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
뭔가 삶이 안정되어간다는 느낌이 있다.
그러니까 새로운 삶의 패턴에 익숙해져간다는 뜻이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내내 열심히 글을 써오기는 했지만 주로 잡문이었다.
작가로서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는 말이다.
취업하면서 잠정휴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딱히 써야겠다는 의지도 없었고 영감도 전혀 강림하지 않아서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는 한동안 글을 못 쓰겠구나,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갑자기! 번쩍!
한밤중에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는 그 기쁨의 순간을 다시 만끽할 수 있었다.
역시 글 쓰는 일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물론 그림 그리는 일도 행복이지만 아무튼 나의 정체성은 글 쓰는 작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란 보수의 유무라고 했다면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는 프로니까.
출장 가면서 들었던 팟캐스트에 김장훈이 나왔었는데 그가 한 이야기 중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관객이 없는 예술은 그냥 취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구든 자기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뭔가 되게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말.
뭐 글 쓰는 것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란 결론을 내고, 난 좀 이제 그 부분에 있어서는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안일함이 내 성공을 더디게 한다 혹은 불가능하게 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죽도록 열심히 해도 어쨌든 성공할 수 있냐 없냐는 별개의 문제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그리고 내 현실의 삶을 내팽개쳐둘 수도 없는 일이고. 사부작사부작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좀 더 많은 원고를 쓰며 다른 일은 덜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작은 소망을 가슴에 품고 이번주도 열심히 회사에 나가고 일을 하고 미팅을 하고 출장을 가고 했다.
그림 그리기에 있어서는 꽤 순조로운 한 주였다.
무사히 5개를 그렸다.
#114 아기코끼리
언젠가 코끼리가 나오는 굉장히 선명한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게 계속 내 기억에서 맴돈다.
한번쯤은 그려야지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엄두가 나지 않고 그리고 만약에 그리게 된다면 아크릴로 그려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으므로......
일단 평범한 코끼리를 그려보기로. 사실 지난주에 개구리 그릴 때부터 그려보고 싶었다.
엄마 다리에 머리를 기댄 아기 코끼리.......넘나 귀여운 것.
물붓이 제대로 활약해준 그림이기도 하다. 가는 선이 그려지는 것이 이렇게 편리한 것이었다며 감탄.
그리고 물통이 없어도 된다는 것도 너무 좋고......
#115 Desperation
살다보면 문득.
찾아오기도 하는 절망의 순간들.
그걸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크레파스가 꽤 적절하더라고.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엄청난 찌꺼기가................;;;;;;;;
여행하다가 대충 산 저렴이라 그런 것일까?
어서 다 쓰면 그때는 찌꺼기가 좀 적은 고급(?) 크레파스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그림. ㅋ
#116 The Ocean
이따금 구글에 아무 단어나 넣고 검색해서 이미지 구경하는 일을 좋아한다.
'대양'이란 단어를 넣어봤는데 참 다양한 이미지들이 마구 등장.
넋을 놓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의 클릭질을 한동안 멈추게 했던 이미지가 있었으니 바다 거북이 푸른 물속을 유영하는 모습.
그려보고 싶단 마음이 동해 그려봤다.
바다가 보랏빛이라면.....상상하면서.
#117 Soft
매우 더웠던 날.
거의 백 년 만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려 30분을 기다려 진주회관의 콩국수를 먹으며 그 변함없는 맛에 감탄했던 날.
후식은 소프트아이스크림이었는데 어찌나 부드럽고 달콤하고 차갑던지!!!
그려보고 싶다고 기억하고 있다가 그려봄.
원래 콘은 뾰족한 삼각뿔 모양으로 그리고 싶었는데 스케지북의 한계로 스타일을 바꿔봤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질감을 표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만....그리고 보니 얼추 비슷하게 그려진 것 같아서 뿌듯했음.
#118 WOODSTOCK
나는 자타공인 스누피 덕후다.
스누피를 보면 자동적으로 내 얼굴을 떠올리는...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ㅎㅎㅎㅎㅎ
그런데 녀석의 베스트 프렌드가 바로 우드스톡이다.
늘 스누피를 많이 그리고 우드스톡은 어쩌다가 부록처럼 작게 그리곤 했는데 문득 우드스톡을 주인공으로 제대로 그려보고 싶어져서 그렸다.
참 개성이 강하고 귀여운 캐릭터.
언젠가 스누피를 그리면 그건 타이핑하는 스누피일 거라고 생각 중인데.....암튼 일단 우드스톡부터.
원래 철새인데 언제 돌아갈지를 까먹어서 늘 스누피 곁을 맴도는 녀석.
최근에서야 달도 동쪽에서 뜬다는 걸 알게 된 나처럼 허당이라 친근감을 느낀다. ㅎㅎㅎ
(동생과 모친은 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를 미개인 취급했다....ㅠㅠ)
(흥, 피, 치! 모를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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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리는 중인 스케치북이 이제 몇 장 안 남았다.
첫 장부터 비었던 거라 그런지 감회가 새롭다.
계속 이렇게 열심히 쭉 그리는 일상은 계속될 것이다.
쭉 순항은 아닐 수 있겠지만.....
다음주에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