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eoul to Hanoi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미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과 피로가 함께 쌓이고 쌓여갔다.
무작정 휴가를 내기로 결심하고 비행기표를 샀다.
가지 말라고 해도 그냥 다녀올 생각이었다.
책상 뺄 테면 빼라, 될 대로 되라.....그런 심경이었던 것 같다.
떠나기 하루 전, 업무를 미리 더 많이 처리하기 위해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화룡정점은 유리문이 열린 줄 알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일이다.
눈 옆에 패인 상처가 났고 안경은 사고로 찌그러진 자동차처럼 기묘한 형태가 됐다.
너무 아팠는데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었다.
마치 하늘에서 '그래, 넌 이제 휴가를 떠날 자격을 얻었노라!' 나의 휴가를 허가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베트남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간신히 실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어찌나 작아보이던지 벌써 어제까지만 해도 심각했던 모든 업무가 일순 하찮게 변했다. 이제 그 일들이 어떻게 되든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내 눈 옆에 깊이 파인 상처 때문에 셀카의 각도를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걱정하는 평범한 여행자가 여기 있을 뿐.
그러니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열흘 동안 내가 그 어떤 수많은 일들에 휘말리게 될 것인지 전혀 모르는 아주 순진무구한 상태였던 것이다.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고 호텔도 전혀 예약하지 않았으며 그저 그 나라의 물가가 엄청 싸다는 것과 나는 하노이로 들어가 훼와 호이안을 보고 나짱 무이네 같은 해안가 휴양지에서 이삼 일 정도 보낸 뒤 사이공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 된다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호이안에서는 보름달이 뜰 때 등을 띄우는 축제를 하는데 추석을 끼고 가니까 그쯤에 난 그 로맨틱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혹시 분위기에 휩쓸려 나처럼 혼자 여행 온 누군가를 만나 트래블 로맨스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지금 생각하면 황당무계한 기대까지....!!
드디어 안개에 휩싸인 하노이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테이블을 접고 의자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열심히 나를 이곳까지 실어준 비행기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지.
그리고 거기서부터 멘붕이 시작됐다.
택시를 타러 가는 길에 수많은 짝퉁 택시 아저씨들의 호객행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전날 늦게까지 일하고 다치기까지 하고 허겁지겁 짐 싸고 새벽부터 공항까지 나오느라 잠을 잘 못 잔 상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우 비싼 가격이었지만 당시에 짝퉁 택시 아저씨들이 부르는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엄청 비싼 가격은 아니라서 그냥 대충 홀린 듯 검은 승용차에 몸을 싣고 말았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오토바이 군단을 바라보며 수년 전 베이징에 처음 갔을 때 창밖으로 보이던 자전거 군단을 떠올렸다.
이 친절한(!) 택시 기사 양반은 자기가 잘 아는 아주 싸지만 괜찮은 호텔이 있다며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뭔가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엄청난 (물론 지금 생각하면) 착각(이지만 당시에는 진심 몰랐음)을 하면서 나는 긴장을 풀고 등을 차 시트에 기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