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_ week 26

끝 그리고 시작

by Snoopyholic

6월이 끝났다. 그리고 7월이 시작됐다.

그 말인즉슨 이 한 해의 반이 끝나고 새로운 반이 시작됐다는 말이다.

놀라운 것은 내가 1월 1일 처음으로 일주일에 5개 정도씩 그림을 그리겠다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의구심과 달리 그럭저럭 반 년 동안 무사히 그림을 그려왔다는 점이다.

진짜 신기하다.

물론 5개라는 숫자를 완벽하게 지킨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이 그린 날도 있으니까.....

(이번에도 6개 그렸다며 홀로 뿌듯해하고 있음)

한 점도 못 그리고 지나간 주는 없었으니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아다시피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그동안 내가 그리다 말다 그리다 말다 한 악습(?)을 타파하기 위함이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의 일환으로 새 스케치북이나 물감, 크레파스, 색연필을 되도록 사지 않(어쩔 수 없이 물붓과 세필붓은 구매했고 친구의 응원으로 물감을 선물 받기도 했다)고 쓰다 만, 혹은 간직만 하고 쓰지 않았던 것을 다 쓰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2009년, 1999년에 쓰다 만 스케치북을 발굴해서 다 썼고....2003년에 사기만 하고 쓰지 않았던 새 스케치북을 이번 주에 다 썼다. 그리고 2005년에 쓰기 시작했던 스케치북을 짐 정리하며 발굴, 사용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그나마 이것은 꽤 많이 써서 남은 부분이 열 장도 안 되는 수준이라 만약 분발한다면 다음 한 주 동안 다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거 다음은 대체 언제 샀는지 모르겠으나 종이가 누렇게 변하고 앞을 많이 뜯어낸 것으로 심지어 한때 유행했던 레몬디톡스를 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아마도 2002년~2003년 사이 처음으로 지나가며 들어가볼까 말까 고민만 했던 호미화방에 들어갔던 날 산 것이 아닐까 짐작해봄. 간만에 하드커버 양장 스케치북으로의 회귀다. 그 다음 스케치북은 7년 전 여행 때 이스탄불에서 산 것으로 꽤 장수가 많고 종이가 얇다. 크로키 같은 물감 사용하지 않는 그림을 위한 것 같은데....뭐....내가 딱히 그런 걸 가리며 그림을 그려오진 않았으니까. 이 정도면 쓰던 스케치북은 다 쓰게 될 텐데 그러고 나면 올 해가 끝나지 않을까 싶다.

25년 동안 간직만 했던 고체 물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4년 전에 고흐 미술관에서 그림 그리겠다고 샀지만 막상 쓰지는 않았던 장난감 수준의 미니 팔레트도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17년 전에 미국에 있던 시절 Toys R Us에서 산 채로 고이 모셔둔 색연필들도 드디어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했지. 최근 크레용도 발굴했으니 이것도 그림 그리는 데 사용해야지 생각 중이긴 한데 일단 이사를 간 뒤에 실행해볼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꾸준히 그림에 대한 관심은 높았구나 싶다. 어찌 보면 지금 나의 행위는 오랜 숙원사업의 실행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가장 좋은 건 내가 그간 사두고 쓰지 않았던 혹은 슬쩍 건드려만 놓고 방치해뒀던 것들을 드디어 열심히 사용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그 물건들을 끌고 다녔던 이유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쾌감 같은 게 있다. 물건들도 사명을 다한다는 뿌듯함을 가질 것 같고.

그러니까...........6개월 동안 내가 세운 원칙을 꽤 열심히 지켜온 셈.

아이고, 사설이 길었네.

드디어 뭘 그렸는지 좀 보러 갑시다.


#119 Her Foot

백만 년 만에 이태원에서 친구랑 놀기로 한 날.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녀와 단둘이 만나는 건 실로 수 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으므로.

아마도 2008년이 마지막?!

퇴근하자마자 6호선을 타고 가면서 운이 좋아 자리에 앉긴 했는데 사람이 참 많았다. 왠지 심심하다고 생각하는데 형광 주황색으로 발톱을 칠한 아리따운 발을 발견하곤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 스케치북을 꺼내 마구 그리기 시작. ㅎㅎㅎ

샌들이 검정색이었는데 7년 만에 사망하셨다. 사실 다른 녀석들도 시원치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저렇게 의무를 다하고 장렬히 사망하면 좋은 일이란 생각. 다른 색들도 끝까지 알뜰하게 써줘야지.


#120 OB Premier

같은 날. 이태원의 펍. 두 여자의 수다는......

한이라도 맺힌 듯 7시간 정도 이어졌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미치겠다. 근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애연가인 그녀가 끽연을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간 사이 심심했던 나는 그녀를 기다리며 그림을 그림.

저 500을 각자 윙10개 안주로 5잔씩 마시고 헤어짐.

다음 날 원래는 퉁퉁 붓기 마련인데 하도 수다 작렬에 안주 거의 없이 술만 마셨더니 헬쓱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작은 팔레트가 4년 전 고흐 미술관에서 샀던 녀석인데 드디어 개시한 그림이기도 하다.

미니 팔레트와 물붓이 있으니 밖에서 그림 그리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더이다.


#121 LANDSCAPE

가족의 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창가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다가 하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논과 예쁜 꽃이 피고 잡초들이 적절히 섞인 땅이 있는 걸 보곤 참 예쁘다 싶어 급히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근데...........끄응..........

생각 만큼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풍경은 3초만에 사라지고......

뭐, 못 그리면 어떤가.

끝까지 그렸다는 데, 그리고 나름 어반스케치였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122 Tea Pot

모든 일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의례히 들르게 된 카페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화를.....나는 감히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어른(!)들의 일이었어서 조용히 구석에 앉아 그림이나 그렸다.

확실히 하직 공간 구성 등 부족한 부분이 많다.

ㅋㅋㅋ 그래도 그린다.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잘 그릴 날도 오겠지.

이 그림이 하나의 스케치북 마지막 그림. 처음부터 새것이었던 녀석이라 마지막 그림을 그리는 감회가 새로웠다.


#123 FRUITS

새로 만난 스케치북은 그간 사용했던 것보다 훨 작다.

작았던 덕분인지 9장 정도만 남아 있었다. 호주에서 동부 여행 다니면서 심심할 때 그리겠다고 샀던 건데 다양한 시도가 있어서 놀라기도 했던.

드디어 밤이 되어도 덥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문득 과일을 그리면 시원한 기분이 들까 싶어서 그려봤다. 나름 사실성도 고려해서 그리다 보니 황토색 싸인펜이 없어 배는 못 그림.


#124 BLUE EXPERIMENT

수채 색연필이란 물을 칠하면 물감처럼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알고는 있었는데 실행에 옮겨본 적은 없었다. 궁금한 마음이 들었고, 파랑색으로 표현해보자 싶어서 실험을 시작했지.

하지만 수채 색연필인줄 알았던 녀석들이 사실은 아니었던 것!!!!!!!!!!!!!!!!!!!

그마나 한 개는 맞아서 어떤 느낌인지 볼 수 있었다.

신기했음.

문제는.... 으으.... 수채 색연필 사고 싶어짐.

참아야 하느니........아마 색연필 든 통 뒤지면 저거 말고도 몇 개는 더 있기는 할 거다. 다음에는 그것들만 골라서 뭔가 그림을 그려 실험해봐야지.


****


또 무탈히 한 주가 그렇게 갔다.

늘 그렇듯 난 다시 무심히 그림을 그리겠지.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감사한 일.

그럼 다음주에 만나요~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