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이제 한 해의 반이 지나가고 새 반이 시작됐다.
어쩜 이렇게 정식하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겠구나.
다행한 일이다. 정직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변함없이 다사다난했던 한 주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삶을 바란다.
그냥 매일이 똑같은 나날들 말이다. 눈을 뜨고 일을 하고 집에 오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몸을 씻고 집을 치우고 책상을 치우고. 솔직히 출근퇴근은 싫다. 김보통 만화가가 매일 다양한 방법으로 죽을 방법을 생각했다는 것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던 것이 나 또한 회사 다닐 때 매일 아침 통근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저 차에 치이면 얼마 만에 죽을 수 있을까'를 상상했으니까.
단.하.루.도.빠.뜨.리.지.않.고.매.일.
내가 바라는 아무 일도 없는 고요한 삶 속의 일이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이따금 여행을 가는 정도다. 결과적으로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ㅎㅎㅎ
다시 딜레마. 내 인생의 반을 그렇게 살라고 노력했는데 아직 이르지 못했으니 일단은 닥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자. 적어도 지금은 비록 그게 내가 바라는 지향점은 아니고 전혀 모르는 분야의 일인지언정 뭔가 나에게 수입을 주는 일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 사이사이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과 어디선가 날아오는 불행의 소식들은 나를 지치게 하지만 그나마 이따금이라도 들려오는 즐거운 소식과 얼굴 맞대로 각자의 삶의 다행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홀로 수입맥주를 마시며 견디는 시간들.....뭐 그런 것들이 조합되어 그냥 견디는 거겠지.
그리고 면밀히 살펴보면 나만 불행한 것도 아니다. 주변에 불행의 동지들이 널려 있다. 그러니 적어도 고독하지는 않은 거지.
아이고오....또 헛소리 작렬이구나. 어서 그림이나 보자.
#125 Boon&Ladybird
나의 그녀.
정확히 16년 전에 처음으로 만났던.
오랜 친구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던 밤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끊으니 더 그리워졌전 기이한 기분.
그래서 그림으로 그렸다.
만난 적은 없지만 귀여울 것이 확실한 레이디버드와 함께 있는 모습.
#126 Best friend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단 한 번도 같은 반인 적 없는데 가장 친한 친구.
참 기이하다.
우리가 어떻게 처음으로 만났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운명처럼 만났던 것 같다.
오랜 친구가 그리웠던 밤 그녀도 보고 싶어져서.
근데 둘 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이네 그려.
#127 Pineapple
요즘 그리고 싶다고 꽂힌 과일이 있는데 파인애플.
어딜 나가도 파인애플 프린팅만 보인다.
신기.
그래서 일단 몸 풀기로 하나 그려봤다.
크레파스로도 그려보고 수채화로도 그려볼 예정인데.......뭐 그게 언제가 될지는 하늘만이 알 일!
#128 Skull is cool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기 시작한 게 많은데 해골도 그중 하나다.
대체 왜인지 짐작도 안 가지만 나는 해골에 매료되어왔으며 근사한 해골 아이템을 몇 개 가지고 있다.
가장 가지고 싶은 해골은 크리스털해골인데.....
돈 많이 벌면 그건 반드시 하나 구비할 예정이다.
아무튼.
좋아하는 해골 반지.
#129 Breathing
고래도 꽤 오랫동안 그려보고 싶었던 아이템이었는데 도무지 어떻게 그리는 게 좋을지는 떠오르지 않았더랬다. 퇴근해서 지하철 타고 친구들 만나러 가는데 갑자기 안에서 뿅 하고 나타난 아이디어가 사라질까봐 스케치북을 꺼내어 폭풍으로 그림을 그려봄.
요즘 갑자기 호흡이 잘 안 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서 걱정인데 고래처럼 시원하게 숨 쉬어보고 싶다는 염원도 담았다.
살기 위해선 숨을 계속 쉬지 않으면 안 되니까.
#130 Rainy Cognac
장맛비가 주구장창 내리던 밤에 꼬냑을 마셨다.
마시다 보니 예뻐서.
그려봤다.
그냥 마시는 건 좀 많이 독해서 토닉워터를 섞어 마시니 맛나더라구.
#131 Jamie Cullum
처음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걸걸한 아저씨를 상상했단 말이지. 선이 곱고 애띤 소년의 이미지에 충격.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그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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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2005년 호주 동해안을 여행하면서 그리기 시작했던 자그마한 스케치북은 다 썼다.
이번주는 7개의 그림을 그렸네. 와..........분발하고 있구먼 그려.
원래 두어 개 더 그릴라고도 생각했는데....급 단편소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라서 그걸 처치(?)해야 하므로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음 스케치북부터 그리기로.
:)
그러고 보니!!
1년이 52주이고 한 주당 5개씩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260개라는 계산이 서는데 1년의 반이 지난 시점에 그림도 130이란 숫자를 넘겼구나. 잘 하고 있다는 증거다.
으하하.
다른 일은 잘 안 되고 엎어지고 깨지고 힘들어 죽겠는데 뭐라도 이렇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위안을 얻는다.
쭈욱 분발합시다.
담주에 만나요~