신발과 약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그는 자신을 알베르토라고 소개했다.

그가 사준 약을 마시고 다른 순례자들에게 제공받은 따뜻한 스웨터를 껴입고 푹 잤더니 조금은 괜찮아졌다. 사실은 실내화였지만 뽀송뽀송 마른 신발을 신고 동네 레스토랑에서 음식까지 위장에 넣어주니 드디어 살 것 같았다. 살려줘서 고마우니 사례하고 싶다고 했지만 알베르토는 자신이 사는 스페인의 도시로 찾아오라며 이메일만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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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확히 사 년 뒤, 나는 그의 가족이 사는 아파트의 손님방에서 눈을 떴다. 당시에 그들이 출판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카디스의 눈부신 태양 아래서 알베르토와 부인 모니가 평화를 위해 걸은 5000km도 넘는 여정에 대한 글을 읽었다. 몇 가지 이야기 배치와 쳐내도 될 만한 부분들에 대한 조언을 해줬고 그걸 반영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 북미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지금은 캐나다에 사는 이들은 그 작품을 기반으로 지역 방송의 프로그램까지 맡아 멋지게 활동 중이다.


우리는 그렇게 길 위에서 만나 언젠가 서로의 길이 다시 교차되길 바라며 서로의 행보에 응원을 아끼지 않는 좋은 친구가 됐다.


_좋은 생각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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